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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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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소사소난’할 수 있을까

여러 방면에서 품위를 잃어버린 중국의 2019년…

베이징 치하오빌딩 내 대표적 기업형 서점 ‘중신서점’
등록 2020-01-03 12:45 수정 2020-05-03 04:29
2019년 중국에선 ‘중국몽’과 ‘애국주의’ 광풍 속 경제에 드리운 암운을 보여주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왼쪽부터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그룹 류창둥 회장,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을 어긴 혐의로 긴급 체포된 화웨이 부사장 멍완저우. 연합뉴스

2019년 중국에선 ‘중국몽’과 ‘애국주의’ 광풍 속 경제에 드리운 암운을 보여주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왼쪽부터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그룹 류창둥 회장,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을 어긴 혐의로 긴급 체포된 화웨이 부사장 멍완저우. 연합뉴스

2019년 6월5일 새벽 4시께, 한 남자가 자살했다. 향년 42살. 그는 중국 블록체인 데이터분석 플랫폼 BTE(比特易)의 창업자 후이이다.

모래성처럼 무너진 기업 신화

후이이는 중국 블록체인 업계의 선두 주자이자 촉망받는 젊은 기업인이었다. BTE는 미국 경제지 가 선정한, 2018년 중국에서 가장 창의성 있는 50대 기업으로도 뽑혔다.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도 그의 능력에 주목하며 많은 펀딩을 했고, 중국에서 ‘가장 투자가치가 있는 기업상’도 받았다. 그는 세계 굴지의 회사인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차이나에서 고위직을 했고, 잘나가는 P2P(개인 거래)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하지만 잇따른 투자 실패와 적자 누적으로 회사 경영이 힘들어지자,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잔뜩 마시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네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돈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다. 하지만 돈으로 바꾼 자유통행증은 결국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숭배하던 돈과 마찬가지로, 거품처럼 지상에서 사라졌다.

중국 셴펑그룹 장전신 회장 역시 2019년 9월18일 영국 런던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48살. 인터넷 금융사업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던 기업은 홍콩 증시에도 상장돼, 그는 일찌감치 백만장자 대열에 진입했다. 하지만 2019년 중국 P2P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면서 그의 회사도 각종 투자 실패와 방만한 경영 등으로 적자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한때 네다섯 대의 개인 전용기까지 소유하며 런던에 호화 별장이 있던 장전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하다. 장전신의 죽음이 진짜든 가짜든 간에, 그가 일군 셴펑그룹의 신화는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졌다.

2019년 8월29일, 상하이 정다그룹 회장 다이즈캉이 경찰에 자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는 불법 사모펀드 조성으로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를 입힌 죄로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다이즈캉의 자수와 체포 소식은 중국 재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92년 정다그룹을 창업해 부동산·문화·금융 등의 사업에서 중국 내 최정상 지위를 차지했던 다이즈캉의 몰락은 중국 경제에 드리운 암운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다이즈캉과 동갑인 마윈의 알리바바도 다이즈캉이 지은 건물에서 만들어졌다. 다이즈캉이 재계 거물이 되었을 때, 마윈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애송이 창업자였다. 상하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로 손꼽히는 히말라야미술관을 설립하며 문화사업에서도 욕심을 보였던 그의 몰락에 대해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멈출 줄 모르는 무모한 질주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철학박사 과정까지 공부하며 좀더 ‘품위 있고 철학적인’ 기업가가 되려 했던 그의 꿈은 결국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마무리됐다.

이들과 달리, 장쑤성 우수 민영기업이던 신청그룹 회장 왕전화의 몰락은 더 드라마틱하다. 그는 2019년 6월29일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9살밖에 안 된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현재 감옥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왕전화는 사건 당시 57살로, 다이즈캉과 비슷한 연배다. 창업 시기도 거의 같은 1993년이다. 이들은 개혁·개방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중국 경제의 원시적 축적기 단계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던 1세대 민영기업가다. 왕전화는 장쑤성을 무대로 부동산 분야 거물 기업으로 성장해, 최근에는 놀이동산 사업에 주력했다. 그는 장쑤성 정부와 상하이시가 주는 전국노동모범상과 우수민영기업가상, 사회주의건설공훈상 등 온갖 상을 휩쓴 ‘상장왕’이었다. 그랬던 왕전화의 체포 소식은 중국 재계뿐 아니라 전 중국을 경악시켰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분리수거할 필요 없이 아예 생매장해야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중국 형법에 따르면, 미성년자 성폭행은 그 정도의 심각성에 따라 사형도 선고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인들은 왕전화의 ‘사형선고’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홍콩 사태에 화웨이 운명까지

