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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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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혼자인 게 창피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어차피 이런 질문은 홀로 답해야 한다
등록 2019-05-03 10:58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혼자인 게 창피할 때가 있다. 동시에 창피해하는 게 창피하다. ‘정상가족’을 이룬 사람들은 나를 뭔가 모자란 사람으로, 홀로 당당한 사람들은 나를 의존적인 인간으로 볼 것만 같다. 내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먹튀’가 미안해 종교 포기

어머니 고희 기념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다. 같이 관광버스에 실려 다니던 모녀와 점심때 합석하게 됐다. 서로 어색한 미소를 날리며 밥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상냥한 중년 여자가 집에 두고 온 개 이야기를 꺼냈다. 고마워서 덥석 물었다. “저도 개를 키워보고 싶어요.”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어머, 키우세요. 아이들은 다 컸을 거 아니에요.” 난자가 수정도 된 적 없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당황해 물을 들이켰다. 밥이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지, 개가 어떤 재롱을 부리는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이어가느라 안간힘을 썼다. 분위기가 더 꼬였다. 나는 묘한 적의와 함께 숙제를 안 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아이같이 죄책감을 느꼈다.

독신에 직장도 안 나가니 강제 묵언 수행 중일 때가 많다. 동네 친구를 사귀려고 성당 봉사모임에 들었다. 새로 왔다고 부대찌개를 얻어먹었다. 라면사리까지 추가했다. 그다음 주에는 양념통닭을 먹었다. 그러고는 불우이웃을 만나기도 전에 입을 싹 닦았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물어볼 때마다 코너에 몰리는 기분이 들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해명해야 할 거 같다. 이제 ‘먹튀’한 게 미안해 성당에도 못 간다.

“여자라서 행복해요.”(미미 토리송) 기자이자 에세이스트 모나 숄레가 쓴 를 읽다 미미 토리송이란 ‘사기 캐릭터’를 알게 됐다. 프랑스 인기 블로거다. 한 번 클릭하니 헤어나올 수가 없다. 글은 영어라 사진만 하염없이 봤다. 일상이 명화다. 프랑스 시골에 있는 3층짜리 저택을 사서 사진가 남편, 아이 넷과 산다. 그 집 전면 창문 수를 세어봤더니 15개다. 막내는 장미꽃에 둘러싸여 집에서 낳았단다. 첫 페이지엔 긴 드레스에 흰 앞치마를 두른 미미가 양파,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내가 구별할 수 없는 채소를 바구니에 들고 서 있다. 그 아랜 미미가 만든 하이난식 치킨라이스를 소개했다. 내가 구별할 수 없는 꽃들이 커다란 나무 식탁 위에 한가득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장미꽃잎을 날린다. 중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미는 5개 국어를 한단다. 미국 <cnn> 방송사 프로듀서 등으로 일하다 시골에 정착하기로 ‘선택하고’ 살림의 여왕이 됐다. 블로그 인기가 치솟아 책도 내고, 한 방송 요리 프로그램도 맡았다.

누가 청소를 할까, 빨래는 누가 할까

미미의 블로그를 보다보면 동화 속 문장이 들린다.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그게 부러워서 계속 본다. 결혼도 육아도 할 생각이 없는 모나 숄레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부러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꿈에 순응하며 산다는 사실이다.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표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수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온 문화에 의해 인정받음을 느끼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따뜻한 목욕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이런 ‘선택들’이 각자의 조건에 좌지우지되며, 어떤 선택들은 또 다른 것들보다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이다.”()
이 큰 집은 누가 청소할까? 빨래는 누가 할까? 미미의 블로그에는 노동이 없다. 애가 넷인데 얼굴에 땟국물이 안 흐른다. 미미의 갈색 머리는 항상 찰랑거린다. 애 하나 키우는 내 친구는 드레스를 차려입기는커녕 똥도 문 열고 눴다. 25년 된 아파트로 처음 이사 온 날, 나도 살림을 제대로 해보겠다 다짐했다. 이케아에서 산 물건을 수시로 바꾸는 바람에 직원이 얼굴을 알아봤다. 전구가 줄줄이 연결된 조명도 사 창가에 걸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조명 때문에 집이 성황당 같다. 인테리어의 핵심은 청소고 청소는 고된 노동이다. 내 입 하나 챙기면 되는데도 삼시 세끼 챙기기가 고역이다. 내 양말 두 짝도 맞추기 어렵다.
미미의 진짜 삶에 대해 내가 뭘 알겠나. 그런데도 오래 들어온 정답 같아 맞다, 맞다 한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남들이 좋다는 길로 가고 싶어진다. 일단 안전하고 볼 일이다. 이게 내 욕망인지도 헷갈린다. “늙어서 어떻게 할래.” “애를 낳아보지 않으면 어른이 안 된다.” 이런 말을 듣다보니 이게 내 목소리인지 남의 목소리인지도 모르겠다.
10여 년을 함께 산 남편이 돌아서자 올가는 무너졌다. 엘레나 페란테가 쓴 는 그 내면 보고서다. 올가가 맞서야 하는 대상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양육비도 내놓지 않는 남편만이 아니다. 올가의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이미지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여자에 대한 기억이다. 팔뚝이 실하고 호탕하게 웃던 그 이웃 여자는 남편이 떠난 뒤 말라가다 자살했다. 올가는 자기 머릿속에 맴도는 불행의 주문을 몰아내야 한다. “내 앞에 도마뱀이 나타난다면 도마뱀과 싸울 것이다. 개미 떼가 나타난다면 개미 떼와 싸울 것이다. 내 집에 도둑이 든다면 그 도둑과도 싸울 것이고, 내 앞을 내가 가로막고 있다면 나 자신과도 싸울 것이다.” 서양화가이자 페미니스트, 35살에 이혼하고 홀로 숨진 나혜석 앞에는 ‘비운’이라는 낱말이 얼마나 자주 붙나. 그런데 정희진은 “나는 나혜석의 삶이 행복했다고 본다”며 “그녀 자신도 그렇게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나혜석의 삶은 행복했다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불안하다. 확실한 건 자신에게 불행을 암시하면 더 불행해질 거란 점이다. 행복 인증 마크를 따야 할 것 같은 압박 때문에 더 불행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내 삶에 의미는 있나? 이런 질문에는 어차피 홀로 답해야 한다. “고독, 회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은 싱글들의 삶에 고유한 것들인가? 아니면 삶 자체에 고유한 정서인가?”()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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