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께, 집 앞 버스 정류장에는 베이징 내 거의 모든 국제학교 등·하교 차량이 줄줄이 정차한다. 날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생 딸이 뜬금없이 묻는다. “엄마, 우리 집은 무슨 계급이야?”
“우리 집은 무슨 계급이야”딸도 집 앞 정류장에서 학교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베이징 국제학교 가운데 학비가 가장 저렴한, 중국 공립학교 내에 설립된 국제학교다. 1년에 1억원 가까이 드는 영미 계열 국제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그냥 ‘로컬’로 통한다. 우리 형편에 ‘로컬 국제학교’ 학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남편 사업이 승승장구할 때는 나도 ‘베이징 사모님’을 꿈꾸며, 매일 아이들이 고급스러운 ‘인터내셔널’ 학교의 교복과 가방을 메고 ‘자랑스러운’ 학교 로고가 새겨진 ‘진짜’ 국제학교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한적하고 분위기 있는 브런치 카페에서 국제학교 부모들과 한담을 즐기며 아이들 과외 교사와 진학 정보 등 우리만 아는 ‘절대 비밀’ 정보를 교환하며 한나절을 폼나고 품격 있게 보내는 모습도 상상했다. 말로만 듣던 그 ‘인터내셔널스쿨 계급’이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우리 형편은 ‘로컬 계급’이 되었다. 하마터면 ‘베이징 사모님’이 될 뻔했던 나는, 브런치 카페는 지나가다 구경만 하고, 날마다 홀로 ‘집구석’에 처박혀 주로 달걀프라이와 김치찌개를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 있다. 목이 멜 때면 가끔 ‘수입 맥주’를 홀짝이고, 인기 드라마를 보면서 미친년처럼 혼자 낄낄거리며 밥알을 우물거린다.
딸의 질문을 받고 잠시 ‘우리는 무슨 계급일까’ 생각했다. 딸의 말을 들어보면, 아침에 정류장에서 학교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들의 ‘사는 수준’이 한눈에 파악된다고 한다. 입고 있는 교복과 가방에 새겨진 학교 로고, 그들이 올라타는 학교버스 크기와 화려함, 정류장까지 아이들을 태우고 오는 부모들의 자가용 브랜드 등으로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중 가장 ‘밑바닥 계급’은 ‘자토바이’라는 전동 소형 오토바이나 자전거 뒤에 아이들을 태우고 ‘쌩’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란다. 그나마 정류장에서 학교버스를 기다리는 자기는 그들보다 좀 나은 계급인 것은 틀림없지만, 고급 자가용을 타거나 비싼 국제학교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메트로폴리스, 기생충 그리고 군함도중국 아파트 가격은 층수에 따라 다르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에선 우리와 달리 꼭대기층이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동산 재벌 소호그룹의 총수 판스이 부부는 자기 회사에서 지은 모든 건물의 꼭대기층에 항상 자신들만의 집무실이나 주거 공간을 남겨놓는다고 한다. 베이징 시내가 보이는 그곳에 서서 창 너머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아주 좋다나.
1927년 독일 프리츠 랑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를 알지 모르겠다. 지금 보면 조금 유치한 면도 있지만, 20세기 초에 만든 영화치고는 그 상상력이 가히 천재급이다. 그가 영화에서 그리는 ‘미래 도시’는 지금 자본주의 세계에서 메트로폴리스(거대도시)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는 초고층 건물의 지상과 지하 세계에 사는 두 계급의 이야기를 다룬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에서 묘사했던, 지하에 사는 기택의 가족과 지상의 고급 주택에 사는 박 사장 가족이라는, 서로 다른 두 계급의 생존 방식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묘하게 닮았다. 속 초고층 건물의 상층에는 돈 많은 자본가가 날마다 파티를 열고 고상한 예술과 학문을 논하며 그들만의 절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반면 지하 세계에 사는 노동자들은 고층 건물 상류 계급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더럽고 열악한 환경에서 수많은 기계를 조작하고 수리하며 산다. 지상과 지하로 구분되는 두 세계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결코 ‘만나는’ 일이 없다. 혁명이나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계급 세계가 전복될 일은 절대 없다.
“군함도의 고층 주택의 위층에는 채소밭이 있었습니다. 볕이 잘 드는 고층은 미쓰비시사 직원들이 점령하고 그 아래를 계급순으로 나누어 살았다고 합니다. 건물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아래층에는 볕이 들지 않습니다. 거기에 조선인과 중국인을 수용한다는 확실한 서열 구조가 존재했습니다.”(강상중·우치다 타츠루 대담집 중)
류승완 감독의 영화 로 잘 알려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탄광 사업을 벌였던 일본 나가사키현 군함도에서도 층수에 따라 계급이 배치됐다. 강상중은 일본 근대는 이런 아래층 사람들, 즉 ‘인간기둥’이 지탱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 아빠는 리강”2010년 10월, 중국 허베이성에서 아주 유명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밤중에 여자친구를 대학교 기숙사로 데려다주던 차량 한 대가 대학교 내에서 길 가던 여학생 2명을 친 뒤 그대로 차를 몰고 달렸다. 차에 치인 여학생 중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중태에 빠졌다. 여자친구를 데려다주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차를 몰고 교내를 빠져나가려던 순간, 주변 학생들과 보안들에게 저지당하자 가해자가 그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너희가 능력이 있으면 날 고발해! 우리 아빠 리강(허베이성 공안 부국장)이야.”
