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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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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연애하거나 외국어 배우거나

베이징 첸먼 ‘페이지원’ 서점…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나이, 놀랍도록 다른 일은 뭘까
등록 2019-08-29 02:24 수정 2020-05-02 19:29
‘페이지원’ 3층에 올라가서 통유리 너머로 희미한 자금성을 보노라면 여기가 서점인지 관광용 전망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페이지원’ 3층에 올라가서 통유리 너머로 희미한 자금성을 보노라면 여기가 서점인지 관광용 전망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다른 사내들은 아내를 바꾼다. 차를 바꾸기도 한다. 어떤 사내들은 아예 성(性)을 바꾼다. 중년에 맞는 위기의 포인트는 뭔가 놀랍도록 다른 일을 함으로써 젊은 시절과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토니 주트, 에서

누군가는 남편을 바꾸고

내가 좋아하는 유럽역사학자 토니 주트에게 ‘최고 중년의 위기’는 외국어(체코어) 배우기였다. 그는 두 번째 이혼을 하고, 모든 것이 지루하고 심드렁해지고 불확실해진 ‘중년의 위기’를 새로운 외국어 공부로 돌파해갔다. 그는 체코어를 공부하면서, 그동안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유럽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한때 내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던, 중국 부동산 재벌 왕스는 중년 말기에 자기 딸 또래인 서른 살 이상 연하인 삼류 연예인과 연애하면서 아내를 바꿨다. 중국 최고위급 관료 딸인 전처 ‘덕분에’ 중국 굴지의 부동산 회사 재벌이 될 수 있었던 왕스는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도 오른 적 있는 등산 애호가다. 고급 차를 몰고 어린 애인들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등에서 명품을 잔뜩 사서 들어오는 중국의 졸부들과 달리, 산을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그가 중국에서는 드물게 멋진 비즈니스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도 중년을 견디기가 위태로웠는지 어린 애인과 바람이 나서 아내와 이혼한 뒤,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서 젊은 애인과 나란히 영어학원에 다니며 외국어를 공부했다. 그들은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어떤 인식의 지평을 넓혀갔는지 모르겠다.

얼마 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그들의 얼굴이 전면에 인쇄된 책 두 권이 정중앙에 나란히 진열된 것을 보았다. ‘성공 어쩌고’ 하는 제목이었던 듯하다. 삼류 연예인에서 일류 재벌의 애인이 된 왕스의 ‘그녀’는 아름답고 도도한 얼굴 위로 득의만면한 웃음을 지으며 ‘성공’을 설파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돈 많은 영감탱이와 사니 성공한 것 같냐’고 비웃었지만, 속으로는 많이 부러웠다. 어쨌든 성공했으니. 그에 견줘 왕스는 예전보다 좀 ‘밥맛 떨어지는’ 인간이 되었다. 그 나이에, 온갖 폼을 잡고 별로 고급스럽지도 않은 자동차와 시계 광고를 하면서 ‘성공한 남자의 상징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여전히 좋아하는 중국 여자 가수 왕페이(왕비)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 에서 비행기 승무원으로 등장하는 왕페이의 ‘신박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량차오웨이(양조위)가 멋있어서 보게 된 그 영화에서 나는 왕페이에 꽂혔고, 그 후 왕페이의 왕팬이 되었다.

왕페이의 두 번째 남편은, 내가 중국에 온 뒤 가장 좋아했던 연예인 리야펑이다. 방구석에서 홀로 맥주 홀짝이며 그가 나오는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면서 ‘방구석에서 콕 하고 박혀 중국어 배우기’에 몰두하던 시절, 나는 날마다 리야펑 같은 중국 남친을 사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조지 클루니’와의 연애 기회를 놓치고

그가 왕페이와 결혼한다는 ‘빅뉴스’를 보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소신대로 사는 왕페이는 역시나 참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왕페이의 이혼 소식이 전해졌고, 바로 얼마 뒤 자기보다 13살쯤 어린 홍콩 유명 연예인 셰팅펑(사정봉)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홍콩 배우 장바이즈(장백지)의 전남편이기도 한 셰팅펑은 왕페이가 젊은 시절 7년 동안 뜨거운 연애를 했던 ‘옛 애인’이다. 그런 그들이 중년에 다시 만나 연인이 됐다. 요리를 잘하는 셰팅펑은 날마다 왕페이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며 그들이 새롭게 선택한 중년의 사랑을 달달하게 이어간다 한다.

