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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추기’의 광란이 시작됐다

어느 날 밑도 끝도 없는 방황을 선택한

40대의 ‘퇴사하겠습니다
등록 2018-05-18 20:12 수정 2020-05-03 04:28
그래픽/ 한겨레 박향미

그래픽/ 한겨레 박향미

사춘기는 이것에 비하면 별게 아니었다. ‘사추기’는 진짜 무섭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인생 절반에 받은 성적표가 온통 ‘양·가’로 가득 찬 절망감이 급습한다. 어딘지 모를 곳에 불시착해버린 듯한 황당함이 몰아쳤다.

회사도 그 누구도 나한테 잘못하지 않았는데 성질이 났다. 돌이켜보면 나한테 화가 난 거 같다. 이제까지 똥만 싼 거야? ‘나는 누구다’를 끝내 말하지 못하고 죽는 걸까, 조급함과 불안함이 몰려왔다. 적어도 나 자신한테는 그 답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이야 끌어안지 못하더라도 자신과의 불화는 끝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랬을까? 한 달하고 보름 전, 뇌에 무슨 호르몬의 폭풍이 불었는지, 회사를 때려치웠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숨이 막혔다. 통장에 잔고가, 생존만 한다면 1년을 살아남을 만큼 있었다. 책임져야 할 식구가 없다는 게 도움이 됐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니 누군가 그랬다. “사추기에는 인생을 건 사고를 치는구나.”

퇴사하면 고지서만 온다

‘망해도 상관없어.’ 사직서를 내고 첫 주엔 호기로웠다. 대체 ‘안 망하는 인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망할까봐 너무 오래 무서워했다. 안 망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나를 방어하기 위해 힘주느라 관절마다 뻐근했다. 그런데 사추기의 광란이 시작되자, 뭔가 망한 기분이 뒤통수를 쳤다.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백수로 한 달을 지내고 난 지금은? 이번엔 정말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무중이다. 퇴사를 해도 깨달음 따위는 오지 않는다. 고지서만 온다. 그럼에도 아직 궁금하다. 학생도 직장인도 주부도 아닌 그냥 나, 내 인생이 있을까? 나에게 내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때, 나는 내게 무슨 말을 들려줄까? 이런 궁금증은 대외용이고, 사실 오라는 데가 없다.

를 쓴 이나가키 에미코는 대책 없는 나랑 달랐다. 아사히신문사 기자로 일한 28년, 그 안전한 ‘주류’의 삶을 벗어나 홀로 서는 방식을 10년 넘게 고민했다. 그래서 쉬운 말로 쓴 는 그리 간단한 책이 아니다.

에미코가 퇴사를 생각한 것은 양배추같이 둥근 ‘아프로파마’를 하면서부터다. 노래방에서 쓴 가발이 다들 어울린다기에 질렀다. 당최 회사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때 마흔을 코앞에 둔 그에게 회의가 덮쳤다. 마지막까지 이긴다는 건 뭘까. ‘회사 없는 삶’은 가능한가.

그의 퇴사 준비는 덜어내기였다. ‘없다’는 것의 ‘호사’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원전 사고가 터지자 내친김에 급진적인 결정을 내린다. 전기 없는 척 살아보는 거다. 가전제품 중 가장 버리기 힘들었던 것이 냉장고였다. 막상 없애니 되레 장보는 양이 줄어 좋았다. 그리고 에미코는 ‘다른 세계’를 봤다. “무언가를 없애면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거기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 하지 않았던 세계입니다.”

‘계란간장 치니 맛있냐? 정신 나갔냐?’이 부분에서 ‘나도 냉장고를 없애볼까’ 했는데, 마트의 유혹 때문에 아직 안 되겠다. ‘계란간장이 뭐지?’ 놨다 들었다 하다 궁금증에 사고 만다. 그러면 또 죄책감과 불안이 몰려온다. ‘계란간장 치니 맛있냐? 정신 나갔냐? 월급이 안 들어온다고!’ 월급 생각을 하면 목이 메어 계란간장이 뭔 맛인지 느낄 수가 없다.

“크게 깽판을 치고 잘리셨어야죠”

백수가 되니 존재가 쪼그라드는 듯한 경험도 한다. 이러다 정말 물맛만 남을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만 사회 속의 나를 경험한 탓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도 회사가 둘레 쳐줬고 하루 필요 인간접촉량도 회사가 제공했다.

준비 많이 한 에미코도 그랬다. ‘당신은 누구냐,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이런 질문과 일상 곳곳에서 마주쳤다. 인간관계도 다시 만들어가야 했다. 그는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는 할머니들과도 연결고리를 찾아 레이더망을 바짝 세웠다. 나는 경비 아저씨를 노리고 있다.

일본 사회가 얼마나 회사 위주로 짜였는지, 에미코는 백수가 되고 실감한다. 무엇보다 그가 비분강개한 게 ‘실업급여’. 구직활동의 증거를 내야 한다는 말에 에미코는 되묻는다. 회사를 다녀야만 사회에 기여하는가? 실업급여는 고정소득을 잃은 뒤에도 일정 기간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안전망 아닌가? 그래도 에미코는 나보다 사정이 낫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제 발로 퇴사한 나는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조차 없었다. 권고사직으로 처리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인사팀 직원이 농으로 답했다. “그러니 크게 깽판을 치고 잘리셨어야죠.” 정말 아까웠다. 거의 다 된 거였는데.

일이란 뭔지, 에미코는 회사를 그만두고 되레 분명해졌다고 한다.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돈을 받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은 놀이와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지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일은 재미있습니다.”

에미코의 말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내 비극은 통장에 입금이 되지 않으면 진지해질 수가 없다는 점이다. 에미코는 일단 직장생활을, 정규직으로 오래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다. 학자금 대출을 걱정하는 사람들, 직장을 때려치우는 고민은커녕 그 안에 한 발 내딛기도 힘든 사람들한테는 호강에 겨운 모험인 셈이다.

‘무엇’이 없는 삶을 한번 살아볼까?

그럼에도 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거리를 던져줬다. 결국 자유에 대한 이야기다. 홀로 행복할 수 없다면 둘이서도 행복할 수 없다. 무엇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라면 그 ‘무엇’에 반드시 매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이 없으면 못 살 거 같은가? 그 ‘무엇’이 없는 삶을 한번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 말이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연결되려면 우선 혼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끈 떨어진 연 신세지만) 하지만 정말 웃음이 나오고 마는지라. 그건 아마도 내가 자유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안하고 고독하고 그러나 그걸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는 나 자신이 있습니다. 그걸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쌓이는 고지서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불안하고 고독하긴 한 거 같다. 40대에 밑도 끝도 없는 방황을 선물한 나 자신이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아직은.

김소민 자유기고가*40대에 자발적으로 맞이한 퇴사 후 암중모색 ‘김소민의 아무거나’를 매주 연재합니다. 목표 지점은 자신과 편안하게 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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