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40년. 북극의 얼음이 거의 녹아버린 ‘대해빙’을 겪은 뒤, 영국엔 콜레라가 창궐한다. 황폐한 땅에 남은 동물이라곤 다람쥐와 쥐·비둘기뿐이다. 강과 개천은 병균으로 오염됐다. 몸을 씻기는커녕 마실 물조차 없다. 사람들은 오염된 물에 표백제를 섞고 끓여 수증기만 모아 입술을 축인다. 상류층은 플라스틱 캡슐 안에서 정화된 공기를 마시지만, 가난한 자들은 낡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온갖 종양에 시달린다. ‘나’와 G는 이 모든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는 ‘배급제’로도 이 악몽을 끝낼 수는 없다. 살던 집과 마룻바닥 밑에 숨겨둔 정어리 통조림마저 약탈당하자 ‘나’와 G는 비자발적 난민이 되기로 한다. 이 땅에 미래는 없다. ‘나’는 임신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참혹한 상황 속, 인간성을 상실한 한 인간에 의해 ‘나’는 결국 임신을 하게 된다. ‘나’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환경 위기를 소재로 한 테마소설집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민음사 펴냄)의 다섯 번째 작품 ‘어느 흥미로운 해의 일기’다. 제목은 재미있다는 뜻이 내포된 ‘흥미로운’이지만, 소설 속 장면들은 결코 흥미롭지 않을뿐더러, 흥미롭게 읽을 수도 없다. 소설이 일기 형식을 빌리고 있어 논픽션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절대로 맞닥뜨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디스토피아는 실은 마주하지 않길 바라는 ‘공포’와 비슷한말이다. 실제 우리는 미세먼지를 피해 실내로 도피하는 ‘공기 난민’ 초기 생활을 겪고 있다.
책은 ‘어느 흥미로운 해의 일기’를 포함해 단편소설 10편을 담았다. 벌목으로 사라지는 숲과 동물을 지키기 위해 시멘트에 몸을 말뚝 삼아 박은 일가족 이야기인 ‘1989년 7월, 시스키유 숲’ 등 4편은 환경이 망가져가는 현재를 다룬다. 자원 부족이 가져온 참담함을 그린 ‘연료 강탈자’ ‘위성류 벌채꾼’ 등 6편은 암울한 미래에 대한 얘기다. 작품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는 여타 소설들과 달리, 사람과 사람 이외의 다른 세계와의 관계에 주목했다.
광고
“존 뮤어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신은 곰의 편에 서겠다고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데이브 포먼의 에서 인용한 제사(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를 보면, 작가 10명의 소설을 모은 이 책의 기획 의도는 분명하다. 무너져가는 대자연 앞에선, 인간 또한 얼음 조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과 매한가지라는 것. 따라서 우리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책장을 넘기는 것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한밤중에 깨어나 임신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과연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는 소설 속 ‘나’의 일기가 어쩌면 ‘미래의 나’의 일기가 될 수도 있기에.
장수경 편집3팀 기자 flying710@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산청 산불 사망 4명으로 늘어…야간 진화작업 계속
“윤석열 당장 파면” 헌재에 목 놓아 외쳤다…절박해진 광장
‘K-엔비디아’ 꺼냈던 이재명, 유발 하라리에 “어떻게 생각하시냐”
“머스크 명백한 나치 경례…미친 짓” 연 끊은 자녀도 공개 직격
산청 산불 실종자 2명도 숨진 채 발견…사망 4명으로
풀려난 김성훈에 놀란 시민사회 “법원이 내준 영장 막았는데…”
BTS 정국, 군복무 중 주식 84억 탈취 피해…“원상회복 조치”
나경원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뼈도 못 추릴 만큼 나라 망해”
경남 산청 산불 진화대원 2명 사망…2명은 실종
한동훈 얼굴 깔고 ‘밟아밟아존’…국힘도 못 믿겠단 윤 지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