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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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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괜찮겠니?

세 돌 아이에게 한글, 알파벳, 숫자를 가르쳐보았다
등록 2018-12-01 17:47 수정 2020-05-03 04:29

세 돌 된 큰아이, 숫자를 읽는다. “이, 이, 함, 하(1, 2, 3, 4)!” 수리에 밝거나 선행학습을 한 것이 아니다. 사연이 있다.

처음에는 한글에 관심을 보였다. 일부러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간단한 글자를 읽는 모습을 보고 ‘말 배우기 전에 글자부터 배워도 될까’ ‘너무 일찍 배우는 것 아닐까’ 염려까지 했다.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었다. 아이의 관심은 금세 흐지부지. 유니코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것이다. 글자 만든 원리를 알면 모를까, 통으로 외우기에 한글은 글자 수가 무척 많다.

그다음 도전은 알파벳 대문자. “에이, 삐, 히(A, B, C)!” 서점 기둥에 적힌 알파벳을 읽으며 까르르 웃더라. “대단하군! 하지만 한글보다 영문자를 먼저 익히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역시 아빠의 기우였다. 알파벳은 스물여섯 자만 알면 끝? 소문자라는 복병이 숨어 있다. 무려 오십이 자, 성미 급한 세 살 아이에게 무리. 소문자의 존재를 알고 난 뒤 흥미를 잃었다.

그다음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홉 자 열 자만 외우면 되니까. 아이는 아이패드로 숫자 쓰기와 읽기를 익혔다. 도 공부하고 종이로 된 그림책도 함께 봤다. 아이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게 될까? 아빠는 이제 욕심이 없다. 다만 자신감이 자라면 좋겠다. 한글로 알파벳으로 두 번이나 좌절(?)했으니.

아빠의 목말을 타고 아이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읽는다. “칠, 파, 이, 함!” “그래, 7823. 잘 읽었어요!” “이, 하, 류, 파!” 아빠는 당황한다. “아이고, 러브호텔로 들어가는 번호는 읽으면 안 돼.”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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