왕전화 못지않게 중국인들을 경악시킨 인물은 마윈의 알리바바와 쌍벽을 이루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그룹 류창둥 회장이다. 2019년 7월, 미국 경찰은 류창둥의 성폭행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모두 공개했다. 그 증거와 증언이 너무 세세해서 차마 읽기 민망할 정도다. 그는 2018년 9월 미국 출장에서 현지 중국 유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돼, 거물급 변호사를 써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보석으로 풀려난 뒤 귀국했다. 하지만 2020년 1월 미국에서 민사소송 재판이 열려 다시 한번 그의 ‘민망한 증거’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그가 늦은 나이에 재혼한 아내는 중국에서 ‘밀크티녀’로 유명한, 칭화대학 출신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다.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그는 ‘개혁·개방 40주년, 가장 걸출한 기업인’으로 선정됐을 것이다. 걸출했던 기업인 류창둥은 왕전화처럼 비참하게 몰락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제 ‘성폭행범’의 대명사가 되었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제조 및 이동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 역시 2019년 한 해는 악몽 자체다. 2018년 12월1일,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딸이자 화웨이 부사장인 멍완저우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을 어긴 혐의로 긴급 체포된 뒤 지금까지 화웨이 사태는 중국과 캐나다, 미국 간 정치외교 ‘전쟁’으로 번졌다.

화웨이 사태는 중국인들에게 미국과 서방국가가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굴기를 방해하려는 ‘작전’으로 읽히면서 ‘전세계 중국인이여 단결하라’는 애국주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2년째 이어지는 중-미 무역협상에서도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 ‘오늘, 우리가 모두 화웨이다’라는 구호로 중국인들은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미국이 제재를 풀거나 완화하지 않으면 화웨이도 글로벌 시장에서 거품처럼 꺼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사태와 내부 정치 문제만으로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화웨이 운명까지 떠맡게 돼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한 연말을 보냈을 듯하다.

“2019년은 중국 기업인들에게 비극적인 해였다. 중국 경제는 이제 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하락 시대로 접어들었다. 2020년이 2019년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먼 미래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중국의 한 민영기업가가 2019년에 대해 내뱉은 탄식이다. 그는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뒤 민영기업들이 줄도산을 하고 있다며, 모든 책임이 국가 정책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진핑 정부의 경제정책이 왜 민영기업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 한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2019년을 이렇게 압축해서 표현했다.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면에서 품위를 상실한 해.” 홍콩 문제와 중-미 무역갈등, 주변 국가들과 외교 마찰, 경제성장 하락 등 다방면에서 중대한 품위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중국몽’과 ‘애국주의’ 광풍만이 빈 껍데기 속에서 시끄러운 나팔을 불 뿐이라고.

중국 베이징 치하오빌딩 내 복합공간형 서점 ‘중신서점’.

중국 베이징 치하오빌딩 내 복합공간형 서점 ‘중신서점’.

무엇이 민영기업을 죽음으로 내모나

중국 서점업계에서 신화서점 다음으로 전국 체인을 많이 가진 ‘중신서점’은 중국의 대표 기업형 서점이다. 모기업인 중신그룹은 1979년 덩샤오핑의 지시로 당시 국가부주석이던 룽이런이 설립한 중국 국제신탁 회사로 출발했다. 2012년 ‘중국중신그룹’이라는 국유독자기업으로 새 출발을 했다. 자회사 수십 개가 있고, 금융업과 여행·문화사업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신서점은 그룹 산하 중신출판사가 전액 출자해서 만들었다. 중신출판사는 업계에서도 ‘꽤 괜찮은’ 책을 기획하고 펴내는 것으로 평판이 좋은 곳이다. 특색 있는 잡지들을 발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도 이 출판사의 잡지와 해외 번역물을 좋아한다. 중신서점은 주로 공항과 대도시 백화점, 화이트칼라가 밀집한 오피스텔에 있다. 2018년 12월 말 통계를 보면 현재 중국 내 16개 성에 중신서점이 있다. 전국 공항에 51개 지점, 각 도시에 28개 분점이 있다. 계속 투자해 전국 공항에 500개 분점을 내는 게 목표다. 만일 이것이 달성되면 중신서점은 중국 최대 기업형 체인서점이 된다.

베이징에서 자주 가는 중신서점은 싼리툰 근처 치하오빌딩에 있다. 카페와 다양한 문화상품을 파는 매장이 있는 복합공간이다. 치하오빌딩은 고급 오피스텔로, 서점의 주 고객은 회사원들이다. 점심시간이나 저녁 퇴근시간에 서점을 찾는 회사원이 많다. 다른 서점들보다 라이프스타일 관련 책과 여행책이 많다. 자회사인 중신출판사에서 그런 책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또한 모기업이 중신그룹이다보니 서점의 한 코너 전체를 기업경영과 경제 관련 책이 차지하고 있다.

2012년 말, 중신그룹 총재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지식 대폭발 시대고, 인터넷으로 온갖 지식을 학습하는 시대다. 그래서 서점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10~20년 뒤에는 중신서점만 남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 전 나온 뉴스를 보면 중신그룹 상황도 좋지는 않다. 중신그룹의 자회사 중신궈안이 2019년 말에 돌아온 만기채권 상환에 실패해서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10~20년 뒤에도 중신그룹이 지금처럼 굴지의 대기업으로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중신서점만 살아남을 것” 장담했지만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연말이면 항상 듣는 말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어쨌든 2019년은 중국에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해다. 2020년에는 과연 ‘소사소난’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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