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가자!” 엥, 잘못 들었나. 순간 귀를 의심했다. 도담이는 마트에 가고 싶을 때마다 “(집게손가락을 연희동 방향으로 가리키며) 아빠, 뿡(자동차를 타고 가자)~” 두 단어로만 말했다. 연희동 ‘사러가슈퍼마켓’이나 동네 편의점에 갈 때마다 장난감이나 과자 하나는 꼭 사야 집에 돌아가는 도담이의 씀씀이를 두고 아내와 나는 ‘성산동의 패리스 힐턴(쇼핑광인 할리우드 유명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은 있다. 그런데 ‘쇼핑’이란 말을 어떻게 알았을까. 게다가 ‘쇼핑 가자’라는 문장으로 말하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응가하면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하던 아이가 “똥 나왔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장모님이 아침에 우리 집으로 출근하면 도담이가 내게 달려와 “할미, 왔어”라고 알려준다. 그동안 말을 할 줄 몰라 “어, 어, 어” 하며 의사를 표시했던 아이가 아빠나 엄마가 자기 말을 정확히 알아듣자 얼마나 큰 희열을 느꼈을까.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어린이집 정기 방모임에 오랜만에 들렀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도담이를 포함한 아이들과 함께 3살 교육놀이를 진행·연구했고, 그 결과를 아마(아빠 엄마)들에게 공유했다. 자유놀이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마음 가는 대로 노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사나 어른들이 정해놓은 놀이를 아이들이 따르는 것과 정반대의 개념이다. 쉽게 설명하면 보통 숨바꼭질에서 술래는 한 명이지만, 자유놀이에선 누구나 술래가 될 수 있다. 선생님은 3살 자유놀이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불 아래 모두 숨기, 이불텐트 숨바꼭질, 돌 가지고 놀기, 돌 설거지, 흙과 물 놀이, 숨바꼭질 순서대로 놀았다. 매일같이 ‘도담이는 별(선생님 별명)에게 언제 목소리 들려줄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듯 했던 말이 실현된 건, 어느 날 숨기놀이를 하던 도담이가 “숨었다!”라고 외쳤을 때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자유놀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염려, 관점이 바뀌었다고 한다. 꼭 교사가 알려주는 놀이나 잘 구성된 놀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이들에게 놀이는 있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도담이가 “숨었다”라고 말한 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수많은 놀이 과정을 거쳐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선생님은 강조했다.
방모임을 하면서 선생님도 아마들도 지난 1년 동안 도담이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함께 키워주신 것 같아 무척 감사했다. 모두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올해 초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걷지 못했던 도담이는 지금 성미산의 씩씩한 다람쥐가 되었다. 심장도 끄떡없다. 아이가 좀더 자유롭게 놀기 위해서는,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눈을 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방모임에서 나온 자유놀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늘 아침(12월4일) 출근하려는데 도담이가 앞을 막고 또 “아빠, 쇼핑 가자”라고 말했다. “퇴근하면 같이 가자”고 대답했더니 도담이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가슴 앞으로 내밀며 “짱! 짱!”이라고 외쳤다. 도담아, 그만 사… 우리 하우스푸어야… 빚 갚아야 해. ㅠㅠ
글·사진 김성훈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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