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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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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즐거운 섹스를 위해

섹슈얼리티·젠더 연구자 한채윤의 <여자들의 섹스북>
등록 2019-06-14 10:45 수정 2020-05-03 04:29

‘임신 프리(Free), 피임 프리, 남자 프리’ 3무 섹스 지침서.

하다못해 스킨토너도 알코올 프리를 골라 쓸 수 있는 세상 아닌가. 그동안 너무 많은 성생활 도서가 결혼·가족이라는 범주에 갇혀 출산과 이성애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이매진 펴냄)은 따로 골라 읽힐 만하다. 드물게도,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섹스 상대를 남성으로 특정하지 않는 글쓰기를 통해서. 이는 여성을 임신의 주체에서 완전한 성적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탁월한 방법론이 된다.

지은이는 성교육 전문가이자 섹슈얼리티·젠더 연구자 한채윤. 펴낼 당시엔 서점에서 팔지 않았고, 지금은 절판된 를 업데이트해 19년 만에 ‘정식’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가 레즈비언의 성을 다뤘다면, 신간은 성적 지향 구분 없이 모든 여자의 성을 이야기한다. 몸에 관한 전문지식, 섹스의 원리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서 “섹스를 침대 위에서만 일어나는 특정한 행위로 국한하지 말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까지” 내용을 넓혔다.

생식기와 성기를 구분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생식기와 성기는 다르다. 성기를 성행위를 하는 신체기관이라고 정의하면, 성기는 몸 전체다.” 이 분별은 ‘나’를 확장한다. 그래서 중요하다. “온몸을 다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때 더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를 상상할 수 있고, 자신을 온전한 성적 주체로 인식하기도 쉬워진다.” 생식기와 성기의 쓰임이 구분되지 않으면 모든 성행위의 목적은 임신으로 한정되는데, 이런 관점이 바로 오르가슴을 남성 중심적으로 만든다고 지은이는 꿰뚫는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설명이 말이 될까? 남성 중심적 해석은 삽입하는 쪽이 주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섹스는 한쪽은 끌고 다른 한쪽은 뒤따라가는 팀플레이가 아니다.”

삽입을 받으면서 오르가슴을 주도할 수 있다니!?(어떻게…) 이런 종류의 막막함을 구체적으로 걷어내줄 때, 저자의 각별함은 확 빛난다. “두 사람이 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면, 한쪽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다른 한쪽은 그 뜻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원리를 풀어준다. 삽입이나 애무를 하든 받든, ‘나’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동시에 수용하는 주체라는 뜻이다. 실용서를 표방하는데, 이런 대목이야말로 진정한 쓸모 아닐까.

삽입형 섹스와 비삽입형 섹스 분류, 수백 가지 체위 요약 정리, 12가지 주요 성감대와 섹스토이(자위 기구) 사용법, 자위하는 법까지. 한채윤표 실용 섹스 레시피는 다양하고, 탄탄하고, 독보적으로 섬세하다. 섹스 후 티슈로 몸을 닦아줄 때 유의점까지 놓치지 않을 만큼. 마음을 언어로 정확하게 변환하는 섹스 대화의 기술을 빠뜨리지 않을 만큼. 크게 지르는 소리보다 세밀한 귓속말이 더 잘 들리는 법이다. 뭉클하고. 말이 통할 때 몸도 통하는 섹스, 뜨겁지 않아도 충분한 섹스, 노년의 섹스, 완경 이후의 섹스, 존재 자체를 향한 감탄 위에 쌓이는 섹스를 저자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건전지형 자위 용품보다 진동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충전형을 추천한다거나, 세척도 쉽고 샤워하면서도 쓰게 방수 기능이 있는 섹스토이를 고르라는 꿀팁도 가득!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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