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참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도 마음에는 여전히 기쁨이 없다. 목표를 이룰 때의 기쁨은 언제나 잠시뿐이다. 어느덧 나아가야 할 또 다른 목적지가 더 멀리 생겨나는 탓이다. 일터에서는 여전히 더 열심히 달리라며 당신을 닦달해댄다. 게다가 그대는 아직 만족할 만큼 재산을 모으지도 못했다. 돌봐야 하는 부모, 식솔이 눈에 밟힐 터이다. 매일매일이 끝없는 의무의 연속인 듯싶다. 갈 곳 모른 채 사막을 끝없이 걷는 듯한 막막함이 밀려든다. 의욕과 열정이 넘쳐나던 내 인생의 정점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이제 나의 앞날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헛헛함 탓에 “이게 끝이야? 이젠 어쩌지?”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되묻게 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중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에 휩싸인 중년이라면 조너선 라우시(Jonathan Rauch, 1960~)에게 귀를 기울여보자.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 오십 살 언저리는 삶의 만족감이 바닥에 다다르는 시기다. 조금만 더 버텨보라. 곧 노년의 행복이 활짝 피어날 터다. 대중문화에서는 청춘을 사랑과 정열이 꽃피는 인생의 황금기로 그린다. 장년은 서서히 삶이 시들어가는 시기고, 노년은 앞날이 사라진 추레하고 어두운 시기일 따름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당신은 젊은 날을 실제로 겪어봤다. 청춘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앞날에 대한 불안, 인정받지 못해 생겼던 불만,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얼마나 괴로웠던가. 노년은 또 어떤가? 주변의 나이 든 분들을 살펴보라. 당당하고 활기차게 일상을 가꾸는 분이 훨씬 많다. 인생 경험이 쌓인 그대는 이제 대중매체가 심어놓은 인생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너선 라우시는 ‘행복의 U자 곡선’(The Happiness Curve)을 찬찬히 설명해준다.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은 밝고 활기찬 기운으로 가득하다. 청소년 시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삶의 만족도가 서서히 낮아진다. 그러다가 온갖 일에 치이는 중년에 이르면 행복감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인생에 대한 만족도가 다시 높아진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행복감이 U자를 그리며 낮아졌다 높아지는 모습은 인간뿐 아니라 영장류에서 일반적이라고 한다. 생애 전체에 걸쳐 행복도가 낮아졌다 높아지도록 우리 유전자가 설계됐다는 의미이리라. 그렇다면 왜 생명은 중년의 시기가 가장 불행하도록 진화했을까?
젊은 시절에는 ‘낙관 편향’이 강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오늘은 좋은 날이야! 멋진 일들로 가득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풀려나갈 거야!”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리를 박차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게 될 테다. “또 하루가 시작됐군. 고통과 우울을 견뎌야 한다니 끔찍해”라고 한숨 쉴 때는 어떨까?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다가 하루를 망치기 십상이다.
인생 전체도 그렇다. 젊은 날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어야 맞다. 그래야 열심히 일해 사회를 굴러가게 하고, 남다른 생각도 과감하게 내세우며 변화와 발전을 일구지 않겠는가. 하지만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다. 하늘을 찌르던 의지는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조금씩 스러진다. 이러면서 삶의 만족도도 점점 낮아져간다. 오십 정도에 이르면 행복감은 마침내 바닥까지 떨어지고 만다. 그대가 겪고 있는 ‘중년의 위기’가 바로 이 시기다.
걱정과 의무에 치여 모래알을 씹는 듯한 나날이 이어지다보면, 미래에 대한 기대도 접게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다시 잔잔한 밝음이 삶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삶의 만족도가 갈수록 낮아졌던 이유다. 다가올 힘듦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때는 찾아든 소소한 행운이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중년 이후가 바로 그렇다. 앞으로는 늙고 병들고 약해지는 일밖에 없을 듯싶었다. 그러나 정점을 지난 삶에도 여전히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그대는 서서히 느껴가고 있다. 젊은 날에는 이 점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라우시가 중년의 불만족은 ‘위기’가 아닌 자연스럽고 건전한 ‘전환’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삶의 후반기에 찾아든다는 새로운 행복은 언제쯤 찾아올까? 이를 느끼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라우시는 이 물음에 “그냥 끝까지 걸어가보라”며 담담히 충고할 뿐이다.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일상에 대한 만족감이 절로 높아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중년 이후의 행복은 어른다워졌을 때 찾아든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인류학에서는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진화의 눈으로 볼 때, 종족 번식을 못하는 생명체는 빨리 사라져야 맞다. 유전자를 퍼트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인류 사회에서는 할머니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할머니들이 아이를 보살피고 젊은 세대를 챙겨준다는 데서 찾는다. 사냥해서 먹거리를 구하거나 아이를 낳지는 못해도, 다른 이들을 도와줌으로써 무리가 살아남는 데 큰 보탬이 됐기에 여성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설명이다.
