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즈위안을 처음 만난 곳은 독일 베를린 테겔 공항이다. 2017년 10월 중순 무렵이었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약 열 시간 후 베를린 테겔 공항에 내렸을 때, 바로 정면에 그가 서 있었다. 아무렇게나 기른 장발 파마머리에 술담배에 찌든 듯한 푸석푸석한 피부, 못생긴 것 같은데 자꾸만 눈길이 가는 개성 있는 외모, 얼핏 봐도 190센티미터는 돼 보이는 키 덕분에 그는 어디서나 금방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그날 베이징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
“선생님 책을 읽었고, 선생님 서점에도 자주 가요. 베이징에 돌아가면 언제 한번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개문견산(開門見山). 문을 열어 바로 산을 보듯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돌진해 다짜고짜 ‘친구가 되자’고 했다. 그와 일행의 얼굴에 잠시 황당함과 당혹감이 스치는 듯하더니, 이내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표정에 온기가 돌았다.
“제 책이 몇 권 한국어로 번역됐는데 그걸 읽어봤다는 독자를 외국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네요. 베를린에서 만나니 더 반갑습니다. 베이징에 돌아가서 저에게 연락주시면 반드시 시간을 내겠습니다.”
서점에서 맥주를 든 남자를 다시 만나다그를 ‘우연히’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주말 저녁, 그가 운영하는 베이징 서점 ‘단샹콩젠’(花家地店) 화자디 지점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단샹콩젠’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서점 맞은편에 있는 옛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대학원) 학생식당에서 싸고 푸짐한 감자볶음덮밥 한 그릇을 먹은 뒤, 다시 서점으로 가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던 때였다.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심지어 당시 입었던 까만 와이셔츠와 짙은 잿빛 바지를 그대로 입은 쉬즈위안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바로 그에게 돌진했다.
“저 기억하세요? 베를린에서 만났던….”
“아! 기억하고 말고요. 어떻게 이렇게 우연히 또 만날 수 있죠? 우린 아무래도 인연이 있나봅니다. 여기 자주 오나요? 전 요즘 거의 저녁마다 여기에 와요. 제 사무실이 위층에 있거든요. 근데 어쩌나, 지금 회의 중이라 당장 시간 내기는 힘들고… 혹시 괜찮다면 좀 기다려줄래요? 장담은 못하지만 한두 시간이면 끝날 것 같아요.”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을 기약하며 그는 호가든 병맥주 한 병을 들고 총총히 위층으로 사라졌다. 서점 직원은 “쉬 선생님은 회의 중에도 쉴 새 없이 맥주나 양주를 마시고 줄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던 2017년 10월 중순은 아마도 쉬즈위안 인생에서 첫사랑과 헤어진 후 가장 괴롭고 우울한 시절이자, 한편으로는 가장 유명세를 치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는 당시 속된 말로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올라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서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중국의 대표적인 공공지식인’(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중국에서 가장 난처한’ ‘오만하고 잘난 체하는’ 공공지식인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로 변했다. 그 무렵 베를린에 간 것도 어쩌면 잠시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공공지식인에서 공공의 적으로중국 사회의 대표적인 공공지식인이라 불리던 쉬즈위안이 하룻밤 사이에 ‘공공의 적’이 됐다. 그가 진행한 인터넷 매체의 대담 프로그램이 화근이었다. 그는 중국 대중오락 프로그램의 대스타인 마동을 초대해 중국 대중문화에 관해 논쟁을 펼쳤다. 쉬즈위안은 마동에게 “당신은 지금 시대를 좋아하나요?”라고 물었고, 마동은 “좋아합니다”라고 즉답했다. 그러자 쉬즈위안이 조금 의아스럽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조금도 거슬리는 게 없단 말인가요?”라고 재차 물었고, 마동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쉬즈위안은 마동을 향해 “지금 오락지상주의가 중국에 만연해 있어요. 이런 통속적이고 비루한 대중문화 환경이 시대와 대중을 무지몽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냉소적인 비판을 날렸다. 그는 작금의 중국 대중문화는 전혀 ‘영양가 없는’ 속물투성이인데, 중국 사회는 그런 영양가 없는 대중문화를 조장하고 다수 대중은 (생각 없는 바보들처럼) 거기에 열광하고 있다고 했다. 마동의 반론은 아주 치명적이었다. “나는 95%의 절대다수 대중을 위해 존재하고 당신은 당신이 대표하는 5%의 고상한 소수를 위해 존재하면 된다. 우리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먹고살기 바쁜 95%의 대중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 대중오락 문화를 즐기는 것이지 고상한 문화를 추구할 목적으로 즐기지 않는다. 고상한 문화는 당신네 소수 5%가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쉬즈위안에게 정신세계가 텅 비어 있고 저속한 대중오락 문화에 빠져 산다며 비판받은 대중이 분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쉬즈위안과 마동의 논쟁은 한동안 중국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달궜고, 이를 둘러싼 갖가지 비평이 오랫동안 쉬즈위안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자신도 그런 통속적이고 저속하다고 비판한 대중문화 스타를 초대해 대담 프로그램을 만든 뒤 그걸로 돈을 벌고 명성을 얻은 주제에 누가 누굴 저속하다고 비판하냐는 것이다. 그날 진행된 대담 프로그램에서 대중 스타 마동에게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한 쉬즈위안은 앞에 놓인 호가든 맥주를 끊임없이 마시며 가끔 흐르는 진땀을 닦아내는 아주 ‘난처한’ 모습을 연출했다.