그 뒤 ‘우리 아빠는 리강’이란 말은 중국에서 ‘권력 불평등’을 상징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경제적 부의 격차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권력의 높낮이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중국만 그러겠나).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푸얼다이’(부자 2세), ‘관얼다이’(고위 관료 2세)들은 그들 부모의 계급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무슨 짓을 하든 ‘우리 아빠 리강’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해결된다. 그리고 그들은 예외 없이 ‘볕이 잘 드는’ 고층 건물이나 별장에 살고 있다.
“세상에 평등 따윈 없습니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해요. 특수한 대우를 받는 계급이 되려면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요. 가오카오(중국 대학입학시험)는 바로 그 특수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급 사다리입니다. 학부모 여러분,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걸 가르쳐줘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하게 만들어야 해요!”
나와 이런저런 학교 문제로 여러 차례 설전을 벌였던, 아들이 다니는 중국 공립 초등학교 수학 선생이 공개적으로 했던 말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국가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대놓고 말하며 ‘대접받는 특수 계급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라’는 뻔뻔스러운 논리를 펼 수 있냐고 욕했지만, 지금 되새겨보면 아주 ‘지당하게’ 옳은 소리다.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말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요지는 이 세상에 애초부터 평등 따윈 없으며, 그러니 ‘언제부터 신분제 사회가 되었나’라고 울분을 토할 필요는 없다. 평등 따윈 개에게나 줘버리고, 우리는 볕이 거의 들지 않는 맨 밑바닥에 배치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밤낮으로 ‘노오력, 또 노오력’을 해야만 한다. 고층을 떠받치는 ‘인간기둥’에게도 ‘등급의 층’이 있다는 걸 명심하면서 말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은 대다수 사람의 인생 최대 목표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은 이미 행운이 되었고, 날마다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일 아직 책 읽을 시간이 남았다면, 그건 한밤중이나 가능한 일이다. 24시간 문 여는 서점은 어떤 사람도 내쫓지 않고, 독서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누군가에게는 복음 같은 장소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배반할 수 있고 나를 무시할 수 있지만, 지식만은 그렇지 않다. 서점은 지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소이자, 항상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대문이다. 적막한 도시 안에, 책을 읽는 사람들과 밤의 나그네들에게 등 하나를 밝혀주는 장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문을 닫지 않는 서점은 어떤 사람도 거절하지 않는 서점이며, 도시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는 인심이 흉흉하고 삭막한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급 고층 건물에 살고,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생활한다. 또 어떤 이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어떤 이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계층 차이는 이렇듯 명확하다. 하지만 누구도 거절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서점, 그 풍부한 책들 앞에서는 사람의 신분 차이는 사라진다. 그들은 ‘독자’라는 한 가지 공통된 신분만을 갖는다. 책 앞에서는 더 고귀하거나 비천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문을 닫지 않는 서점은 ‘인간은 책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 도시의 독서 오아시스이며 모든 밤의 나그네들과 돌아갈 숙소가 없는 사람들에게 ‘길거리 근거지’가 된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만일 천당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바꿔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천당이 있다면 그것은 서점의 모습일 거라고. 그 광활한 지식의 전당 안에서는 빈부 차이도 없고, 책 읽는 시간의 제한도 없으며, 모든 사람은 평등한 존재가 된다.”(2017년 중국 산둥성 대학 입시 작문 100점 내용 중).
그리하여 나는 잠 못 드는 밤이나 ‘베이징 사모님’으로 살지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할 때면 가끔 심야 서점을 간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평등한’ 장소인 그곳은 어딜 가나 볕이 잘 들고 나를 위한 등불이 항상 켜져 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심야 서점은 대사관 거리가 있는 싼리툰의 ‘싼롄타오펀’(三聯韜奮). 1996년 ‘생활(生活), 독서(读书), 신지식(新知)’이라는 중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에서 문을 연 서점이다. 2014년 베이징 미술관 거리에 처음 24시간 심야 서점을 열었고, 그 뒤 2018년 싼리툰에 두 번째 심야 서점을 열었다.
어딜 가나 볕이 들고 나를 위한 등불이기득권‘충’은 될 수 없고, 기생충과 밑바닥 인간기둥‘충’은 더더욱 되기 싫은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서충’(书虫·책벌레)이 될 기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게다가 심야 서점도 열려 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읽고 또 읽자. 책은 부귀를 차별하지 않는다.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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