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일을 시작한 건 학습지와 전집을 출간하고 유통하는 대형 출판사에서였다. 처음부터 출판편집자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 이리저리 찾아보다 그 기업의 채용 공고를 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직군이 ‘편집개발’뿐이어서 그렇게 지원했다. 운 좋게 합격해 연수도 받고 팀 배치도 받았다. 초등용 한자 학습지를 개발하는 팀이었다.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큰 기업이어서 편집자로서 기초 교육도 잘 받았다. 1년 정도 열심히 배우고 나니 기본적 일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자연스레 기획이랄지 좀더 깊이 있는 업무에 욕심이 났는데, 동시에 그 일을 잘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유아와 초등생이 대상인 교육·문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상 독자에 대한 이해가 일천했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크게 생기지 않았다. 이 시장의 특성상 독자는 아이들이지만 실구매자는 주로 부모이기 때문에 그런 이중성도 이해해야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결혼과 육아가 남의 일처럼 느껴진 20대 후반의 이야기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10여 년 전 내가 멀게만 느꼈던 ‘타깃’에 가까워진 나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이수지), (서현), (백희나), (스테파니 블레이크), (조리 존·레인 스미스). 내가 최근에 산 책 목록이다. 이제 겨우 돌 지난 아이를 핑계로 그림책을 잔뜩 사놓곤 이수지의 그림에 감탄하고 서현의 이야기에 배꼽 잡고 앉아 있는 나를 만난다.
나를 이렇게 만든 출발은 (유문조 지음, 유승하 그림)였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받은 몇 권의 책 선물 중, 아이가 유독 이 책을 좋아했다. 아직 기지도 못하는 아이가 책장을 넘기며 신나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얘가 누굴 닮아 이렇게 책을 좋아하나’ 하며 혼자 뿌듯해했던 것,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처음엔 아이가 좋아하나보다 했지만, 점점 나도 이 책에 빠져들었다. 특히 친근하면서 세련되고 따뜻하면서 위트 있는 그림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미소 짓게 된다.
그림책은 한번 사두면 수없이 읽게 되는데, 사둔 책들을 그렇게 읽어도 아쉬운 점을 찾기 쉽지 않다. 글자로 가득한 수백 쪽짜리 책을 만들다보면 사실 놓치고 가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그림책은 재질부터 구두점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결정되는 게 없구나 하는 인상을 받고 새삼 감탄한다. 그림책 시장에 독자 한 명이 늘어나는 순간이다.
‘내가 타깃 독자인, 내가 즐겨 읽는 종류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직을 한 지도 10년 넘는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과연 독자와 시장을 얼마나 더 이해하게 된 걸까, 자문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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