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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

등록 2017-03-01 21:06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언론의 작동은 ‘버전 업된 매트릭스의 논리’로 구성된다. 언론의 작동은 (의견의) 불일치와 (기자들이 겪는) 우연성을 바탕으로 (뉴스룸의) 창의적 노력에 의해 이뤄진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친애하는 언론학자 홍성일 형의 말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언제나 완전할 수 없기에 언론의 논리는 대체로 불완전하다. 오늘도 마감에 괴로운 어떤 기자들이 반복적으로 그 과정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할 뿐이다.

‘완전한 언론’이란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히틀러 나치 정부의 선전 장관이던 요제프 괴벨스 같은 이다. 극우 주간지 의 창간 편집장이던 그는 언론인 생활 5년 만에 히틀러의 앞잡이가 됐다. 언론은 언제나 완전해야 한다고, 완전성으로 국가에 복무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아직까지도 언론의 흑역사를 짚을 때 그가 꼭 불려나오는 걸 보면 꽤 탁월한(!) 생각이었던 셈이다.

괴벨스는 특정 언론을 ‘좌파’로 분류해 폐간시키거나 심의기구를 활용해 통합해버렸다. 그러곤 전 국민에게 라디오를 한 대씩 나눠주었다. ‘괴벨스의 주둥이’라고 불린 그 라디오는 ‘위대한 독일의 혼’ 따위를 일방적으로 설파했다. 다른 신호는 수신되지 않았다. 언론을 정치권력의 선동 장치로 전락시킨 괴벨스의 수작은 당시 ‘혁명 과업’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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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가 MBC의 새로운 사장으로 김장겸 MBC 보도본부장을 낙점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MBC가 지금의 위상이 되기까지 그가 사내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길게 설명하진 않겠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건 딱 두 가지면 충분하다. 보도국장이던 2013년, 그는 취재차 방문한 기자를 ‘현주소건물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도 안 된 2014년 5월에는 편집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보고를 받던 도중 세월호 유가족을 지칭해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라고 말했다.

취재 온 기자를 고발하고, 유가족을 깡패에 견줬던 그의 내정에 언론계 안팎에서는 ‘수구 세력의 마지막 저항기지가 구축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알박기’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내정 직후 김장겸은 “나라가 혼란한 어려운 시기에 MBC를 흔들려는 세력이 많은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란 짤막한 포부를 밝혔다.

비슷한 시각 MBC 사옥 밖에서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고 적힌 펼침막을 든 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어떤 MBC 기자, 아나운서들은 그들이 자랑스럽다며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괴벨스의 주둥이’라고 불린 라디오는 언론이 아니었다고 믿는 대다수의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지금의 MBC는 언론이 아니다.

MBC 곁엔 지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MBC는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는 기자와 PD를 죄 쫓아냈다. 2012년 이후 해고자만 10명이고, 현장을 잃은 언론인이 무려 109명에 이른다. 행여 우연이 찾아올까 또박또박 시키는 일만 할 시용 기자를 80명 가까이 채용했다. 그사이 신입 기자는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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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한 유일한 창의적 노력은 회사의 ‘DNA를 바꾸겠다’는 것뿐이었는데, 그 노력을 주도한 이가 바로 김장겸 내정자다. 김장겸을 괴벨스라고 할 순 없겠지만, 지금의 MBC 포지션은 그 시절 독일의 극우 매체 과 별반 다르지 않다. 권력에 완전히 복무하는 언론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MBC가 십수 년간 전파해온 정체성인데, 지금 MBC 곁에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고 말하는 이들밖에 남지 않았다. 놀랍게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이들은 자신들이 ‘우파 혁명’을 하고 있다고 떠든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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