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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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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

지금도 어둠 속에 빛을 찾아헤매는 ‘친애하는 당신들’에게
등록 2020-03-23 18:49 수정 2020-05-03 04:29
베이징의 완성서점 앞 점장의 추천 도서가 입간판에 적혀 있다.

베이징의 완성서점 앞 점장의 추천 도서가 입간판에 적혀 있다.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 말을 먹이고, 장작을 패고, 세계를 주유해야지/ 내일부터는,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가져야지/ 내 집 한 채는 바다를 향해 있어 봄엔 꽃이 핀다네/ (중략)/ 나는 그저 꽃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 있기를 바라네”
-하이쯔의 시 ‘꽃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서’ 중

한때 요절한 중국 시인 하이쯔(海子)의 시를 매일 노래처럼 흥얼거리고 다녔다. 정작 시인은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나는 그의 시에서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뜻하지 않게 장기화한 타국살이의 고단함,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이국땅을 배회하는 이방인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고독이 차오를 때면 가만히 누워서 하이쯔의 시를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

1989년 3월26일, 이제 갓 26살이 된 젊은 시인 하이쯔는 베이징 인근에 있는 허베이성 산하이관의 낡은 철로 위에 누워 자살했다. 그가 누웠던 철로 옆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봄이었으니 바닷가 철길 옆으로 꽃들이 해사하게 피었을 것이다. 죽기 전 그는 네 권의 책을 휴대했다고 한다. 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 노르웨이 인류학자이자 위대한 탐험가인 토르 헤위에르달이 뗏목 하나로 태평양을 항해한 기록집 , 그리고 조지프 콘래드 전집이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묘하게도 바다와 연관됐거나 자신만의 지상낙원 혹은 천국을 갈구하는 내용이다. 하이쯔가 찾으려던 자신만의 지상낙원은 어디였을까?

어린 시절, 강제 도보 여행

어릴 적 먼 길을 오가며 초등학교에 다녔다. 마을을 오가는 버스도 하루 두 차례뿐이던 깡촌 마을이었다. 아침 7시께 집을 나서 굽이굽이 산길과 물길을 건너, 족히 두 시간은 걸어야 도착했던 산골 학교의 등굣길. 하굣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매일 같은 길을 오가야 하는 강제 도보 여행과도 같았다. 나름 험난한 학교로의 여행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건 나만의 천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문구류와 대부분 불량식품인 조잡한 간식거리, 그리고 질 나쁜 종이에 인쇄된, 모든 표지가 파란색인 출처 불명의 동화책을 팔던 잡동사니 ‘점방’이 바로 나의 천국이었다. 그곳은 문방구이자 과자가게이자, 또 서점도 되는 만능 점방이었다.

엄마에게 온갖 거짓말을 하며 받아낸 푼돈 몇십원을 모아 국화빵이나 구슬과자, 쫀득이 같은 불량식품을 사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가장 큰 재미는 책을 사서 읽는 일이었다. 출판사도 작가도 표시되지 않은 출처 불명의, 조악하기 그지없던 파란색 표지를 뒤집어쓴 동화책 중에는 같은 세계 고전 명작들도 있었다.

다음번 용돈이 모여 새 책을 살 수 있을 때까지, 파란색 표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독서광’이어서가 절대 아니다. 첩첩산중 산골마을 학교에는 도서관도 없었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게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 시절 우리는 무슨 재미로 학교에 다녔을까. 걷는 재미를 알 나이도 아니고, 고작해야 친구들과 하는 독작기(공기) 놀이나 딱지치기, 말뚝박기 같은 몸놀이 외에 달리 뭐가 있겠는가. 그 산골마을에는 텔레비전도 많이 보급되지 않았고, 기차는커녕 버스도 맘대로 타지 못하는 처지라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저 산 너머 세상에 대한 허기진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었던 건, 나에게는 파란색 표지로 불법 인쇄된 ‘명작 동화책’들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산골 학교 앞 만능 점방은 내 인생의 첫 서점이자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상상의 문지방이었다.

초등학교 후반기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것도 무려 강남 대치동에서 말이다. 그 시절 강남은 지금 강남 모습이 아니라, 허허벌판에 난잡한 시장통과 더러운 개천이 한데 섞여 있던 ‘개발 전’ 서울 변두리 동네였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는 은광여고가 있었고, 은광여고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에는 오래된 터줏대감 같은 동네 서점이 있었다. 그 일대에선 규모가 가장 큰 서점이었다. 각종 문제집과 참고서부터 동서고금 명작,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다 파는 종합 서점이었다. 나는 매일 하굣길에 그곳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책을 사지 않아도 주인아줌마가 지청구하지 않아서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한참 동안 책을 구경하다 왔다.

하이쯔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이 시대에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시인 하이쯔의 사진과 그의 시집.

