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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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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는 승리한다

폐허 속에서 ‘존나 버텨야’ 이루어지는 변화, 불안이 없다면 성장은 없다네
등록 2019-06-12 03:19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존버는 승리한다.” 림 킴이란 이름으로 4년 만에 돌아온 가수 김예림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보다 들은 말이다. 존버? 외국 사람이야? 찾아보니 ‘존나 버티다’를 줄인 말이다.

자기 자신으로 버티는 그녀

이게 누구야? 대중이 알고 있던 김예림을 싹 다 폐기처분해버렸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버티고 있다. 몽환적인 목소리는 휘두르는 칼날로 변했다. 래퍼가 돼 부른 (SAL-KI)는 갖가지 억압을 향한 살기이자 살아내기다. 머리를 여전사처럼 땋아 내린 그는 앞을 똑바로 응시한다. “우린 장애물을 건너고 있어. 소리를 내뱉어. 총을 장전해. 새로운 역할을 시작할 시간이야. …난 이 게임을 바꿔야 해. 남자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마.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2011년 에 나왔던 1994년생 김예림은 그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안 터지는 곳에서 온 듯한 차림에 힘을 뺀 목소리까지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소속사와 계약하고 데뷔했다. (All Right)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핫팬츠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벽에 뚫린 구멍으로 양복 입은 남자들이 그를 훔쳐봤다. 김예림은 또 한 명의 예쁜 롤리타가 돼 있었다. 소속사와 계약을 끝내고 사라졌다.

“제 스스로 인생을 살기가 어렵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음악을 하고자 했던 건 제 목표였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세울 수 있는 목표가 별로 없었어요.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나란 사람이 어디까지일 수 있을까? 주체를 나로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사용하는 주체가 자신이 될 때 좀더 무궁무진해지지 않을까.” 그는 에서 자기 안의 공격성을 토해냈다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이 하지 말라고 했다. 상업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많았다. “개성과 비전을 사람들에게 각인하려면 한 번의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버티면서 최대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면 이것들이 점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뇌생물학자 게랄트 휘터가 쓴 을 보면, 성장은 불안을 통과해야만 이룰 수 있다. 자궁 밖으로 추방된 뒤 우리는 불안을 통제하는 방식을 배우려고 발버둥치며 우리가 된다. 안전한 느낌으로 향한 탈주로를 찾아 길을 뚫는다. 신경조직 접속을 재조직하며 평생 길을 넓혀간다. 자주 쓰는 방식은 고속도로로 다져진다. 어린 시절 놓인 고속도로는 더 단단하다.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면 거의 자동적으로 그 길을 달린다. 고속도로만 놓인 뇌는 위험하다. 그 길이 막혔을 때 주저앉게 된다.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는 스트레스는 뇌를 흔들어 깨운다. 노르아드레날린의 펌프질 속에 우리는 새로운 접속을 찾아내고 궤도를 뚫는다. 빨리 기억하고 저장하고 배우는 과정은 이 퍼뜩 정신 차린 뇌에서 일어난다. 새로운 불안을 조정할 수 있는 이면도로를 찾았을 때, 뇌는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보상한다. 스트레스 없이는 새 길을 뚫을 수 없다.

천사의 날개는 비에 젖어 푸르네

문제는 통제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스트레스다. 익숙한 방식을 총동원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진다. 스트레스 반응이 길어지면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죽어간다. 면역력과 생식능력이 억제된다. 그 절망 속에서 뇌는 이제까지 써왔던 접속을 해체해나간다.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한다. 새로운 접속을 부르는 파괴다. 재구성하기 위한 해체다. 황무지에서 비틀비틀 어떻게든 다시 길을 내다보면 그전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된다. 그 길을 따라가다 스트레스가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면 불안은 용기로, 무력감은 의지로 변한다. “살다보면 이렇게 언젠가 한 번은 꼭 불현듯 그 자리에 멈춰서게 되는 행운을 경험한다. 그 길이 아무리 성공적인 길이었어도, 아무리 빈번히 이용한 길이었어도 말이다.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체험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금껏 오랫동안 가지 않은 잡풀이 우거져버린 길을 다시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스트레스는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게랄트 휘터)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소설 ‘비 온 뒤’에 등장하는 30대 여자 해리엇은 이탈리아를 홀로 여행 중이다. 원래는 애인과 그리스에 갈 계획이었다. 연애가 깨져버리고 텅 빈 휴가만 남았다. 체사리나는 그가 10살 때 부모님과 함께 왔던 곳이다. 그때 아버지는 목마를 태워줬다. 이후 부모님은 이혼했다. 각자 애인이 있었다. 해리엇이 어린 시절 와봤던 광장을 거닐 때 비가 쏟아진다. 비를 피하러 들어간 교회에서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수태고지를 본다. 교회를 나설 때 비는 그쳤다. 그는 느닷없이 이제까지 자신을 속여왔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려고 연애를 이용해왔다. …그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자,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상황을 바꾸려고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변성을 강요하자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물러섰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피해자였다. 해리엇은 이제 그것을 생생할 정도로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전에는 왜 몰랐는지 의문이 생긴다.” 해리엇은 성당에서 본 수태고지가 비 온 뒤 풍경이란 걸 발견했다.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날개는 비에 젖은 푸른빛이다. 다시 이곳을 찾지 않으리란 것도 알게 됐다. 과거의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이제까지 써왔던 방식을 포기해버린 그 순간, 해리엇은 비 온 뒤 말간 풍경 속에 서 있다.

“난 망쳐질 수 없는 창조물”

되돌아보면 나는 40년 넘게 전속력으로 불안에서 도망쳤다. 다들 안전을 약속하는 길에 들어서고 싶었다. 많이 속였다. 관계에서 불안이 엄습해오면 가장 눈에 익은 방공호로 숨었다. 자기를 헤치는 방식인 줄 알면서도 잠깐은 숨 돌렸다. 종속변수의 삶은 통제 불가능하게 불안하다. 멈춰서니 보이는 곳마다 폐허 같다.

림 킴은 노래했다. “방향을 전환하고 새롭게 정의해… 난 망쳐질 수 없는 창조물. 날것의 나로 존재하는 게 나의 지혜. 황무지에서 왕국으로.” 황무지에서도 자기 손을 놓지 않을 수는 있다. 휘터는 스트레스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보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로 함께하는 느낌을 꼽았다. 타인이 없다면 적어도 자신과 동맹할 수 있지 않을까. 황무지를 토대 삼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를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존버’는 결국 승리한다고 하지 않나.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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