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가락으로 장난감을 가리키며) 이거 (사줘)!” 일주일 같은 3박5일간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출장을 다녀와 겨우 마감을 끝낸 지난 주말, 도담이와 함께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코로나19 사태 탓에 주말인데도 한산한 백화점은 유독 장난감 매장만 마스크를 쓴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마스크 위 빼꼼히 난 초롱초롱한 눈으로 매장을 스캔한 뒤 원하는 장난감을 낚아채는 속도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도담이도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매장을 한 바퀴 쓱 돌더니 한 장난감 앞에 꽂혀 멈췄다. 아이가 직접 콘에 색색의 아이스크림 모형을 올린 뒤, 그 위에 모형 소스를 뿌리는 아이스크림가게 장난감이다. 캐릭터만 다를 뿐 집에 있는 것과 똑같다. “집에 있으니 다른 장난감도 한번 둘러보라”고 하면서 레고나 찰흙으로 유도해도 아이는 마음을 굳혔다. 굳이 집에 있는 장난감을 살 수 없고, 가격도 비쌌다. 겨우 다른 장난감으로 타협해서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아이와 함께 아침에 EBS 방송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도담이가 사달라고 했던 장난감의 광고가 나왔다. 도담이가 “우와!” 하며 반가워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EBS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들을 유심히 보니 장난감 광고가 범람했다. 종류도 가격도 제각각이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상품의 얼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아이가 종종 보는 ‘유튜브 키즈’를 살펴보니 더욱 심각했다. 유튜버들이 만든 영상은 대부분,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내용이다. 유튜브 영상을 찍어 올린 아이들의 부모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 콘텐츠를 보는 어린이들은 간접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장난감가게에 가면 광고에서 본 장난감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EBS 방송이나 유튜브를 못 보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EBS에는 아이들에게 유익한 캠페인 광고도 많다. 특히 ‘펭수의 손씻기+기침예절’ 캠페인 영상은 코로나19 예방 프로그램으로 효과 만점이다. 펭수가 정색하며 “물로만 씻었죠? 비누칠 (어이) 비누칠 (어이) 손 씻을 땐 비누칠 (어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땐 손수건이나 휴지로 에취!”라고 외치는 영상은 도담이도 “하하하” 웃으며 따라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방송사의 이런 캠페인 영상 좋습니다!) 결국 TV나 유튜브 영상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할 수밖에 없다. 최근 아이와 함께 찰흙을 빚고 블록을 조립하는 시간을 늘린 것도 그래서다. 도담이도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아빠와 엄마에게 자신이 만든 것을 자랑하는 일을 즐긴다. 도담아, 이거 다 만들면 새 레고 사러… 아차, 날씨가 풀리면 캠핑하러 가자.
글·사진 김성훈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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