라우시는 중년에 다다른 우리의 역할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력’을 키워 젊은이들을 밀쳐내며 살아남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러지는 못한다. 그대는 결국 늙고 힘이 빠져 뒤처지게 돼 있다. 그렇다면 중년은 지혜로워져야 한다. 젊을 때는 자기중심성(Egocentricity)이 강하다. 반면, 노년에 다다를수록 타인지향성(Other-directedness)을 키워야 한다. 내가 더 잘나고 앞서가며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 자라나는 세대가 잘되고 뒤처진 이들이 밀려나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응원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적과 싸우는 이들에게 힘을 주려고 손발이 잘렸더라도 뒤에서 열심히 목청 높여 응원하는 자들도 전사”라고. 중년에 딱 맞는 충고다. 아이는 아이다울 때 사랑스럽다. 젊은이는 젊은이다울 때 멋지고 아름답다. 중년도 중년다울 때 기품과 존재감이 넘친다. 앳되었던 시절, 어떤 어른이 고맙게 다가왔는지 떠올려보라. 핀잔과 무시로 나를 주눅 들게 했던 사람은 도움을 주어도 마뜩잖았다. 반면, 따뜻하고 넉넉한 미소로 나를 다독이던 선배들은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으리라. 중년인 당신도 이런 품격을 갖춰야 한다.
라우시는 중년들에게 지혜로워지라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연차가 쌓일수록 역할이 달라진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중년인 그대는 인자하고 따뜻하게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젊었을 때는 상대를 경쟁자로 여기며 이기려는 노력이 멋져 보였다. 그러면서 실력도 나아지고 담력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중년은 다르다. 이제는 상대방이 인생이란 고통의 동반자로 다가온다. 갈등을 헤아리고 조정하며 슬픔과 고통을 다독이는 능력도 자라나기 마련이다. 이럴수록 표정에는 깊은 이해와 공감이 피어나곤 한다. 이제 중년인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가는지 점검해보라. 다감하고 지혜로운 노인의 얼굴인가, 질투와 시기에 가득 찬 심술궂은 인상인가?
마지막으로, 라우시는 이렇게도 말한다. “만약 감사하는 마음을 알약으로 만든다면, 모든 의사가 이를 처방할 것이다.”
중년의 위기를 제대로 넘어서는 사람은 감사하기가 점점 더 쉬워진다. 이루지 못했던, 아마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일들 탓에 애면글면하는 마음도 점점 옅어질 터이다. 사춘기는 인생에서 원래 없던 시기였다. 수명이 늘어나고 교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사춘기라는 시기가 자리잡았다. 지금의 중년기도 그렇다. 평균연령이 60살도 안 되던 시기의 50대와 기대수명이 80살 넘는 시대의 50살은 삶의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 사춘기에 우리는 새롭게 배우고 많은 이를 만나며 여러 경험을 했다. 좋은 성인이 되기 위해 자기를 가꿨던 셈이다. 라우시는 중년을 ‘앙코르 성인기’(Encore Adolescence)라고 부른다. 앞으로도 중년인 그대에게는 30년 이상의 긴 세월이 남아 있다. 그러니 또다시 새롭게 배우고 인연을 가꾸며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좋은 노년을 맞도록 자신을 가꿔야 한다.
‘행복의 U자 곡선’은 앞으로의 내 인생이 다시 밝고 유쾌해지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청소년 시기에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평균수명 100살을 바라보는 시대다. 이제 그대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이 빨리 찾아들기를 기대해도 좋다. 중년인 그대에게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어두운 터널의 막바지에 다다른 당신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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