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섬세한 그대에게 ‘어싱’을 권한다

자주 상처받는 이를 위한 24가지 처방전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등록 2019-08-30 10:20 수정 2020-05-03 04:29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기운이 회복되는가? 군중 속에 있으면 녹초가 되는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을 견디기 힘든가? 여럿보다 일대일이나 적은 인원과 교류하는 게 좋은가? 다정함을 원하지만 친밀함 때문에 숨이 막히게 될까 두려운가? 화학물질을 쉽게 알아차리거나 피부에 따끔거리는 옷이 많은가? 대도시보다 소도시나 시골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초민감자’일 가능성이 크다. 남다른 공감력과 통찰력을 지녀 세상을 풍요롭고 다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 (라이팅하우스 펴냄)는 ‘유리 멘탈’이란 말에 베이곤 하는 이들의 회복을 돕기 위한 심리치료서다.

주디스 올로프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며 극도로 민감한 이들을 치료해온 20년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그에 따르면, 초민감자(Empath)는 매우 민감한 사람(HSP·Highly Sensitive People)과 다르다. 자극 임계점이 낮아 쉽게 반응하는 부류를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 명명한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예민한 감정이 창조성, 동정심, 열정의 근원이라는 ‘민감성의 능력’을 주장했는데, 초민감자는 주변에 흐르는 에너지까지 감지하고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HSP와 구분된다. “누구나 길면 수십 센티미터까지 감정과 건강 상태 같은 정보를 담은 방사광(에너지장)을 내뿜는다.” 초민감자는 사람들 속에서 겹치는 에너지에 더 쉽게 지치기 때문에 조직생활이나 대규모 사교 활동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올로프는 ‘에너지 뱀파이어’ 개념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너지 뱀파이어란 타인의 자기 확신과 내면의 평화를 빼앗는 ‘긍정 에너지 파괴자’를 뜻한다. “오늘 피곤해 보이네, 어디 아파?”(사실일 경우 확인사살이고, 컨디션이 좋을 경우 완벽히 실례인 말) “왜 그렇게 예민해?”(둔한 건 자랑이냐!) 만나고 나면 꼭 기분이 나쁘고 진이 빠지는 사람.

올로프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법에 초점을 맞춰 치유법이자 방어전략 24가지를 정리했다. 언어로 선 긋는 법, 농담 활용법, 보디랭귀지로 거절하는 법, 관계의 종말을 연착륙시키는 법도 유용하지만, 보호막만큼이나 자가발전이 중요하다. 다정다감한 초민감자의 풍부한 내적 자원은 다른 뱀파이어들도 노리는 먹잇감이니까.

‘어싱’(Earthing·땅에 발 딛기)은 각별히 권유되는 치유제다. 한번 잡숴봐! 발바닥으로 땅을 단단히 누르면서 나무 뿌리처럼 지구와 연결되는 의식이다. 사실, 긴장 속에서 무대와 그라운드를 딛고 서는 무용수나 운동선수들은 몸으로 이 영험함을 알고 있다. 토양에 있는 전자와 접촉하면 신경계가 안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올로프는 “단순히 발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머리에서 발로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불안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방출”된다고 강조한다. 너른 자연을 거닐 여유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 어싱은? 방바닥, 사무실, 심지어 ‘상상 어싱’도 충분하단다. 초민감자가 가장 섬세하게 감촉해야 할 것은 지금 디디고 선 바로 그 장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란 얘기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