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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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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되지 않은 정신은 팔 수 없다

상하이 당국에 의해 사실상 강제 폐업당한 ‘지펑서점’
등록 2019-07-09 01:57 수정 2020-05-02 19:29
상하이 지펑서점 폐점 100일 전 카운트다운 모습. 지펑서점 홈페이지 갈무리

상하이 지펑서점 폐점 100일 전 카운트다운 모습. 지펑서점 홈페이지 갈무리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전자우편함이 열리질 않는다. 자주 가는 한국 포털 사이트 카페와 블로그는 진즉에 ‘차단’되었지만 전자우편까지 전면 차단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은 오래전부터 아예 할 생각을 포기했다. 가상사설망(VPN)을 깔아야지만 열리는 사이트들이다. 그런데 가상사설망도 열리지 않는다. 한 달에 무려 20위안(3400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해서, 가끔 차단된 사이트와 블로그 등을 들여다봤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범죄인 인도 송환법’ 문제로 홍콩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있은 뒤,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책을 불태우고 서점을 강제 폐쇄한 시절

홍콩 시위가 격화한 후부터는, 전 중국인이 사용하는 모바일 채팅 ‘위챗’에서 홍콩 시위 관련 사진을 올리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자들은 엄벌에 처한다는 ‘경고문’까지 떴다. 괜한 오기가 발동해서, ‘불온 사이트’로 차단된 외국의 유명 일간지에서 관련 기사와 사진들을 갈무리(캡처)해서 올려봤다. 올린 지 1분도 안 돼 자동 삭제가 된다. 다행히 아직 ‘사상경찰’이 나를 찾아오거나 잡아가지는 않았다. 그나마 감사할 일이다. ‘5세대(5G) 이동통신을 가장 먼저 도입하겠다는 나라에서 이게 무슨 쌍팔년도 시절 짓거리냐’고 친구에게 푸념했다. 무시무시한 KGB(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 출신 푸틴이 통치하는 나라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살다 귀국한 친구가 말하길, 러시아도 그렇게 심하진 않단다. 미국 다음으로 ‘힘 자랑, 돈 자랑’ 하기 바쁜 중국이 도대체 왜 이렇게 심한 인터넷 통제와 감시를 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간다. 무슨 엄청난 비밀과 진실을 안다고 해도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에 오랫동안 길든 중국인들은 쉽게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재산상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1989년 천안문(톈안먼)의 ‘악몽’을 아직도 기억하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같은 ‘핏줄’인 홍콩 동포들이 ‘반중국’을 외치며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소설 에 나오는 감시 체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 ‘그 시절’처럼 책과 서점을 불태우거나 강제 폐쇄를 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하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멀지 않은 과거에 정말로 책과 서점을 모두 없애버린 시절이 있었다.

“나는 1960년대에 태어났고 ‘3년 자연재해’와 맞닥뜨린, 기아 세대였다. 내가 네다섯 살일 때 중국은 읽을 책이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문화대혁명(문혁)이 일어났고 책과 고전음악이 대부분 금지됐다. 유년 시절 기억 중에 책과 관련된 가장 인상 깊은 일이라면, 분서다. 어느 여름날, 어머니가 교사로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이 낄낄대면서 도서관 책들을 운동장 한켠으로 내던졌다. …홍위병들은 도서관에서 들고 나온 책들을 불길 속에 집어던졌는데, 그 장면은 마치 야외에서 고기 굽는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영국 일간지 의 중국 주재 기자와 인터넷판 총책임편집자를 했고 지금은 상하이 푸단대학 교수로 있는 장리펀이 쓴 ‘우리는 한때 책에 굶주리던 백성이었다’(我们曾是书的饥民)라는 에세이에 소개된 일화다. 1966~76년 문혁 시대에 오로지 ‘독서’가 허가된 책이라고는 과 혁명 소설 몇 권, 정치 문건들뿐이었다. 영업이 허가된 서점은 국영 신화서점이 유일했다.

을 끼고 살던 위화의 진실

오랫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먹을 수만 있으면’ 닥치는 대로 먹는 것처럼, ‘책과 서점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 역시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던 ‘수황세대’(书荒世代·읽을 만한 책이 없는 시대를 살던 세대)다. 작가 위화는 을 하루 종일 끼고 살다시피 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투철한 혁명성’을 칭송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은 위화가 읽었던 것은 안에 담긴 각종 ‘주석들’이었다. 적어도 그 주석에는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황세대는 ‘자아비판’과 ‘계급의 적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붙었던 각종 대자보 내용도 달달 외우다시피 읽었다. 특히 불륜이나 치정, 비도덕적 문제를 비판하는 대자보는 금지된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짜릿했다.

