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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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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어라, 미쳐버린 중국-홍콩 관계여

베이징의 작은 홍콩 ‘큐브릭서점’
등록 2019-10-25 01:02 수정 2020-05-02 19:29
홍콩의 반중국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홍콩에서 나고 자라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부른 3세대의 자식들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의 반중국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홍콩에서 나고 자라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부른 3세대의 자식들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을 호랑이’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밤이었다. 그놈을 먼저 때려잡지 않으면 내가 잡아먹힐 것만 같은 숨 막히는 밤. 구월이 다 가고 시월이 오는데도 날은 한여름 중복처럼 푹푹 쪘다. 중국에서는 입추가 훨씬 지났는데도 호랑이처럼 무섭고 센 늦더위가 찾아오는 것을 ‘가을 호랑이(秋老虎)가 왔다’고 말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나 한잔 마시고 억지로 잠을 청해보려 했는데, 냉장고를 여니 ‘믿었던’ 맥주도 없다.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선풍기로 식히며, 유선방송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 그날 밤 나는 냉장고 속 저온 맥주보다 더 차갑고 공포스러운 영화를 보면서 ‘가을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었다.

“겨울 동안 호텔을 관리하며 느긋하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잭’은 가족들을 데리고 눈 내리는 고요한 오버룩호텔로 향한다. …폭설로 호텔이 고립되자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점점 미쳐가는 ‘잭’….”(네이버 영화정보에서 발췌)

결국엔 미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을 죽이려고 눈 내리는 미로 숲길을 이리저리 발광하며 헤매다가 하얗게 얼어죽은 주인공 잭. 그와 그 가족이 묵었던 영화 속 오버룩호텔은 과거 인디언들이 백인에게 대량 학살된 뒤 매장된 무덤터였다. 그곳이 백인들의 휴양지 호텔로 변했고, 그곳에서 무능하고 게으른 소설가 잭은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결국 광기에 사로잡혀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바보가 된다”는 글만 계속 타이핑하고 있다.

잭 니컬슨이 연기한 ‘잭’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그 무덤들 위에 지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호텔 같은 나라를 세웠던 ‘미국’을 상징한다. 큐브릭 감독은 이라는 공포영화를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광기와 폭력, 이중성을 보여준다. 눈 덮인 미로를 빙빙 돌며 헤매다 눈 속에 파묻혀 얼어죽고 마는 잭의 최후가 상징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향한 조롱이다. ‘일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면 잭은 미쳐서 죽게 된다’는.

세상에, 환하게 웃는 경찰이라니

21세기가 막 시작되는 2001년 8월 어느 폭염 쏟아지던 날, 중국 선전에서 지하철을 타고 홍콩에 갔다. 당시 초행길이라 며칠 홍콩 구경을 할 요량으로 싼 여행자 숙소가 몰려 있던 몽콕으로 갔다.

몽콕역에 내려 방향을 못 찾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마침 지나가던 역무원을 붙들고 내가 찾는 숙소로 나가는 출구와 위치를 물었다. 중국에서 제복 입은 사람들 앞에서는 일단 먼저 ‘눈을 내리깔고’ 공손하게 대하는 게 습관이 되었던지라, 쭈뼛쭈뼛 다가가 굽신거리듯 질문했던 것 같다. 하지만 뜻밖에도 홍콩 역무원은 빙긋 웃으며 “팔로 미” 하더니, 직접 나를 데리고 출구까지 가서 숙소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바로 저기”라고 알려주었다. 중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친절이었다.

홍콩 거리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마간산식 관광을 했다. 밤에는 레이저 조명이 번쩍이는 유명한 홍콩 야경을 보기 위해 빅토리아하버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아주 근사한 제복을 입은 홍콩 경찰 두 명이 지나가는 걸 봤다. 중국 길거리에서는 경찰만 봐도 죄지은 것 없이 가슴이 두근거려서 일부러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홍콩 경찰은 어떨까 싶은 마음에 다가가서 “테이크 포토 위드 미?”(나와 함께 사진 한 장?)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경찰 두 명이 환하게 웃더니 나를 중심에 두고 손가락으로 시키지도 않은 브이(V) 표시까지 하며 함께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활짝 웃고 여행객이나 일반인과 함께 사진 찍는 중국 경찰을 본 적이 없다.

그날 나는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뒤, 막연하게 ‘홍콩은 중국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본 홍콩, 홍콩인은 뭔가 중국과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 뒤 1년여 지나 두 번째 홍콩에 갔을 때는 알란과 그의 친구들을 만났다. 알란은 중국 소상품 시장이 밀집한 이우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가 “홍콩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알란은 생계를 위해 이우와 홍콩을 오가며 소상품 무역업을 했는데,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사진과 영화 작업이라고 했다. 알란은 또래 친구 두 명과 함께 이틀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를 데리고 홍콩의 유명한 홍등가와 점성술 거리 등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홍콩 밤거리를 구경시켜주며 홍콩의 슬픈 역사를 들려줬다.

당시 알란과 그의 두 친구는 이십 대 후반으로, 1945년을 기점으로 보면 홍콩인 3세대 정도 된다. 1842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한 뒤 1941~45년 일본이 잠시 점령했다가 이후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되고, 1997년 중국으로 돌아가기까지 홍콩은 무수한 ‘자아 정체성’에 시달렸다.

