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
1983년 2월 이른 아침 일본 도쿄의 한 호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선언했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당시 한국은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인구 1억 명 이상, 1명당 국민소득 1만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 중 단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는 나라였다. 국내 전문가는 물론 글로벌 반도체 관계자들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차라리 신발 산업을 밀어주는 게 낫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의 논리는 달랐다. 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이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이었다. D램을 선택한 이유도 분명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공급과잉이 예상되더라도 시장 규모가 큰 D램에 진입해야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1983년 11월, 삼성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선진국과 10년 이상 벌어졌던 기술 격차가 불과 4년으로 단축되는 순간이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도 같은 해 반도체 대열에 합류했다. 경기도 이천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도전장을 내민 현대전자는 삼성과 함께 한국을 세계 반도체 지도에 올려놓았다. 1990년대 초반 D램 가격 폭락으로 삼성전자가 수조원의 손실을 보았을 때, 이건희 회장이 진두지휘한 불황기 역발상 투자 전략이 빛을 발했다.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는 시점에 오히려 설비를 과감히 늘린 결과, 1992년 64M D램 세계 최초 개발,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도쿄 선언 불과 10년 만의 일이었다. 경영자의 담대한 비전과 비상한 투자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반도체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경영자의 결단이 방향을 잡았다면, 그 방향을 따라 실제로 길을 닦은 것은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기술자였다. 선진국에서 18개월이 걸리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6개월에 완료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영하의 날씨에도 24시간 교대로 현장을 지킨 것은 이름 없는 건설 노동자들이었다. 클린룸 속 기술자들은 수십 종의 유독성 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면서도 수율을 높이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연구하고 일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하이닉스 반도체의 재건 과정은 노동자 집단지성의 힘을 잘 보여준다. 부채비율 600%를 넘기며 존폐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에서 금기시되던 폐기 예정 생산 장비의 재활용 전략을 과감히 도입해 비용을 절감하고 수율을 높인 것은 현장 엔지니어들의 집단적 지혜였다. 피를 말리는 구조조정 속에서도 임금 삭감을 감수하며 자리를 지킨 노동자들의 버팀이 없었다면, 2005년의 경영 정상화도, 2012년 에스케이(SK)하이닉스로의 재탄생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화의 이면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늘이 있다. 클린룸 속 노동자들은 포토레지스트·에칭가스·세정액 등 수십 종의 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됐고, 과잉 노동과 산업재해 문제는 오랫동안 공론화되지 못한 채 묻혔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SK하이닉스 이천공장 기술연구소에서 28년을 근무하다 뇌종양으로 숨진 최상미씨의 이야기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린 상징적 사례들이다. 이들의 투쟁은 기업이 산업안전에 더 진지하게 임하도록 강제했고, 삼성전자는 2018년 공식 사과와 함께 포괄적 보상 방안을 발표했다. 반도체 신화의 이면에 새겨진 이름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의 성공을 경영자와 노동자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다. 1982년 정부는 전자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며 반도체 국산화를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초기 반도체 연구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지원, 세제 혜택, 외자 도입 허용 등 국가의 정책적 토대가 없었다면 삼성과 현대의 용기 있는 도전도 결실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도체는 대기업의 사유물이기 이전에, 국민 전체가 함께 일군 대한민국의 산업 역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시민들이 팔찌와 반지를 들고 금모으기에 나선 것도 한국 경제 전반이 버티는 데 상징적 연대의 힘이 되었다. 사회 전체의 신뢰와 지지가 바탕이 되어 기업은 위기 속에서도 장기적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반도체 수출이 한국 전체 수출의 40%를 넘는 오늘날의 구조는 어느 한 주체의 기여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 사회적 지지, 기업의 투자, 노동자의 헌신이 함께 이뤄낸 결과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는 반도체산업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량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단숨에 가장 중요한 부품으로 떠올랐다. D램 칩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연결하는 3D 적층 구조의 HBM은 일반 D램보다 5~6배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2013년 세계 최초로 HBM1을 양산한 이래 묵묵히 기술을 쌓아온 SK하이닉스는 AI 붐이 터졌을 때 이미 준비된 기업이었다. 2024년 HBM3E 양산 선두, 영업이익 23조원 돌파, HBM 시장 점유율 62%라는 성과로 세계 메모리 시장의 중심에 올랐다.
