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는 하지 않았지요?”
2024년 12월4일,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재판장 양진수)가 1600여 개의 합성물이 포함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을 소지한 피고인 이아무개의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에게 확인한 내용이다. 법원의 부적절한 관행을 현장에서 다시 한번 목격한 것이다. 한국 법원은 유포, 상습성 인정, 수익 창출 목적 여부와 관련된 별도의 처벌 규정이 존재하는데도, 피고인이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해 감형하고 있다. 실제 이아무개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자유롭게 나다니고 있다.
2024년 상반기 시민들의 공론화로 알려진 딥페이크 등 성범죄 사건 판결문을 분석했다. 대법원이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공했다는 관련 범죄 1심 판결문 87건은 4년 동안(2020년 6월~2024년 6월)의 결과물이라기엔 수도 적었고, 2심 판결문이 없어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이 내려졌는지 불분명했다. 분석 내용도 단순 형량 비교 차원에 머물러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판결서 인터넷 열람을 통해 입수한 허위 합성물(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 105건(피고인 112명)의 1·2심 판결문 200건을 다시 분석하기로 했다.
전국 수사기관과 법원을 누비며 피해자와 직접 연대(신뢰관계인 동석 등)하고 단계별로 모니터링하면서 ‘2023년부터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화되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수치로도 이 추정이 사실로 입증됐다. 2021년 44.44%였던 실형 선고율이 2022년 55.88%까지 높아졌다가 2023년 25%로 급격히 낮아졌고, 2024년 상반기 확정 사건 7건 가운데는 단 한 건만이 실형 선고가 나왔다. 만약 2024년 상반기 시민들이 공론화를 통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더 처참했을 것이다. 피의자, 피고인 중 10대 청소년의 비율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형사재판으로 소년범들을 다뤘을지도 의문이고, 그랬다 하더라도 나이 등을 이유로 선처받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안일한 인식은 양형사유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디지털성범죄에서 많이 나타나는 양형사유로는 합성 과정, 합성 수준, 유포 여부, 수익 창출 여부가 있다.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설정하면서 ‘허위영상물’과 관련해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로 ‘편집물, 합성물, 가공물, 복제물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없거나 이에 준하는 경우’를 넣은 탓에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감형을 남발하는 재판부가 늘고 있다.
즉 합성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강요 등 강압적인 언행을 했는지(대개 합성 등을 이용한 디지털성범죄는 피해자와 접촉하지 않고 발생한다), 합성 수준이 정교한지(누가 봐도 합성임을 아는 수준의 이른바 ‘조악한 합성’이더라도 피해자들은 인격권을 침해당하며, 가해자들은 그것을 의도한다), 이른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만한 것인지, 영상물 등을 유포했는지,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했는지 등을 확인하는데 이는 디지털성범죄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를 방증한다. 또 별도의 처벌 규정이 있음에도 감형하는 것이어서 매우 부적절하다.
2021년 광주지법과 광주고법은 지인(대학 동기, 선후배 등)을 대상으로 허위합성물을 제작·유포했던 20대 피고인의 범죄 중 ‘아헤가오’(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얼굴 표현)로 합성한 가해행위에 대해 “피해자 입장에선 당혹, 불쾌감, 모욕이 될 여지는 있지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일반인의 평균 인식’을 근거로 들었는데, 이는 온라인 생태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거기에 재판부는 피고인의 우울증 등을 심신미약으로, 합성 수준의 조악성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해 유죄가 인정된 다른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사회에 풀어줬다. 2024년 제주지법은 국제공조까지 해서 체포한 30대 피고인에 대해 ‘합성 수준이 떨어지고 영리 목적이 없다’는 이유로 역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해당 피고인이 3년10개월 동안 50명 넘는 아동·청소년이 포함된 여성 연예인의 허위합성물 수천 개를 만들어 텔레그램과 누리집에 유포했음에도 말이다.
법원은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이 마련된 이후인데도 권고형 하한보다 낮은 형을 선고하거나 불명확한 사유를 들어 ‘정상참작감경’(재판부의 재량으로 법정형 하한의 절반 정도를 깎을 수 있는 것)을 남발(25.71%)하고 있다. 법원은 신상정보공개·고지명령이나 취업제한명령 등을 내리는 데도 소극적이다. 신상정보공개·고지명령 대상 피고인 109명(4명은 무죄 등) 중 면제 101명(92.66%), 미부과(소년범 등) 4명이고, 인용은 단 3명(2.75%)이었다. 딥페이크 범죄는 다양한 범죄(청소년성보호법상 디지털성범죄, 협박, 강요, 음화반포, 스토킹 등)와 결합할 수 있다. 특히 피해자와 가족, 주변인의 개인정보를 같이 공유·유포하는 특성이 있지만 피고인은 범죄경력을 개인정보로 보호받고 취업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검찰과 경찰 단계에서 부실한 수사도 법원의 온정적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TF)’가 사라졌고, ‘엔(n)번방’ ‘박사방’ 등 디지털성폭력 가해자를 수사하기 위한 경찰 내부 TF나 수사팀도 해체됐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관련 증거 수집과 피의자 특정 등 실질적인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수사는 텔레그램과 같은 메신저 플랫폼의 협조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외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검찰 기소 단계에도 문제가 있다. 분석한 4년치 확정 사건 105건 가운데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 관련 범죄에서 형량의 50%를 가중처벌할 수 있는 ‘상습성’을 인정해 기소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최근 1심에서 주범 박아무개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된 ‘서울대 텔레그램 집단 디지털성폭력 사건’ 정도에서나 겨우 상습성이 인정됐다. 그렇다고 공판 단계에서 범죄 입증이나 상소를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거나, 특정된다 해도 피해자 의사 확인을 소홀히 하고, 절차적 위법성을 따지는 피고인 쪽의 전략에도 검사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재판부의 ‘정상참작감경’ 관행과 함께 공판검사의 항소 포기도 한몫했는데, 여전히 항소를 포기하는 공판검사도 적지 않다.
2024년 검거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총 387명 가운데 남성이 378명(97.7%)이었고, 10대가 324명(83.7%)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10대 남성 피의자가 절대다수인 딥페이크 수사·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 대부분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질 확률이 크다. 소년부로 송치된 건은 추적조차 어려울 테고, 가해자들은 전과 없이 버젓이 사회에 나오게 될 것이다. 피해자들은 피해 복구는 고사하고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고민은 깊어지지만, 우리는 연대와 감시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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