홍콩인, 발명되고 상상되었지만 실재하는

20세기 이후 홍콩의 1세대는 대부분 중국 대륙의 정치 문제나 기아, 전쟁 등의 위험을 피해 홍콩과 가까운 광둥 지방이나 상하이 등에서 떠나온 ‘난민 세대’다. 이들은 당연히 홍콩인이라는 정체성보다 떠나온 중국 고향에 대한 뿌리 의식이 깊다. 본격적인 ‘홍콩인 탄생’은 이들 부모 ‘난민 세대’를 따라 어린 시절 홍콩에 온 사람들과, 1945년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된 뒤 홍콩에서 나고 자란 ‘베이비붐 세대’에서 시작된다. 알란과 그의 친구들은 베이비붐 세대 부모를 둔 3세대 홍콩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알란과 그의 친구들은 월급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는 살인적인 집값과 갈수록 좁아지는 일자리, 하락하는 임금수준을 고민했다. 중국 반환 뒤 중국 대륙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고임금자이든 저임금자이든 홍콩에서 먹고살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일하는 알란의 친구도 홍콩에서 먹고사는 일은 침사추이의 빽빽한 마천루들처럼 아찔한 미래라고 했다.

홍콩의 유명 작가이자 잡지 발행인인 천관중은 알란의 부모 세대 격인 베이비붐 세대다. 그는 책 (我这一代香港人)에서 1945년 이후 홍콩에서 출생한 세대야말로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신세대 홍콩인이며 진정한 ‘홍콩인의 탄생’이라고 했다.

천관중은 ‘홍콩인은 발명되고 상상되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역사적 실체가 있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실체가 있는 존재로서 홍콩인은 1945년 이후 출생한,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이민 온,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은 영국 식민지 교육을 받고 1970년대 이후 홍콩 호황기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이들은 영국인이 될 수도 없고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하지도 않으며, 중국인과 동일시되는 것을 싫어한다. 부모 세대가 중국 내륙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중국에 관심도 없고 이전 세대보다 서구화되고 홍콩화된 신세대는 자신들을 ‘홍콩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홍콩과 베이징을 연결하는 문화 가교 구실을 한다’고 소개하는 큐브릭서점. 박현숙

‘홍콩과 베이징을 연결하는 문화 가교 구실을 한다’고 소개하는 큐브릭서점. 박현숙

당신들이 말한 ‘홍콩인’은 누구인가

1997년 중국 반환이 결정됐을 때, 홍콩에선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대규모 이민 물결이 일어났다. 이 물결의 중심에 있던 베이비붐 세대는 중국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두려움과 중국 공산당이 통치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다고 한다.

알란 같은 3세대 홍콩인들은 지금 그 정치적 두려움의 실체와 거품 빠진 경제의 구조적 위기, 중국 공산당이 통치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회귀 후’ 청장년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 ‘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홍콩의 반중국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4세대 홍콩인으로 자라고 있다.

베이징에도 ‘작은 홍콩’이 있다. 베이징 둥즈먼에 있는 유명한 디자인 건축물인 ‘당다이 모마’(当代 MOMA)라는 복합 건물 안에 홍콩이 본점인 ‘바이라오후이’ 영화극장이 있고 그 극장 앞에 역시 홍콩이 본점인 ‘큐브릭서점’(库布里克書店)이 있다. 서점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에서 따왔다. 홍콩 본점 서점도 베이징과 마찬가지로 ‘바이라오후이’ 극장 옆에 있다.

바이라오후이 극장과 큐브릭서점은 일심동체다. 사장 장즈창은 영화에 관심 많은 투자자이자 제작자이다. 바이라오후이는 베이징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영화관이며, 항상 옆에 붙어다니는 큐브릭서점도 베이징의 서점 마니아들 사이에서 성지로 꼽힌다.

홍콩 본점은 2001년 문을 열었고, 베이징에는 2010년 12월에 개장했다. 큐브릭서점에는 영화와 사진, 예술 관련 책이 가장 많다. 그리고 일반 서점에서는 찾기 힘든 정치학 책과 인문서적이 주로 있다. 입구 정면에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관련 책들과 그가 찍은 영화들의 대형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베이징 큐브릭서점 누리집에는 이런 소개글이 있다. “베이징 큐브릭서점은 홍콩과 베이징을 연결하는 문화 가교 구실을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홍콩과 베이징 사이에는 그 ‘가교’만으로는 아직 건너지 못하는 넓고도 깊은 강이 흐른다.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라고 외치는 중국 사람들의 불타는 애국심과 민족주의 정서의 맞은편에는, “우리는 홍콩인”이라고 외치는 홍콩 사람들의 기나긴 ‘정체성 투쟁’이 양날의 칼이 되어 서로 등지고 있다. 홍콩인들은 베이징을 향해 항변하듯 되묻는다.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港人治港)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당신들이 말한 홍콩인이란 ‘우리’가 아닌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고. 우리가 바로 ‘홍콩인’이지 않으냐고.

미로처럼 꼬일 대로 꼬인

베이징 큐브릭서점에서 다시 영화 속 오버룩호텔과 미치광이 잭을 떠올렸다. 잭이 밤새도록 미쳐서 헤매다가 얼어죽고 마는 미로처럼, 꼬일 대로 꼬인 홍콩과 중국 사이에는 출구가 없다. 이 미로의 종말은 무엇일까. 미쳐버린 잭은 미로에 갇혀서 얼어죽지만, 사락사락 눈 내리는 한겨울 오버룩호텔은 누가 지킬 것인가. ‘가을 호랑이’ 같은 답답한 상황도 그 안에 갇히면 미쳐서 날뛰다가 조용히 얼어죽을 수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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