하루아침에 댐이 무너지듯 도담이의 말문이 트였다. 기분이 좋을 때 도담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짱!” 하고 외친다. 거절하고 싶거나 내키지 않을 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야”라고 한다. 배고프면 손으로 수저를 입에 넣는 시늉을 하며 “맘마(밥)”를 먹자고 하고, 목이 마르면 정수기를 가리키며 “무울(물)”을 달라고 하며, 애니메이션 를 보고 싶으면 “뽀(뽀로로)”를 부른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 “안녕” 하고, 자기 전에는 아내와 내게 “잘 자”라고 인사하는 걸 잊지 않는다. 아직은 문장을 만들지 못하지만 암호 같은 단어 몇 가지를 조합해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다.
말하는 데 재미가 들렸는지 외계어처럼 들리는 말들을 쉴 새 없이 내뱉는 모습을 보면서 도담이가 우리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손짓 발짓 모두 동원한다. 아내나 내가 도담이가 하는 말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도담이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치거나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답답해한다. 아내와 나는 필사적으로 도담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 아내가 도담이 말을 더 잘 알아차리는 것 같다. 엄마가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도담이는 옷을 갈아입을 때도, 신발을 신을 때도, 양치질을 할 때도 아내를 먼저 찾는다. 그걸 볼 때마다 섭섭하면서도 도담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한번 기울어진 운동장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도담이와 좀더 친해지고, 더 많은 소통을 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가운데, 9월4일 개봉을 앞둔 어린이 애니메이션 시사회에 초대받았다. 한 번도 극장에 가보지 못한 도담이를 데리고 멀티플렉스를 찾았다. 한정판 종이 모자를 선물로 받아 도담이 머리에 씌워주며 “아빠 덕분”이라고 온갖 생색을 냈다. 아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크린을 보고 믿기지 않는 듯 “우와!”를 연신 외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가 인형탈을 쓰고 무대 인사를 하자 신기해하며 좌석을 뛰쳐나가 무대에 난입했다. 상영관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아이는 더욱 신나서 스크린 앞에 다시 내려가 춤을 추었다. 아내와 나는 도담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엔 아직 이른가 싶어 도담이를 잽싸게 안고 도망치다시피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벌어진 ‘웃(기고 슬)픈’ 해프닝이다. 그 뒤로 아내는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갔고, 덕분에 도담이와 단둘이 지내면서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도담이가 나를 좀더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카톡’이 울렸다. 어린이집 아빠들만 모인 카톡방에서 ‘아이들과 좀더 친해지고, 엄마들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10월 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떠나자’는 내용이었다. 남자 연예인들이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는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제게 필요한 프로그램이군요’라는 글을 올리니 ‘모든 아빠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도담아, 아빠와 둘이서 가을 여행 떠나자.
글·사진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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