1976년 문혁이 끝나고, 차츰 도서관과 서점이 하나둘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책에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이 한정됐고 그나마도 서표가 있어야 서점 앞에 줄이라도 설 수 있었다. 서표 한 장당 두 권의 책을 살 수 있었던 시절에 사람들은 서점 문이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감격스러웠다. “아침 일곱 시 정각에 우리 마을 신화서점의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순간 뭔가 신성한 느낌이 내 가슴속에서 용솟음쳤다.”(위화, 중)

‘수황’시대가 가고 지금 중국은 ‘슈뎬’(书店·서점) 시대가 되었다. 도시마다 서점이 넘쳐나고 책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 서점에는 여전히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이 득실댄다. 허가된 책은 팔아도 되지만 허가되지 않은 ‘정신’은 팔아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빅브라더’의 은밀한 사생활과 관련한 책들을 유통하고 팔던 홍콩 통뤄완 서점을 비롯한 서점과 서적상들도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가끔 홍콩에 갈 때마다 ‘애정하던’ 서점이었는데 말이다. 그 은밀한 사생활이라는 것도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시시한’ 내용이다.

상하이인들이 가장 ‘애정했던’ 독립서점 지펑서점(季风书园, 지펑은 계절풍이라는 뜻)은 2018년 1월30일을 마지막으로 완전 폐업했다. “파리에는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 서점이 있듯이, 상하이에는 지펑서점이 있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지펑서점은 상하이인들의 자부심이었다. 1997년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이던 옌보폐이가 주축이 되어 상하이의 산시난루 지하철역에서 작은 서점으로 시작했던 지펑서점은 2018년 완전 폐업을 하기 전까지 상하이 곳곳에 분점 7곳을 운영했다.

2017년 가을 무렵, 상하이에서 만난 저스틴 훙은 지펑서점에 관한 추억을 얘기하면서 자주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빅브라더 때문”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했다. 당시 전국 서점가에 지펑서점이 ‘강제 폐업’한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당시 상하이 도서관 지하철 역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지펑서점 본점은 폐업을 향해 카운트다운하고 있었다. 그사이 나머지 일곱 분점은 재정 문제와 임대료 폭등 등 여러 이유로 문을 닫았다.

지펑서점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왼쪽). 방문객이 그린 견우 직녀 그림. “내년 칠석날에는 지펑이 상하이를 떠났겠죠. 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 함께 손잡고 가요.” 박현숙

지펑서점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왼쪽). 방문객이 그린 견우 직녀 그림. “내년 칠석날에는 지펑이 상하이를 떠났겠죠. 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 함께 손잡고 가요.” 박현숙

“지하철역에 하겐다스만 있으면 되겠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상하이의 건물 임대료가 열 배 이상 폭등했을 때 지펑서점 본점이 임대료 폭탄을 맞아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지펑서점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과 상하이 매체들이 중심이 되어 “지하철역에 하겐다스만 있어서는 안 되고, 하버마스가 없으면 안 된다”는 구호를 외치며 ‘지펑서점 구하기’ 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 그 덕분에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2012년 다시 임대계약 만료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영업장인 지하철 상하이 도서관역으로 이전했다. 이때도 위먀오라는 기업인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6년 뒤인 2018년 1월30일, 상하이 도서관 쪽의 ‘계약 연장 거부’로 지펑서점은 상하이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영업을 하던 2018년 1월30일, 저녁 7시30분쯤 전기 공급이 차단되자 전국 각지에서 지펑서점의 ‘마지막 날’을 지키러 왔던 사람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마지막 밤을 밝혔다.

지펑서점은 사실상 상하이 당국에 의해 ‘강제 폐업’됐다. 상하이 지식사회의 정신적 젖줄 역할을 하며 항상 각종 ‘민감한’ 정치·사회 문제 토론회와 독자모임 등을 여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던 상하이 당국은 갖은 핑계를 대며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새로운 서점 자리를 알아보려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약을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해마다 계절풍은 불어온다

지펑서점의 창립자인 옌보페이는 마지막 영업을 하면서 이런 소회를 남겼다. “나는 그저 (붕괴를 향해가는 시대에) 미지의 미래 세계를 위해 몇 줌 안 되는 사상, 생각들을 보관하려고 했을 뿐이다. 비록 아주 하찮은 것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무지는 힘.” 조지 오웰의 소설 에 등장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통치당의 3대 핵심 구호다. 그곳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지우는 작업을 하는 진리부에 근무하던 주인공 윈스턴은 어느 날부터 텔레스크린의 사각지대에서 홀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일기 쓰기는 오세아니아에서 금지된 행위다. 사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뒤 윈스턴은 금서로 지정된, 반체제 인사 골드스타인이 쓴 책들을 읽으면서 체제가 강요한 ‘이중사고’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실제 세계에서도 오세아니아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바로 사유하는 힘, 생각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빅브라더는 사유의 힘을 불어넣는 책과 그것을 파는 서점들을 가장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계절풍은 불어온다.

상하이(중국)=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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