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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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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방학, 첫 바다

처음으로 성수기에 휴가를 떠나다
등록 2019-08-21 11:16 수정 2020-05-03 04:29
강원도 속초 아야진해수욕장에서 도담이와 함께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도담아, 바다 멋지지?

강원도 속초 아야진해수욕장에서 도담이와 함께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도담아, 바다 멋지지?

파도가 쏴 밀려오자 바닷물이 도담이 발목을 찰싹 때리고 달아났다. 난생처음 해수욕장에 온 도담이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뜨거워진 모래가 발가락 사이에 낄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목욕탕이나 수영장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디넓은 동해가 눈앞에 펼쳐지니 와 하고 벌린 입은 한동안 다물어질 줄 몰랐다. 나는 도담이를 번쩍 들어올려 바다 쪽으로 걸어가 푸른 하늘과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도담이 얼굴을 슬쩍 보니 도담이는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7월 마지막쨋주, 어린이집 여름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강원도 속초에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며칠 만이라도 도담이를 울산 할아버지 집에 맡기면 안 될까?” 휴가를 가기 전, 아내가 제안했다. 도담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본 지 오래됐고, 도담이가 할아버지 집에 가면 우리 또한 육아 전쟁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으며, 미룬 일도 해치울 수 있지 않냐는 거다. 모두 맞는 얘기지만, 도담이가 아직은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끔찍이 싫어하고, 첫 여름방학만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여름휴가를 성수기에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피서객이 해수욕장을 가득 채운 뉴스를 볼 때마다 ‘저 사람들은 왜 사서 고생할까’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여름방학 기간이 똑같고,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으니 부모도 자연스럽게 휴가를 써야 했다. 성수기 요금이 평소보다 비싼 줄 알면서도 기꺼이 부담해 남들 다 가는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에서 3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속초는 예상대로 온통 우리 같은 가족 피서객들 천지였다. 도담이는 방학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이집에 가는 대신 ‘부르릉’(아빠 차)을 타고 사람이 많은 곳에 와서 대게찜·물회·오징어순대·막국수 등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호텔 방에서 자는 걸 무척 즐거워했다. 속초 3박4일 여행, 아쿠아리움, ‘코믹콘 서울 2019’ 등 휴가 기간인 열흘 내내 도담이를 쫓아다니느라 아내와 나는 양어깨가 뭉칠 만큼 피곤했지만, 셋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 뿌듯했다.

여름을 나면서 아이 키는 부쩍 자랐고, 구사할 줄 아는 단어도 몰라보게 늘었으며, 자의식도 덩달아 커졌다. 휴가가 끝난 8월 첫쨋주, 도담이는 칭얼거림이 늘었고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했다.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 친구들과 노는 걸 행복해하고 즐기는 성격인데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또 주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 보는 것이 피곤해 등원을 거부한 게 아닐까 짐작된다. 마치 어른들이 회사에 가기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라 억지로 보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봐 도담이가 원하는 대로 따랐다.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란다는 말이 맞나보다.

글·사진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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