9년 전인 2010년에도 쉬즈위안은 비슷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타임스>에 그해를 대표하는 100인의 세계 인물로 젊은 작가 한한이 선정되었다. 그가 중국을 대표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현상에 쉬즈위안은 “한한이 미친 듯이 뜨고 있는 현상은 현재 한참 굴기하는 대국(중국)에 내재된 창백하고 비참하며 천박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이것은 통속적인 대중의 승리이자 전체 민족의 실패다”라며 날 선 화살을 던졌다.
5%의 고상한 소수 엘리트 문화를 대표하는, 졸지에 ‘잘난 체하는’ 공공지식인이 ‘돼버린’ 쉬즈위안은 사실 ‘잘난 게’ 아주 많은 인물이다. 그는 줄곧 “돈을 벌고 타락할 권리를 주는 대신 공인으로서 정신생활의 독립성을 포함하여 다른 권리들을 포기하게 하는” 중국 사회의 ‘미성숙성’을 비판해왔고, 대안으로 ‘고급 정신문화’를 지향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과 역사평론 잡지, 문화 월간지와 계간지 등을 창간해 지금까지 용케도 ‘망하지 않고’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그는 중산층 가정의 외동아들로 곱게 자라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대학을 졸업했고, 졸업 후 중국의 유명 경제매체와 잡지에서 젊디젊은 나이부터 ‘필봉’을 날리며 일찌감치 ‘인생 성공’이 예견되었던, 중국 내 소수 5%의 고급 인재였다.
베냐민식 길 헤매기, 사유의 유격전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중국의 시대정신’과 마찰하지 않고 그대로만 죽 달려나갔다면, 쉬즈위안은 지금쯤 중국 내 거물급 언론매체 사장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시대와 타협하며 속물적인 성공을 얻는 대신 다소 순진한, 시대의 저항자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가 저항하는 대상은 아직 여러모로 ‘미성숙한’ 중국이다. “대체적으로 중국은 형편없이 미성숙한 국가다. 이러한 미성숙의 가장 큰 원인은 현재의 정치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스트 독재가 중국 사회를 극단적으로 왜곡시켜 국민의 사유와 행동을 변형시키고 있는 것이다.”(저서 서문 중)
2006년도에 그와 몇몇 친구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차린 서점 ‘단샹제’(單向街·일방통행로)는 바로 쉬즈위안식 저항의 출발점이다. 쉬즈위안은 언어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충실한 신자이기도 한데, 서점 단샹제는 베냐민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훈련을 해봐야 그 도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한 베냐민처럼 쉬즈위안은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일종의 베냐민식 길 헤매기, 사유의 유격전을 펼치고 있다. 단샹제 서점은 나중에 단샹콩젠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상업적인 경영 마인드가 없었던 창업 멤버들이 몇 년을 우왕좌왕하는 사이 누군가 ‘단샹제’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해버려서 할 수 없이 개명했다. 2006년 베이징 원명원에서 시작된 서점은 지금 베이징 시내의 고급 쇼핑몰 안에 두 곳, 베이징 근교 바닷가 베이다이허와 항저우에도 제법 큰 분점을 열었다. 쉬즈위안는 최근 항저우에 새로 개업한 분점에 머물며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짜느라 분주하다.
“우리는 세계를 읽는다”(We read the world). 단샹콩젠에 들어서면 벽면에 큼지막하게 쓰인 문구가 보인다. 일 년에도 몇 차례 전세계를 유랑하며 다양한 ‘세계를 읽는’ 쉬즈위안이 꿈꾸는 서점도 바로 다양한 ‘세계를 읽고 사유하는’ 공간이다. 또한 그는 “겨울에는 햇볕을 쬐고, 여름에는 서점 밖 정원에 나와 앉아서 모차르트를 듣고 맥주를 마시며 잃어버린 세대 작가의 작품을 읽는” 낭만적인 서점도 꿈꾼다.
“창업 초기 우리는 단샹콩젠이 정신을 요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사람들이 저속한 대중 가치관의 억압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 작은 서점이 좀더 큰 가치를 창조하는 입체적인 정신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한 사회는 결코 영원히 앞을 향해 달려갈 수만은 없다. 뒤도 돌아보고 오른쪽도 보고 왼쪽도 보면서 가야 한다. 또한 나처럼 속성 발전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더욱더 많은 다양한 사유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회가 더 풍부하게 구성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단샹콩젠 서점을 확대하고 확산하며 ‘즐거운 저항’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빈이나 베를린으로 도피하는 일은 없을 것그가 다른 중국 내부 저항자처럼 언제 지하 혹은 지상에서 사라지거나 유폐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각종 서구 이론과 지식에 ‘빠삭하고’ 늘 호가든과 위스키를 홀짝이며 밤새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이 자유로운 지식 유랑자는 절대로 ‘미성숙한 조국’을 버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빈이나 베를린 등으로 도피하지 않을 것이다. 쉬즈위안은 베냐민이 말한 도시의 두 가지 종류의 사람 ‘구경꾼과 산책자’ 중 산책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속성(빠른 발전)을 증오하고 믿지 않는 그는 느릿느릿 자신의 미성숙한 국가를 산책하며 천천히 잃어버린 도시의 기억들을 복원해나가는, 즐거운 저항자의 길을 기꺼이 계속 걸어갈 것이다.
베이징=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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