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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클럽에서 얻은 위안

가수 ‘콩’의 성미산마을 어린이집 부모 초청 공연
등록 2019-10-10 13:46 수정 2020-05-03 04:29
도담이와 함께 ‘콩'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클럽에 갔다.

도담이와 함께 ‘콩'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클럽에 갔다.

“도담아, 선생님 안아줘.” 검사 결과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이 도담이에게 말했다. 도담이는 “우웅” 쑥스러워하면서 선생님을 꼬옥 안았다. 7월 심장 수술 경과 검사를 받은 지 정확히 3개월이 지난 10월2일, 두 번째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매일 아침 아빠와 엄마가 자신을 두고 출근할 때마다 따라가겠다고 울고불고하던 아이가 오랜만에 시내(라고 해봐야 신촌이지만)에 나가서 기분이 좋은지, 어린이집에서 배운 동요 을 흥얼거렸다. “하마~가을이 왔다/ 철둑가 코스모스/ 쫄로리 서서 웃는다/ 엄마는 코스모스를 보고/ 날씨가 추워서/ 우예사꼬 한다!”

의사 선생님은 “심장이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살도 많이 쪘고 건강해졌다. 수술한 뒤 1년까지는 혈액이 역류하는 현상이 있다(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며 매일 아침 복용하던 혈압약 중에서 아스피린프로텍트를 빼기로 했다. 다음 검사는 5개월 뒤다. 요즘 아이가 워낙 잘 먹고 뛰어다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검사 전날 혹시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검사 일주일 전 주말, 도담이와 함께 서울 홍익대 앞 클럽에 가서 들었던 음악에서 위안을 얻었다. 도담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졸업한 두 아이를 키우는 ‘콩’(마을 별명, 가수 연영석)이 4집 음반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를 낸 기념으로 어린이집과 공동육아 도토리 방과후의 ‘아마’(아빠와 엄마를 합친 말)들을 초대해 진행한 공연이다.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홍대 클럽에 가니 결혼 전 아내와 함께 클럽에서 밤새워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쉬어간들 어떠리 뒤에 선들 어떠랴/ 허기진 배 채우고 물 한 모금 마시니/ 아하 문득 우습다 (중략) 창문 활짝 열고 가슴 활짝 펴고/ 바람 부는 언덕 위를 걸어 걸어보리라”() “나는 너무 느려 너를 쫓지 못해/ (중략) 자유 마음의 깃발을 들고/ 평화 너에게 저녁을/ 평등 땅 위에 발바닥/ 해방을 향해 우리는/ 오 긴다 긴다 긴다/ 오 예 라라라”() 연영석씨가 오랜만에 낸 음반이니만큼 수록 10곡 모두 좋지만, 첫 번째 트랙인 와 여섯 번째 트랙인 의 가사에 특히 공감됐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느려 한때 가슴을 많이 졸였지만, 지금 도담이는 자신만의 삶의 속도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세 살 어린이답게 공연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몇 곡 듣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쉽지만, 연영석의 서정적인 노래와 부모 따라 공연장에 놀러 온 아이들의 수다가 어우러진 공연은 무척 근사했다.

취재기자 대부분이 오늘(10월3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는 가운데, 나는 도담이와 함께 어린이집 아빠들과 함께 강원도 철원으로 떠난다. 제1279호 ‘카봇, 무대 난입 어린이를 잡아라!’에 썼듯이 아이들과 좀더 친해지고 아내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 구상한 아빠들의 여행 프로그램이다. 도담이와 둘이서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크지만, 어떤 추억을 쌓을지 무척 설렌다.

글·사진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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