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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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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그곳에 가만히 있다네

29살에 죽은 후보 감독과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인 난징의 ‘셴펑서점’
등록 2020-01-15 11:10 수정 2020-05-03 04:29
후보 감독의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후보 감독의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안녕하세요. 정부에서 알려드립니다. 당신은 심각한 빈곤인구라는 측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가의 올해 중요 정책인 전면적인 빈곤 탈출 목표 달성을 위해, 당신은 내일 아침 8시 정각까지 현지 공안국에 자수해서 사형 처분을 받으십시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돈에 목마른 사회

2020년 새해 첫날에 받은 ‘중국 특색의 가짜뉴스’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전면적인 빈곤 탈출을 완성하겠다’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러자 곧바로 중국 인터넷에서는 이 내용을 가짜뉴스 형식으로 유머러스하게 비꼰 기사가 폭주했다. “너도 빈곤인구냐? 나도 빈곤인구다. 우리 모두 자수해서 사형당하자”는 ‘빈곤 덕담’도 여러 소셜네트워크에서 유행했다.

“중국 길거리에선 ‘돈’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들려. 어디를 가도 ‘돈 돈 돈’ 얘기뿐이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은 여전히 돈에 목마른 사회 같아.” 얼마 전 오랜만에 베이징을 방문한 지인이 들려준 ‘중국 인상기’다. 그는 10여 년 베이징에서 살다 2년 전 한국으로 돌아갔다. 함께 만난 중국 독립다큐영화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중국은 나쁘게 말하면 변태사회예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들리는 얘기는 죄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에 관한 거예요. 모든 사람이 돈만 생각하는데 변태사회가 아니면 뭐겠어요?”

한국 길거리나 지하철 등에선 무슨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들릴까. 가본 지 오래돼 생각나지는 않지만, 중국에 사는 한국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부동산과 교육’ 문제다. 최근에는 부쩍 부동산 이야기가 늘어났다.

한 지인은 “집도 절도 없는 노후가 걱정”이라고 했다. 결혼하지 않아 노후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가장 큰 걱정이 ‘내 집’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직장 동료 중에서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며 “오십이 되도록 혼자 살 집 한 채도 못 사고 뭐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5~6년 전 1억원 정도만 대출받으면 요즘 서울에서 핫하다는 마포나 합정동 쪽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도 있었던 동생은 “이게 다 재수 없는 부동산 전문가들 때문”이라며 매일 쌍욕을 하며 산다. 동생은 정권이 바뀌고 몇 년만 지나면 서울 집값이 확 내려간다는 말만 믿고 당시 전세가나 실매매가나 별 차이가 없던 아파트 구매 기회를 포기하고 계속 ‘집값 내려갈 날’을 기다리면서 전셋집을 전전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지만 집 장만은커녕 서울 시내에서 전세도 얻기 힘들었다. 동생이 퇴직 전 서울에서 집을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화병이 나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베이징에서 10년 이상 산 한국 사람들도 “왜 그때 집을 사놓지 않았을까”라고 울분을 토한다. 베이징이 미국 뉴욕보다 집값이 더 비싸졌기 때문이다. 옛날 거의 ‘똥값’이었을 시절 베이징 아파트를 샀던 사람들은 지금 돈방석에 앉아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한 노년을 설계하고 있다. ‘어메이징한’(놀랄 만한) 중국 부동산 가격 상승을 경험한 재중 한국인들은 지금 베트남의 호찌민이나 하노이로 몰려가고 있다. 이제 부동산으로 돈을 벌 기회의 땅이라며 너도나도 ‘금’을 캐러.

쓰레기 취급 당하는 이들이 향하는 곳

“나는 만저우리에 가야겠어. 거기에는 코끼리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대.” 만저우리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중국 둥베이의 국경도시다. 그곳 동물원에는 코끼리 한 마리가 종일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한다. “그놈은 사람들이 쇠꼬챙이로 찌르거나 먹을 걸 던져도 꿈쩍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 아마 거기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나는 그 코끼리를 보고 싶어.”

지난해 11월 한국에서도 개봉한 중국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는 2017년 베를린영화제와 2018년 대만 금마장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후보는 2017년 10월12일 향년 29살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이었다. 중국 유명 감독과 부인이 책임자로 있는 영화제작사와 극심한 마찰을 빚으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감독 교체와 투자액 배상 소송’을 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후문이다. 죽기 전, 그는 밥 사 먹을 돈도 변변히 없어 집에서 늘 냉동만두를 쪄 먹었다고 한다.

