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도담이가 ‘안아달라’고 했다

마을 아빠들과 철원으로 떠난 여행
등록 2019-11-01 11:39 수정 2020-05-03 04:29
.

.

“갑자기 일이 생겨 못 간다고 말할까.” 아이와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겁부터 덜컥 났다. 뒷좌석의 아기 시트에 앉은 도담이가 달리는 차 안에서 갑자기 울기라도 하면 어떻게 달랠지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했다. 출산한 지 3년 만에 처음 혼자만의 주말을 가지게 된 아내는 어린이집 아빠 ‘가람’(마을 별명)에게 “‘과메기’(내 별명)와 도담이도 태워가달라”고 부탁하며 등을 떠밀었다. 도담이는 아빠와 단둘이 1박2일 여행을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장난감 몇 개를 자신의 ‘뽀로로’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넣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온 3주 전 주말, 어린이집 아빠들과 함께 ‘아빠? 어디 가?’로 강원도 철원을 다녀왔다(사진). 아이와 좀더 친해지고, 아내에게 휴식을 주자는 뜻으로 진행된 아빠 육아 프로그램이다.

여행 가는 날, 도담이는 가람의 차에 타자마자 으앙 울었다. 엄마가 함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이번 주말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자고 오는 거야. 아빠가 도담이 옆에 있을 거야”라고 거듭 말하며 아이를 달랬다. 차로 2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철원의 한 캠핑장이다. 아빠 10명, 아이 20명 남짓한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빌린 대형 캐러밴 3개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캐러밴과 야외를 오가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가장 나이가 어린 도담이도 신났는지 이층침대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아빠들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밥을 안치고, 황태채를 듬뿍 넣어 어묵탕을 보글보글 끓였다. 각자 집에서 챙겨온 반찬들을 모았다. 간만에 마을을 떠나 흥분한 아이를 붙잡아 밥을 먹이고, 혹여나 다칠까봐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치카치카’(양치질)와 세수를 시킨 뒤 침대 구석 자리를 차지해 재우니 밤 9시가 지났다.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캐러밴 밖을 나가니 아빠들의 술상이 이미 시작됐다. “대체 이걸 왜 하는 거냐”고 농을 던지자(몰라서 물은 게 아니다, 정말 농담이다!) 아빠들은 “엄마도 쉬고 아이들도 신나고 일석이조니, 얼마나 좋나”라고 하하 웃었다. 어린이집을 등·하원시키면서 인사만 주고받은 아빠들과 간만에 웃고 떠들었다. 낯선 잠자리 탓에 도담이가 깰까봐 조마조마했지만, 육아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마시는 술은 달고 시원했다. 여행 이틀째 철원 8경에 속한다는 직탕폭포와 고석정을 차례로 둘러본 뒤 마을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우리를 반겨준 아내는 간만에 시내(서울 홍익대 주변) 극장에 나가 영화 를 보고, 바람을 쐬었으며, 밤늦도록 넷플릭스(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기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무엇보다 좋았던 건 종일 도담이가 엄마 대신 아빠를 찾았고, 안아달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캐러밴에서 도담이와 함께 밤을 보낸 추억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도담이를 보느라 여행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신세만 많이 지었는데, 함께 철원을 다녀온 아빠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글·사진 김성훈 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