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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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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독박, 육아

아이 돌보기에 서툰 나를 대신해

아내는 육아와 집안일을 떠안아
등록 2017-06-03 15:31 수정 2020-05-03 04:28
도담이가 태어난 지 80일 되는 5월24일,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도담이가 목을 가누었어.’ 김성훈

도담이가 태어난 지 80일 되는 5월24일,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도담이가 목을 가누었어.’ 김성훈

“열흘씩이나? 람보(아내의 마을 별명)의 독박육아구먼, 쯧쯧.”

한 달여 전 공동주택 엘리베이터, 윗집 사는 해바와 라이더가 내 캐리어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황금연휴 기간에 전주국제영화제에 출장 간다는 말을 하자 아주 기가 찬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보는 눈빛엔 (아내와 50일도 안 된 아이를 두고 장기 출장을 갈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철없음 반,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에 대한) 걱정 반이었다. 아내는 “잘하고 오라”고 배웅해주었으나 전북 전주로 가는 내내 ‘독박육아’가 귓가에 맴돌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영상통화로 만난 아내의 다크서클은 코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손목보호대를 찼는데도 손목 관절은 너덜너덜해졌단다. 성미산을 호령하던 아내의 목소리는 개미만 해졌다. 아내는 출장 닷새 만에 “언제 올 거냐”고 거듭 물었다. 매번 쏜살처럼 흘러가던 영화제 출장 시계가 이번만큼은 어찌나 안 가던지.

독박육아의 후유증일까. 며칠 전 아내는 허리 고통을 호소했다. 아내가 걸을 때 몸의 균형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걸 보고 이상하다고 여기던 차였다. 허리도 곧추 펴지 못했다. 집 근처 한의원에 갔더니 “오래 이어진 육아 때문에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며 “잠을 푹 자고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되돌아보니 아내는 도담이를 출산한 뒤 80여 일 동안 단 하루도 푹 쉬지 못했다. 낮에는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랴, 새벽에는 서너 번씩 깨서 수유하랴 제대로 눈 붙일 시간조차 없었다. 분유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휙 돌리는 도담이에게 매번 젖을 물리는 일은 기진맥진해 보였다. 안아주지 않으면 자지 않는 수면 습관 때문에 도담이를 재울 때마다 적잖은 체력이 소모됐다. 일하는 장모님이나 지방에 계신 어머니께 도담이를 봐달라고 부탁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육아는 출산 때문에 일을 잠깐 쉬는 아내(와 내) 몫이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는데도 아내의 허리는 점점 꼬부랑 할머니처럼 구부러졌다. 고통을 참는 신음 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아내는 결국 정형외과 문을 두드렸다. “출산 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골반이 틀어졌고, 그 때문에 인대가 파열됐대. 결국 요추염좌.” 도수 치료와 재활을 받고 병원에서 나온 아내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 다른 직장에 비해 아이 돌볼 시간이 아주 없는 회사가 아니다. 취재와 마감 일정을 기준으로 한 주가 돌아가는 까닭에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목요일 마감이 끝나면 전혀 눈치 보지 않고 금요일에 휴가를 쓸 수 있다. 할 일 하고 사정을 잘 설명하면 편집장이 편의도 잘 봐준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아내에 비해 아빠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함을 절감하고 있다.

하루는 허리가 아픈 아내 대신 도담이를 직접 씻기기 위해 부랴부랴 기사를 데스크에 올리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깨너머로 배운 대로 한 손으로 도담이 몸을 잡고, 다른 손으로 씻기려는데 도담이를 떨어뜨릴까봐 어찌나 불안했는지, 도담이는 도담이대로 울음을 터트리고, 나는 나대로 아내에게 SOS를 요청해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도담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목욕이나 옷 갈아 입히기 같은 실전에선 허둥댄다. 그 때마다 내가 아이를 입으로만 사랑하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들곤 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육아와 집안일을 전투적으로 도맡아하는 것도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심리에서 발현된 행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00일만 지나면 몸도 마음도 좀 편해질 거야”라는 육아 선배들의 조언이 자꾸 생각나는 요즘인데, ‘기적의 100일’이 와도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이래저래 복잡하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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