왕페이와 거의 같은 나이인 나도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중년이 됐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나는,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얼굴에 기미와 주름이 자글자글한 못생긴 중년 아줌마였다. 평생 변치 않는 동안으로 살 거라 자신했는데, 이제는 얼굴에 찍어 바를 주름살 커버 화장품을 검색해야 하는 신세다. 외모 자본도 떨어지고 돈도 능력도 없는 나는 그들처럼 중년 나이에 과감하게 아내와 남편을 버리고 새 애인을 사귈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나도 그들처럼 ‘놀랍도록 다른 일’을 하면서 자칫하면 위기나 권태에 빠질지도 모르는 중년의 삶을 다시 젊게 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얼마 전, 나는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길은 그야말로 구불구불, 울퉁불퉁, 파란만장한 인생길의 축소판 같았다. 많은 사람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은 뒤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시설)에서 자신이 이고 지고 온 배낭 속 물건을 하나둘 버렸다. 어떤 사람은 아예 배낭과 등산화를 벗어놓고 다음날 이른 새벽 조용히 사라지기도 했다.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나도 그 길에서 깨달음을 좀 얻었다.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페인어는커녕, ‘좀 배웠다’는 영어도 잘 못하는지라 길을 걷는 내내 나에게 엄청난 관심과 뜨거운 눈길을 보내던 수많은 ‘조지 클루니’들과 사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저 어버버 웃기나 하고 “아임 프럼 코리아”만 자신 있게 ?X라거렸다. 그 길에서 가장 많이 사귄 외국인은 대만인과 홍콩인, 스페인에 사는 중국 화교들이다. 말이 통하는 중화권 외국인을 만나면 마치 동포인 양 반갑고 감격스러워서 종일 재잘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외국인과는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다”고 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나는 그들에게 ‘외국인’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 말이 통하는 중화권 사람들이 외국인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언어야말로 ‘피’를 뛰어넘는 인류애와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하여, 나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고 외쳤던 토니 주트처럼 내일모레면 오십이 돼가는 중년에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페이지원 매장 모습.

페이지원 매장 모습.

세계를 볼까, 통유리 너머 중국을 볼까

중국에서 외국어로 된 책을 파는 가장 오래된 서점은 ‘외문서점’(外文書店)이다. 신화서점과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 국유 서점인 외문서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어 서적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였다. 하지만 인터넷서점과 세련된 서구식 서점이 늘어나면서 외문서점도 신화서점처럼 서점업계에서는 그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았다. 대신 최근에 대세가 돼가는 외국어 서적 분야의 최강자는 ‘페이지원’(PAGE ONE) 서점이다.

페이지원 서점은 원래 싱가포르에서 들어온 외국 브랜드 서점이다. 1983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생긴 서점은 홍콩과 대만, 말레이시아, 타이 등 주로 아시아로 진군했고, 중국 대륙에는 2010년 항저우에 첫 간판을 달았다. 현재 베이징 산리툰과 왕징, 첸먼 등 곳곳의 ‘핫플레이스’마다 페이지원 간판이 걸리면서 중국 토종 서점들을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베이징의 가장 중심가인 첸먼거리에 분점을 낸 페이지원은 24시간 영업한다. 규모도 베이징에서는 최대다. 톈안먼(천안문) 광장과 첸먼대로가 훤히 내다보이는 3층에 올라가서 통유리 너머로 희미한 자금성을 보노라면 여기가 서점인지 관광용 전망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 첸먼 분점은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렐루서점처럼 관광객들이 점유한 지 오래다. 여기저기서 휴대전화 카메라 누르는 소리와 폼 잡는 모습들로 요란하다.

페이지원은 원래 미술 디자인과 예술 계통 책을 주로 팔고 출판하는 서점 겸 출판사였다. 지금은 모든 분야 책을 팔고 무엇보다 각 분야의 영어권 책이 가장 많이 꽂혀 있다. 영어권 국가 베스트셀러 책들이나 오래된 베스트셀러류, 고전이 골고루 있어 영문 책에 목마른 자들은 언제든지 페이지원으로 달려가면 된다. 게다가 서점 인테리어가 베이징 서점 중 최고급인지라 책 구경 왔다가 마치 고급 미술 전시회를 본 듯 눈도 호강하고 가는 곳이다. 그러니 누가, 아직도 케케묵은 인테리어와 조지 오웰이 누군지도 모르는 직원이 하루 종일 지루한 하품이나 하는 외문서점에 가서 폼 잡고 외국 원서를 뒤적이고 싶겠는가?

페이지원 24시간 매장이 들어선 첸먼거리는 톈안먼과 자금성, 인민대회당, 왕푸징, 역사박물관 등 베이징의 거의 모든 관광지가 밀집된 곳이라 날마다 전세계 관광객들로 바글댄다. 그 금싸라기 같은 땅에 중국 정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페이지원 서점에 자리를 내줬다. 그곳에 들어가 세계를 보라는 것인지, 세계를 향해 통유리 너머 중국을 보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말이다.

토니 주트처럼, 왕페이처럼

“체코어를 향한 모험 덕분에 아내를 새로 맞은 것도 아니고, 새 차를 바꾼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모험은 내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중년의 위기였다.”

토니 주트는 우연히 참석한 체코의 한 학술 세미나에서 체코어에 흥미를 느끼고 나와 비슷한 중년의 나이에 체코어 기초부터 한자 한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기의 중년을 새로운 외국어 공부라는 모험으로 돌파해갔다. 세계적 잡지 의 교열 책임자인 메리 노리스는 이라는 책에서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나는 그리스어에서 위안을 얻었고 그 덕분에 나의 모국어에서, 또 모국어와 함께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메리 노리스의 말을 빌려, 나도 중년의 삶을 새롭게 살기로 했다. “이제 나는 아주 새로운 알파벳으로 새 출발을 할 작정이다. 무지무지 설렌다.”

내년 여름쯤이면, 나는 토니 주트나 메리 노리스처럼 자신이 공부했던 언어의 고향으로 여행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 운 좋으면 그곳에서 만난 멋진 사람과 연애도 하고 남편을 바꿀지도. 나도 왕페이처럼 못 살란 법 있는가.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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