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좀 제대로 골라! 아무렇게나 하면 내가 다시 골라야 하잖아! 창고에 있는 책들은 치우든지 버리든지 하라고 몇 번을 말했어! 지난달 적자가 얼마나 큰 줄 알아?”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가게 사방 벽으로 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장 선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원두 고르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손님은 나 혼자밖에 없는 가게 안에 주인장 부부를 제외하고 종업원이 세 명이나 더 있었다. 그곳은 명색이 서점이었지만, 책보다는 커피나 음료수 위주로 팔아 근근이 버텨나가는 눈치였다.
양저우 중심지에서도 외떨어진 길목 한 귀퉁이에 있는 그 서점을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갔지만, 그곳에는 흔히 상상하는 서점 풍경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중국 소설가 류전윈이 단편소설 ‘한줌 닭털 같은 나날’(一地鸡毛)에서 묘사한, 속물적이고 소시민적인 일상이 주인장 아내의 신경질적인 잔소리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염전 상업도시는 ‘볶음밥’으로 기억되는 도시로중국 개혁·개방기 초기인 1980~90년대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한줌 닭털 같은 나날’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샤오린 집의 두부 한 근이 상했다.” 그 두부 한 근을 사다가 회사 통근 버스를 놓치고, 서둘러 일반 버스를 타기 위해 나가다가 그만 두부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걸 깜빡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상해버린 두부 때문에 아내와 싸우게 되고, 그 뒤 주인공 샤오린에게 ‘상한 두부’처럼 오만 가지 ‘닭털 같은 나날’이 펼쳐진다.
그날 내가 목격한 장 선생의 일상도 소설 속 주인공 샤오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두를 고르는 그의 손길에는 일상의 무기력함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아내의 얼굴에도 펴지지 않는 생활의 고단함에 대한 분노와 적막한 고독이 서려 있었다. 그 집에서 가장 비싼 드립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국 마시듯 훌훌 마시고, 나는 상한 두부처럼 쿰쿰하고 퀴퀴한 묵은 책 냄새가 나는 장 선생의 서점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장 선생을 한번 힐끗 쳐다보면서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장 선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 말고 부디 용기를 가지시라!”
양저우는 나에게 장 선생의 쇠락해가는 서점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양저우는 한때 중국 전역의 소금장수들이 드나들며 염전 상업으로 번성한 도시이고 중국 강남의 물자를 북쪽 지방으로 운송한, 중국에서 대운하가 가장 번성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지금은 ‘양저우 볶음밥’ 이미지로만 각인된 작은 변방 도시로 전락했다.
양저우는 미식의 고장으로도 유명한데, 원래는 양저우가 원조 격인 강남 지역의 만두 요리와 국수 등 면 요리가 지금은 난징과 쑤저우, 항저우 등 이웃 도시에 ‘원조 명성’을 빼앗기고 있다. 양저우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이곳이 모든 면에서 빛을 잃고 옛 영광을 빼앗긴 변방의 소도시로 쇠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비도 어찌나 처량하고 궁상맞게 내리던지.
“집 한 채면 얼마나 많은 책 일을 할 수 있는지”“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물어요, 아직도 안 망했냐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렇게 미련스럽게 하냐고요. 지금 이곳에 터 잡기까지 총 네 번 이사했어요. 세 번째 이사한 곳은 쥐가 나오는 지하 차고지 옆 창고 방이었어요. 그때가 (경제적으로) 인생의 최악이었고, 어떤 날은 하루 한 끼 밥 사 먹을 돈도 없었지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고 핑계 대고…. 그래도 지금까지 용케 잘 버텨오고 있어요. 계속 이렇게 잘 버티며 살아갈 거예요. 이 일을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잘하는 게 이 일밖에 없거든요. 한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 다니면서 남부럽지 않은 월급 받으며 살기도 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 삶은 아주 수동적이고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이 아니었으니까요.
베이징에서는 집 한 채에 1천만위안(약 17억원)이 넘는데, 그 돈이면 내가 여기서 서점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요. 베이징에서는 그렇게 비싼 집에 살면서 다들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나요? 난 세상에 그렇게 비싼 집에 산다는 게, 어쩔 때는 정말 이해가 안 가서요. 양저우와 베이징은 같은 중국인데도 너무 다른 세계 같아요.
나라고 왜 힘들지 않겠어요? 하지만 늘 머릿속에서 ‘이 일’만 생각하고 살아요. 어떻게 하면 이 일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좀더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장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그 결과 조금씩 조금씩 성공(이 대목에서 장 선생은 멋쩍게 웃었다)했고 앞으로도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어요.”
양저우에는 그럴싸한, 번듯해 보이는 서점다운 서점이 없는 줄 알았다. 애초에 장 선생의 서점을 염두에 두고 갔지만 그곳은 이미 서점이라기보다 골목 한구석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폐업 직전의 낡고 퀴퀴한 서점 카페였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양저우에선 제법 ‘유명하다’는 현대식 서점과 헌책방들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이곳은 서점이다’라고 할 만한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숨겨진 보석 같은 서점을 발견했다. 양저우에서 예로부터 가죽 제품을 팔고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했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피스제(皮市街)에 있는 볜청서점(邊城書店)이 바로 그곳이다.
