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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새로 생기는 땅도 있다

지리학자 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지도에 없는 마을>
등록 2019-06-26 11:01 수정 2020-05-03 04:29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부터 온 소식’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달뜨게 한다. 다소 전투적인 명령어이지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역시 흥분감을 자아낸다. (북트리거 펴냄)의 저자인 지리학자 앨러스테어 보네트는 새로 생겨난 땅, 무시당하는 장소 등 ‘지도에 없는 마을’ 39곳을 탐사한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사라지는 섬도 있지만 한편으론 얼음 무게에 짓눌려 있던 땅이 솟아나는 곳도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 보트니아만에 있는 섬들은 빠르게 솟아오르면서 “땅을 사라. 더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으니까”라는 마크 트웨인의 충고에 반기를 든다.

한때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 분지는 연방 해체 이후 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국경이 조각보처럼 얽히며 6곳의 월경지(본토와 단절된 채 주변이 다른 나라로 둘러싸인 곳)를 낳았고, 유혈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이 되었다. 중국·필리핀·베트남이 각각 난사군도·칼라얀군도·쯔엉사군도라고 하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스프래들리 제도는 각자 영토를 ‘찜’하기 위해 세워놓은 군사시설과 인공섬들로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물리적 경계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중요한 공간도 있다. 점점이 떨어져 있는 전세계 무인도를 묶어서 주권을 주장하는 ‘초소형국가체’(UMMOA)는 불가능하지만 국가의 통속성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그런가 하면 영토가 없어도 주권을 인정받는 나라도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궁전’과 ‘대사관’이 전부인 몰타기사단(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 및 몰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은 전세계 106개국과 외교를 맺고 있다. 몰타기사단은 한때 무솔리니가 전후 금지 조치에 걸리지 않으려고 팔아넘긴 비행기로 공군 연대를 꾸리기도 했다. 토지 소유 관계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만든 마을은 또 어떤가. 덴마크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아니아는 애초 방치된 군사 부지였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터를 점거하고 폐자재를 재활용해 독특한 집들을 지으며 생겨났다. 이곳의 원칙은 분명하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지만, 다른 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땅을 살리는 뿌리박테리아처럼, 눈에 띄진 않지만 도시의 신진대사를 위해 꼭 필요한 곳도 있다. 카이로의 쓰레기 도시, 무카탐 마을은 쓰레기 수거인을 뜻하는 ‘자발린’들이 살아간다. 외부인들은 전혀 찾아올 일 없는 이곳에서 자발린들은 근면한 공동체를 일구고 살아간다.

인터넷 지도, 구글 어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도 소개한다. 초호화층이 몰려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히든힐스는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부자들의 욕망 때문에, 스리랑카의 빈민가 와타나물라는 주민들이 남루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스트리트 뷰가 안 된다.

지도에 없는 마을은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지은이는 어느 날 퇴비와 묘목을 챙겨 고속도로 사이에 끼인 작은 조각 땅에 다녀온다. 그리고 그 외로운 교통섬에 산딸기가 흐드러질 그 어떤 날을 상상한다. 인간의 본능엔 ‘장소에 대한 본질적 사랑’(토포필리아)이 있다는 믿음의 실천이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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