영화 원작은 후보 감독이 쓴 (大裂)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코끼리는 그곳에 앉아 있다’(大象席地而坐)라는 소설이다. 원작 소설에는 만저우리가 아니라, 대만 화롄의 한 동물원에 코끼리 한 마리가 항상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고, 주인공은 그 코끼리를 보러 대만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선 중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등장인물 4명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을 그린다. 위청은 친구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는데, 이를 알게 된 친구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웨이부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도우려다 실수로 폭력 가해자를 밀쳐 가해자가 죽는다. 죽은 가해자는 위청의 동생이다. 웨이부가 짝사랑하는 황링은 학교 선생님과 불륜관계이고, 어느 날 이 사실을 전교생과 엄마가 알게 된다. 왕진은 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면 학군 좋은 곳의 집에 살아야 하는데, 다 같이 살기에는 너무 좁다며 아들 내외에게서 양로원에 가달라고 ‘버림받는’ 퇴역 군인이다. 네 사람은 이웃에 살거나 이런저런 사건들로 얽히고설킨 관계다.

이들의 공통점은 불행하고 절망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 영화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처럼, 그들은 사회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는 존재다. 영화 도입부에서 웨이부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서 아들에게 말한다. “네 방보다 더 썩은 냄새 나는 곳도 없을 거야! 아래층 쓰레기통도 네 방보다 썩은 냄새가 덜 난다고!”

이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만저우리의 동물원이다. 그곳에 가면 코끼리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고, 그들은 그 코끼리를 보러 간다. 코끼리는 왜 그곳에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까.

서점 마니아에게 난징의 셴펑서점은 성지다. 박현숙

서점 마니아에게 난징의 셴펑서점은 성지다. 박현숙

“울고 싶으면 마음 놓고 울라”는 택시기사의 말에

난징에 가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그 서점을 보고 싶었다. 고속열차를 타고 난징으로 갔다. 그 돈이면 시내 중심가 목 좋은 곳에 아파트 두세 채를 사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돈도 안 되는 서점을 그렇게 크고 아름답게 차렸을까. 쇠꼬챙이로 찌르거나 맛있는 걸 던져도 꿈쩍도 안 하고 가만히 동물원 우리에 앉아만 있다는 만저우리의 코끼리를 보고 싶었던 그들처럼, 그 서점에 꼭 한 번 가고 싶었다.

난징 우타이산체육관 지하에 있는 본점 ‘셴펑서점’은 얼마 전 배우 장동건씨가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첫 방송에서도 소개됐다. 서점 마니아에게 난징 셴펑서점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성지다.

셴펑서점은 1996년 난징 타이핑루에 있는 17㎡의 작은 공간에서 출발했다. 이후 2004년 지금의 광저우루에 지하 차고 약 3700㎡를 서점으로 개조해 본격적으로 셴펑서점 시대를 열었다. 전국에 분점 13곳이 있다. 서점 창업자 첸샤오화는 장동건씨와 한 인터뷰에서, 우타이산 본점을 창업하기 전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울고 싶으면 마음 놓고 울라”는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를 만든 뒤 자살한 후보 감독에게도 누군가 그런 말을 해줬다면 그는 중국의 봉준호 같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상처를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만저우리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것도 위로받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그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코끼리 울음소리만을 듣지만, 원작 소설에선 마지막에 정말 코끼리를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그놈은 얼핏 보기에도 무게가 5t은 족히 돼 보였다. 가만히 앉아 있다는 게 대단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녀석을 끌어안고 한바탕 펑펑 울고 싶었다.”

셴펑서점은 최근 향촌 살리기 운동을 중점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역사와 문화, 인문학적 배경이 담긴 오지 시골마을에 서점을 차려서 향촌 문화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장쑤와 저장 지역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서점을 차렸다. 올해 안에 윈난성 사시마을에도 향촌서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시마을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먼저 ‘찜’했던 구역이다. 나는 언젠가 그 마을에서 호떡 장사를 하거나 한국 분식점을 차리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첸샤오화는 이렇게 말했다. “서점이 단지 책만을 판다면 책 슈퍼마켓과 다를 바 없고, 그런 서점은 오래가지 못한다. 서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 정감이 교류하는 장소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바로 그런 취지에서 시골마을 서점을 만들고 있다. 서점이 생기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마을이 알려지고, 마을이 알려지면 그곳의 문화가 더 발전하게 된다고.

서점이 단지 책만 판다면

어떤 사람들은 ‘금을 캐러’ 베트남으로 몰려가고, 어떤 사람들은 ‘아침 8시 정각까지 공안국에 자수하러 가서 사형 처분을 받는’ 세상이다. 온 길거리에 돈 버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온 술집마다 ‘우주로 떠나간’ 부동산 가격에 통곡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는 결심했다. 셴펑서점 분점이 차려지는 윈난의 사시마을로 가리라고. 서점 옆에 작은 호떡집이나 떡볶이가게를 차려서 금도 캐고, 아름다운 집도 살 거라고. 그곳에도 코끼리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한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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