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곁에 두면 일품’ 45가지를 소개합니다

삶에 영감을 주는 소품들 <윤광준의 신생활명품>
등록 2017-04-07 20:05 수정 2020-05-03 04:28

삶에서 ‘잔재미가 전부’라고 믿는 부류는 물건도 소품이 너무 중요하다. 이들에게 “풍요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촘촘히 메우는 일로 비롯된다”. 촘촘히. 벼락같은 행운보다 매일의 자잘한 만족이, 명품 생활보다 ‘생활명품’이 풍요할 것이다. 적어도 이 책에 관심을 갖는 나와 당신에겐.

(오픈하우스 펴냄)이 나왔다. (2002), (2008)에 이은 세 번째 생활명품 시리즈. 사진가이자 오디오 평론가인 지은이는 제대로 만들어진 일상용품을 가리켜 ‘생활명품’이라 부르며 그 목록을 독자와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이번 책엔 45가지가 담겼다. 1~4장에는 패션, 디지털 기기, 각종 동서양 술과 먹거리까지 의식주의 생활명품이 망라됐다. 마지막 5장에는 ‘영감을 주는 생활명품’ 8가지가 추려졌다. 창조적 일의 과정은 대부분 창조적이지 않으나 누군가의 영감 어린 소품을 곁에 두면 그나마 덜 지루하다. 창조성의 성질, 전이는 안 돼도 어느 정도 반영은 된다. 그게 어딘가.

산들바람을 맛보게 해준다는 선풍기(발뮤다) 편. “바깥 날개는 빠른 유속을, 안쪽 날개는 느린 유속을 만들어 속도 차에 의해 바람을 퍼지게 한 구조. 넓은 공간에 천천히 공기의 흐름이 생긴다. (…) 기존 선풍기는 바람을 세게 일게 해 앞으로만 보낸다. 억지 바람은 자연 바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자연 바람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넓게 퍼져 스치듯 다가와서다. 세기가 아니라 움직임이 핵심이다. 자연 바람이 더 좋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왜 기존 선풍기엔 적용하지 못했을까.” 잘 잊고 살지만, 도시는 바람을 잃었다. 물과 빛만큼 중요한 게 바람이란 걸 식물을 곁에 두면서야 알았다. 공기 흐름이 정체되면 식물도 가만히 서서 죽어간다. 바람이 돌아다니며 식물을 운동시키는 모양. 화원에선 선풍기를 사계절 돌리기도 한다.

“몸은 마음에 따라 도발될 뿐이다. 정신적으로 신선하게 인식함으로써만 그 경험을 신선하게 만들 수 있다.”(D. H. 로런스) 일상도 관점에 따라 도발된다. 윤광준이 꼽는 생활명품은 귀중한 요소가 실종된 일상의 훼손을 들추는 안목으로 가려진다. 이 책의 매력은 일상을 도발하는 시각에 있다. 그는 물건에서 물성만 보지 않았다. “좋은 물건 뒤엔 반드시 좋은 사람들이 있다. (…) 하나같이 진실하고 성실한 인품의 소유자들이었다. 어설픈 타협을 하지 않았고 더디고 답답한 세월을 이겨낸 이들이기도 했다. 물건은 곧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벚꽃잎이 새빨강과 하양의 조합이었어도 마음이 이렇게 선득선득할까. 하필, 분홍과 하양의 조합일까. 잘 어울릴 때는 비밀이 있다. 이미 가지고 있어서 잘 어울린다. 붉은빛에 흰빛이 도는 상태인 분홍은 이미 하양을 내재하고 있다. 간소한 삶이 체질에 맞는, 그래서 제대로 된 물건 하나(一品)를 필요로 하는 당신은 이미 그 안에 최고의 것, 일품이 있을 것이다.

생활의 윤기를 정교한 심미안으로 돌게 하려는 독자에게 권한다. 미국 칼럼니스트 제시카 커윈 젱킨스가 쓴 (2011)도 함께 추천한다. 칙칙했던 삶에 ‘무드 등’이 탁 켜질 것이다.

석진희 디지털뉴스팀 기자 ninano@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