삼성전자도 2025년 엔비디아 HBM3E 납품 인증을 획득하며 반격에 나섰고, HBM4를 겨냥한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양사 합산 D램 시장 점유율은 70%를 웃돌고, HBM 시장에서도 두 회사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과점 구조가 형성됐다. 그러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기업 창신메모리는 HBM3 샘플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범용 D램에서 한-중 기술 격차는 1년 안팎으로 좁혀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한국 기업을 자국 공급망에 편입시키려 하고, 중국은 기술 자립과 인재 스카우트로 압박한다. 양강 사이에서 한국 반도체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2008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씨의 1주기 추모 사진 등이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 걸려 있다. 한겨레 자료
이병철 회장이 도쿄에서 선언했던 1983년 2월의 그 새벽부터, 영하의 기흥공장 건설 현장을 달군 노동자들의 체온, 하이닉스 도산 위기를 버텨낸 이천과 청주의 엔지니어들, 클린룸의 어둠 속에 이름도 없이 쓰러진 노동자들, 그리고 AI 반도체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오늘의 연구자들까지.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국 반도체 40년의 역사다.
반도체 신화는 결코 한 사람의 영웅이 써낸 것이 아니었다. 담대한 비전을 제시한 경영자, 그 비전을 현실로 빚어낸 노동자와 기술자, 산업 토대를 닦은 국가 정책, 그리고 위기마다 연대로 응답한 시민사회가 함께 이룬 것이다. 반도체 한 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백 단계의 공정을 거치듯, 반도체산업의 성공 역시 수백만 개의 헌신이 층층이 쌓인 결과다.
따라서 AI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이익 또한 어느 한 주체만의 몫이 돼서는 안 된다. 클린룸을 지키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처우, 화학물질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한 온전한 보상, 반도체 클러스터 주변 지역사회와의 상생, 수많은 협력업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정한 생태계, 그리고 미래 인재를 키워내는 국가의 교육 투자와 연구개발 지원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600조원 투자와 삼성전자의 평택 신규 팹(Fab·반도체칩을 실제 만드는 제조라인 전체) 준공은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지, 어느 한 기업만의 투자가 아니다. 그 거대한 투자가 뿌리내릴 땅은 결국 이 사회 전체가 함께 일궈온 토양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뒷모습. 한겨레 자료
지금 한국 반도체산업이 마주한 도전은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거대하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지고, 중국의 추격은 빨라지고 있으며, AI가 요구하는 기술의 진화 속도는 숨 가쁘다. 이 도전 앞에서 경영자 혼자의 결단만으로는, 노동자 혼자의 헌신만으로는, 국가 혼자의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1983년의 도쿄 선언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것도, 2000년대 초반 하이닉스가 도산의 벼랑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각자의 자리에서 한 방향을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40년의 반도체 신화 역시 그래야 한다. 지정학적 압박이 거세지고 기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시대일수록 경영자의 결단, 노동자의 헌신, 국가와 사회의 뒷받침이 다시 한번 하나로 모여야 한다. 이익은 나누고, 위험은 함께 지며, 성과는 모두의 것으로 돌리는 구조 위에서만 다음 신화는 가능하다.
이광수 경제평론가·‘광수네, 복덕방’ 대표
*소수의 성취보다 다수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며 투자와 경제를 이야기합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네타냐후 체포영장 검토”…한국인 나포에 강경 발언

정부 “한국 유조선 호르무즈 첫 통과 중…통행료 없이 200만배럴”

이 대통령, 삼성 노조 겨냥 “적정선 있다…영업이익 배분 요구 이해 불가”

“광주서 돈 벌고 5·18 조롱”…4조 흔드는 ‘멸공 정용진’ 리스크

한국 유조선, 호르무즈 통과 중…6월 8일 울산항 도착 예정

노동장관 직접 나선다…삼성전자 노사, 극적 교섭 재개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불륜’ 의혹에 법원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 제시”

503, 10, 21, 133 ‘탱크데이’ 숫자들…“극우가 숨긴 상징 놀이”

김건희 “내 영어 이름은 제니…쥴리의 ‘쥴’ 자도 쓴 적 없어”

중노위원장 “19일 밤 삼전 노사 합의 안 되면, 공식 조정안 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