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질 때였다. 멍하게 누워 형광등을 보고 있었다. “엄마, 나 쌍꺼풀 수술할까?” “그럴래?” 이건 뭐지? 왜 이렇게 반색하지? 갑자기 설움이 폭발해 발악했다. “엄마라도 안 해도 된다고 해야지! 지금 그대로 예쁘다고 해야지!” 당황한 엄마가 상황 수습에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떠올렸나보다. “우리 딸, 한석규 닮았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거 안다.
주류 질서가 ‘아름다움’과 결합할 때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쌍꺼풀 수술 후기 따위를 찾아본다. 과학자를 닮아가는 블로거들은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 하루 단위로 부기 상태를 설명하고 증거 사진도 남긴다. 인터넷에서 송혜교, 수지 사진을 넋 놓고 본다. 매력 자본이 빵빵한 이들은 얼마나 쉽게 세상을 끌어당기나. 내가 창자를 꺼내 줄넘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얻을까 말까 할 관심과 애정을 아름다운 그들은 눈길 한 방이면 얻을 수 있다. 나도 큰 눈을 깜박이며 사랑과 관심으로 향한 8차선 고속도로를 오픈카 타고 달려보고 싶다. 지금은, 달구지 끌고 늪지대를 지나는데 바퀴가 빠지고….
내 작고 찢어진 눈을 오래 미워했다. ‘너’만 없다면 나는 ‘단춧구멍’ 따위 조롱에 멋쩍게 웃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눈만 고치면 될 문제는 아니다. “가슴이 등인 줄 알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럴 때 성질부리면 ‘모양’ 빠진다. 내 ‘사회적 자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한다. “내 등이 좀 풍만하다.” 슬프고 화나는 나는 숨겨둔다. 학창 시절 내내 외모 놀림을 받은 친구는 이런 조언을 듣고 분기탱천했다. “당당하래. 당당하지 않으면 더 추하대. 놀림 받는데 슬퍼하지도 못해. 당당하기까지 해야 돼.”
내가 독일인과 사귈 때, 한 친구가 말했다. “그 남자, 백인이라 좋은 거지?” “너는 네 남자친구 황인종이라 사귀냐?” 이렇게 대꾸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엔 의혹이 남았다. 크고 푸른 눈, 오뚝한 콧날, 갸름한 턱선과 흰 피부를 내가 동경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아름다운 얼굴’이라 이르는 데 필요한 요소를 그 백인은 수술하지 않고도 다 가지고 있었다.
누구 보기에 좋은 가슴이고 눈인가? 내 몸에 대는 그 줄자는 누구 것인가? 리베카 솔닛은 책 에서 이렇게 썼다. “왕비는 누구의 칭송을 필요로 하는가? 본인의 아름다움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하는 백설공주는 무엇을 놓고 왕비와 경쟁하는가? 왕비는 남성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것이며, 가치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그런 남성의 관심이다.” 왜 어떤 얼굴이 ‘아름다운가?’ “프란츠 파농은 서인도 제도 주민들이 무의식적으로 여성의 검은 피부를 보면서 악취와 동물성을 떠올린다고 썼다. …백인은 궁극적인 아름다움인 반면, 흑인은 추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클로딘느 사게르, ) ‘주류’의 질서가 ‘아름다움’과 결합하면 공고한 차별의 벽이 완성된다. 그 아름다움의 질서는 타자의 마음에 스며드니까. 아름다움은 이성으로 깰 수 없는 것이니까. 아름답지 못하다는 건 사랑받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니, 그런 압력은 웬만한 강심장도 견뎌내기 힘들다.
‘콩깍지’란 오랜 시간 바라보기그런데도 내가 성형수술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작은 눈이 내 몸뿐만 아니라 내 정체성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나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기준에 백기투항하는 건 어쩐지 나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도 없다. 대체 어쩌라고?
“나는 오랜 시간 나 스스로의 존엄과 매력을 입증해보고자 투쟁했지만, 지금도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우아하게 직립보행할 수 없는 내 다리를 쳐다보면 한숨이 나온다.” 골형성부전증이 있는 변호사 김원영씨의 책 에서 이 문장을 보고 나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몸 때문에 입학 거부당한 적 없고, 지하철을 타려다 죽지도 않았으며, 계단 몇 개만으로 식당에서 무언의 출입금지를 당하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게 죄책감도 들지만, 그 심정의 한 자락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몸을 가두는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제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나도 내 몸의 일부가 ‘실격’당했다고 느끼니까.
이 책에서 배운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수용이다. 수용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결단이다. “나에 대한 그런 손가락질의 원인은 세상의 잘못된 평가와 위계적 질서이지만, 그에 맞서 내 존재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선언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것이 ‘정체성을 수용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실천적 태도이다.”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오래 바라보기다. 한 사람이 직접 쓴 이야기를, 그 풍부한 결을 오래 듣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콩깍지’는 어쩌면 알 수 없는 비합리적 힘에 도취된 상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섬세하게 분별한 그 사람의 미적 요소들이 완전하게 통합된, 그 사람의 초상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미국 드라마 에서 연골무형성증을 지닌 ‘티리온’을 7년간 보다보면, 캐릭터와 외모의 매력이 섞여버리는 것처럼 “한 사람이 인생에서 써나가는 자기 서사는 우리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신체’에 통합되고, 농축되고, 종합되어 구현된다.”
한국에서 누가 작은 눈의 이야기를 들어줄까그래서 나도 나한테 이렇게 말해본다. ‘내 눈을 바라봐, 내 눈을 바라봐, 이건 그냥 작은 눈이 아니야, 눈이 커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압력에 대한 내 나름의 도전이야. 이 작고 쪽 찢어진 눈을 지킨 내 삶의 태도야. 사랑스럽지 않아?’ 그런데 두렵다. 자신 없다. 여기가 어디냐. 언론이라는 는 북-미 협상 결렬 소식을 전하며 이목구비 또렷한 자사 기자 사진을 “아이돌급 외모로 인기” 따위 제목과 함께 내보내고, 1년 전 앵커 브리핑에서 안경 쓸 자유를 박탈당한 여성들의 상황을 씁쓸하게 전한 JTBC 뉴스에도 안경 쓴, 뚱뚱한, 늙은 여성 기자나 앵커는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곳이다. 누가 내 작은 눈이 하는 긴 이야기를 들어주기나 할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도 나는 내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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