‘볜청’은 우리말로 하면 ‘변경’ 또는 ‘변방’이라는 뜻이다. 볜청서점은 양저우의 오래된 골목에 불을 밝히는, 쇠락해가는 변방 도시의 작은 등대와도 같은 곳이었다. 서점 안에 작은 숙박시설이 있어 낯선 여행자들이 머물다 갈 수 있다.
볜청서점에서 만난 39살의 젊은 사장 왕쥔은 나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요약해 ‘버티는 삶’이라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존버 정신’의 승리라고나 할까. 2008년 양저우대학 부근에서 처음 시작한 그의 서점은 지난 10년 동안 네 번 이사한 끝에 지금의 피스제 골목 중심가에 둥지를 틀었다. 고향은 원래 안후이 지방이고 대학도 난징에서 나왔지만, 양저우 특유의 ‘슬로 라이프’(느리게 사는) 분위기가 좋아서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렸다. 무엇보다 이곳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중국 당대의 최고 작가이자 문화재 연구가인 선충원의 소설 에서 묘사되는 쓸쓸하고 적막한 변방 도시 ‘차퉁’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고 했다.
선충원의 소설 의 주요 무대인 차퉁은 샹시의 변방에 있는 작은 산촌 마을인데, 이 마을에 뱃사공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딸 취취가 산다. 소설 속 차퉁은 작가 선충원의 고향인 후난성 봉황고성을 모델로 했다. 선충원의 마음에 항상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낙원 같은 곳이다. 볜청서점이라는 이름은 왕쥔이 선충원에게 바치는 오마주(존경)다. 서점에 들어서면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된 선충원의 책들이 가장 먼저 보인다.
왕쥔이 존경하는 선충원의 인생도 어찌 보면 과거의 영광을 잃고 변방화돼가는 양저우 고성 내 작은 골목들의 궤적을 닮았다. 고향인 후난성 봉황고성을 떠나, 1923년 베이징에 처음 온 선충원은 지금의 첸먼 거리에 있는 작은 골방에서 고단한 베이징살이를 시작했다. 1988년 5월10일 베이징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중국의 대표적인 불운한 지식인이었다.
“한발 한발 사람들 중심으로”뛰어난 문장가이자 중국 역사 문물 연구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던 선충원은 1948년부터 30여 년간 베이징 역사박물관에서 문물 감별과 자료 정리, 박물관 안내 등을 했다.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된 뒤 선충원은 반동 우파 지식인으로 비판받았다. 그 때문에 역량에 걸맞은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역사박물관의 구석진 자리에서 쓸쓸히 문물 연구에만 몰두했다. 박물관에 간부들과 그 부인들이 견학을 오면 박물관 직원 가운데 가장 박식했던 그가 늘 영접을 나가 해설과 안내를 맡았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인 선충원이 박물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걸 본 그의 친구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혀를 찼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때도 혹독한 고초를 겪었는데, 당시 선충원이 배치받은 일은 글을 쓰거나 문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화장실 청소였다.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날, 인적 드문 베이징 역사박물관의 구석진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홀로 적막하게 천안문(톈안먼) 광장을 내려다보는 선충원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선충원은 ‘적막함’이란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무엇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병색이 깊어져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주변에 있던 친구들에게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해 별달리 할 말이 없어!”
책 속에는 과거의 모든 영혼이‘상한 두부’ 같고 ‘한줌 닭털’ 같은 인생길을 마감하면서 선충원의 마지막 깨달음은 바로 자신을 괴롭히고 욕보였던 세상에 대한 ‘침착하고 조용한 침묵’이었다. 아내의 잔소리를 묵묵히 견디며 원두를 고르던 장 선생의 ‘침묵’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저우는 지금 과거의 찬란하고 휘황했던 빛을 잃고 중심에서 갈수록 멀어지는 ‘변방 도시’가 됐어요.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사는 방식도 이 도시처럼 변방화됐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전 여기가 참 좋아요. 제 성격과 비슷해서요. 이 변방 도시에서 중심을 향해 한발 한발 차근히 나갈 겁니다. 사람들의 중심으로요.”
왕쥔은 선충원처럼 묵묵히 일관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의 서점은 다른 대도시의 화려한 서점들처럼 많은 신간과 유명한 책을 팔지 않는다. 대신 그는 책을 파는 일 외에 고서 복원과 고서·골동품 등을 이용한 문화상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잊히고 사라져가는 옛것들을 복원하고 새롭게 현대적으로 바꾸는 일을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왕쥔의 볜청서점 입구에는 영국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의 글귀가 걸려 있다. “책 속에는 과거의 모든 영혼이 가로누워 있다.”(书中横卧着整个过去的灵魂)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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