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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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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려 시를 썼다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가 쓴 시 64편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등록 2017-08-31 00:48 수정 2020-05-03 04:28

어미는 그저 미안하다고 했다. 배를 무리하게 증개축한 이, 기준치 이상으로 화물을 실은 이, 침몰하는 배에 가만히 있으라고 한 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이, 그리고 아이들이 가라앉던 화급한 그 시각 올림머리 하느라 90분을 낭비한 이, 모두 입을 닫은 가운데 어미는 그저 미안하다고 했다. 가해한 이들이 튕겨낸 죄의 화살은 어미의 가슴에 고스란히 박혔다. 죄인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기에, 어미는 자신에게 돌을 던졌다.

“사랑하는 딸 앞에서/ 죄 많은 엄마는 눈물만 보인다.”(‘뒤돌아보아도 아프다’) “아비 어미 부덕한 탓./ 세상 옷 제대로 깁지 않은 죄/ 육신을 도려내는 고통/ 고스란히 감내하라는 벌 아닌가.”(‘부덕한 탓’) “불쌍하다, 어린 너를 어이 잊을까.// 한평생 한울타리 엮으며 웃자 했는데/ 내 마음 그루터기는/ 죄인으로 깊이 새겨졌다.// 아- 세상을 등지고 싶어.”(‘엄마 마음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 학생의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불가해한 참사가 엄마의 주름을 펴주겠다는 아이를 집어삼켰다. 혜경이가 떠난 지 1년 반이 됐을 때, 엄마 유인애씨는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폈다. “얼굴 대보며 17년 전 아기였던 너의 냄새 맡는다./ 아기분과 젖 냄새, 분유 냄새/ 그 냄새를 애써 찾는다.”(‘배냇저고리’) 아이의 체취를 맡으며 유씨는 시 120편을 썼다. 그중 64편을 골라 시집 를 냈다. 출판은 을 펴낸 ‘굿플러스북’에서 맡았다.

시집을 채우는 정서는 미안함이다. 부덕, 잘못, 죄 등 자책의 언어들이 주변을 고요하게 누른다. 시어는 담담하지만, 행간에 가만히 시선을 놓으면 어미의 흐느낌이 귓전을 스친다. 책장이 쉽사리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다.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어미는 살아내려 시를 썼지만,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어미에겐 죄스러울 뿐이다.

“내 입에 음식이 있을 때/ 다 닳아진 신발 버리고 새것 살 때/ 옷가지 하나 고심 끝에 사 입을 때/ 직장에서 나 때문에 피해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어울려 웃을 때/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 짝이 없다.// 딸과의 이별은 금기어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추울 때 ‘춥다’거나 아플 때 ‘아프다’거나/ 이런 말들은 가능한 꾹 참는다.// 미안하고 또 너무 많이 미안해서….// 나는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가.”(‘살아남은 자의 슬픔’)

태어나 처음 안았던 날의 혜경이, 새우를 좋아하던 혜경이, 소설 를 즐겨 읽던 혜경이, 다이어트한다고 아이스크림은 녹차맛만 먹던 혜경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망신고서에 적은 이혜경 이름 석 자…. 그리움은 절절한 시가 되었다. “이 시집에서는 칼로 천천히 살점을 도려내고 천천히 뼈를 긁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한 번 죽지만 엄마는 수백 번 죽는다”(이산하 시인의 추천사)

슬픔만으로도 버거울 희생자 304명의 가족에게 죄책감까지 떠넘긴 자는 누구인가. 세월호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 세월호엔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 5명이 남아 있다.

장수경 편집3팀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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