하이쯔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이 시대에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시인 하이쯔의 사진과 그의 시집.

그 천국에는 무료함과 지루함이 없네

그곳은 나에게 세상에는 ‘서점’이라는, 천국 같은 장소가 있다는 걸 알려준 최초의 서점이었다. 그 천국에는 시간이 주는 무료함과 지루함이 없다는 것, 배고픔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널렸다는 것, 그리고 늘 새로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신기한 이야기가 넘쳐난다는 것. 나중에 커서 혼자 여행을 떠나면서 여행의 재미를 알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서점은 기차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멀리 있는 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게 하는 상상여행사였다.

중국에 와서 생애 첫 타국살이를 시작한 뒤, 서점은 나에게 또다시 천국보다 더 가까운 천국이 되었다.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며 산다는 건 하루에도 수십 번 ‘하얀 쌀밥에 김치’를 떠올리는 일처럼, 모든 오래된 습관과 고통스러운 작별을 요구한다. 그중에 모국어로 된 책과 신간을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바로바로 읽을 수 없다는 고통이 제일 컸다. 주변이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으로 다가올 때의 공포와 외로움은, 그 괴물 같은 언어가 들리고 읽히는 순간부터 차츰 순화됐다. 그 언어가 친숙해져서 제법 책을 읽을 정도가 되었을 때, 중국이라는 낯선 괴물은 ‘친애하는 당신’으로 다가왔다.

중국어 해독이 가능해진 뒤 나의 가장 ‘친애하는 당신’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베이징대학 앞 ‘완성(万圣)서점’이었다. 집에서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당시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했던 지식인들의 집합소이자 지식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방문했다. ‘독서를 통한 해방’을 모토로 내걸었던 그곳에서 나는, 지금은 작고한 베이징대학 지셴린 교수도 만났고, 서점 창업자이자 중국 서점계 거두인 류쑤리 선생이 직접 계산해주는 책도 여러 권 샀다. 또한 그 서점에서 중국 문화대혁명(문혁)과 충격적인 조우도 했다. 당시 한국에는 제대로 소개된 책이 없어서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문혁 관련 기록문학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여서, 한동안 완성서점에서 살다시피 하며 문혁 관련 책을 수집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자유롭던 시절

지금은 홍콩이나 대만 등을 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당시 완성서점에 가면 마오쩌둥과 중국 혁명에 얽힌 거의 금서 같은 책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인민의 벗’으로만 각인되던 저우언라이 총리나 류샤오치 주석 등 혁명 원로들의 드러나지 않은 ‘비사’를 담은 책을 볼 수 있었던 곳도 완성서점이다. 중국 내에 비판적 지식인들의 살롱 같은 게 존재함을 안 것도 바로 완성서점에서였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지금 시진핑 시대 중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가 조금은 가능했던 시절이다. 나의 ‘중국 읽기’ 시작과, ‘독서를 통한 (중국에 대한 좁은 인식에서) 해방’이 이루어진 곳도 바로 완성서점에서다. 베이징에서 완성서점이 사라진다는 건 곧 나의 ‘친애하는 당신’이 사라지는 것이고 중국에서 쌓인 귀중한 독서의 추억 한 귀퉁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사이 무수한 세월이 흘러 지금 중국은 세계 정치·경제의 거대한 ‘거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나의 친애하는 당신들’은 서서히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완성서점도 지난해부터 당국으로부터 줄기차게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다.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서점 간판도 못 달게 하거나,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서 영업 중단 협박을 하기도 한다. 사라지는 건 서점만이 아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봉건 전제군주 시대로 돌아간 듯이, 중국에서는 갈수록 금서가 늘어나고 지식인들의 비판적인 사고와 생각의 자유도 점점 ‘감금당하고’ 있다.

하이쯔가 자살하지 않고 지금까지 용케 살았다고 할지라도, 어쩌면 우울증이나 실어증에 걸려서 시 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들일지라도, ‘독서를 통한 해방’의 사유와 언어를 상실당한 중국에서 오늘을 산다는 건 절대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하이쯔가 당장 오늘부터가 아닌, ‘내일부터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소망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직 당신만 생각합니다
“누나, 오늘 밤 나는 더링하에 있습니다. 어둠이 짙어갑니다. (중략)
여긴 비 내리는 황량한 성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중략)
누나, 오늘 밤 나는 인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오직 당신만 생각합니다.”
-1988년 7월25일, 기차를 타고 더링하(중국 칭하이성에 있는 도시)를 지나며, 하이쯔의 시 ‘일기’ 중

나도 오늘은 인류에 대한 관심도, 중국에 대한 관심도 없다. 오직 ‘친애하는 당신들’만 생각하는 중이다. 꽃피는 봄날, 바다를 향해 서서….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중국 서점 기행’을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필자와 기다려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박현숙씨는 다른 연재로 곧 찾아옵니다. 계속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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