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시골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가장 가난한 동네 청년을 뜨겁게 사랑했고, 4남매를 주렁주렁 매달게 됐다. 어머니는 백화점 화장실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큰아들(나의 큰형)이 군대 휴가를 나온 첫날, 청소복 입은 자신을 백화점에서 안아줬다는 얘기를 할 때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물이 고인다.
‘우리의 이야기’와 포개지는 삶
<나는 언제나 술래> 박명균 지음, 헤르츠나인 펴냄, 1만3800원
다섯 가구가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쓰던 시절. 마당에서 시멘트를 발라 타일을 벽에 붙이는 연습을 했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당시엔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근로자를 뽑는 시험 대비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그때 시험장에서 느꼈을 아버지의 마음을 어림잡아 헤아린다. 타일들이 가지런히 붙으면 가족과 오래 떨어질 테고, 타일이 제대로 붙지 않으면 가족과 떨어지진 않으나 생계 수단이 막막해지는 기로.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난 아버지가 사우디에 두 번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세 번 가서 총 40개월을 일했다고 어느 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감당한 삶의 무게를 다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박명균이 쓴 에세이 의 힘은 이러하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내가 자란 시절도 추억하게 된다.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나만 막다른, 지독한 삶을 사는 건 아니야.’
봉제공장을 다닌 저자의 어머니, 사우디에 다녀온 저자의 아버지, 나의 누나가 그랬듯 동생들을 위해 대학을 포기한 저자의 누나,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저자와 그가 만난 이웃의 삶이 어느 한 대목에서 ‘우리의 이야기’와 포개지기 때문이다.
박명균은 과자장수다. 도매상에서 받은 과자를 트럭에 실어 동네 문구점이나 슈퍼에 대준다. 그는 ‘참교육 1세대’로 고등학생운동을 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막노동을 했다. 이제 19년째 과자장수다. 고교 시절 등 세 권의 책을 썼다. 그가 오랜만에 낸 이 책은 골목길에서 만난 인생과 자신이 겪은 일을 65편의 이야기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은 골목길의 부도난 삶을 비춘다. 누군가 지하방에서 겨우 도망치면, 그곳으로 다른 인생이 밀려오는 골목길 순환도 담았다. “누구나 일어나기 싫은 추운 겨울 새벽에 (돈을 벌려고) 벌떡벌떡 일어나는 사람들, 힘에 부쳐 헉헉대는 숨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기록했다. 그는 “가난은 사람의 영혼까지 물어뜯어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웃음과 사랑도 있다.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이유다. 그의 글은 구체적이고, 따뜻하다. 그가 “지금 절실하게 산 사람이 나중에도 절실하게 살게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 부분을 읽을 땐 나의 아버지가 다시 스쳐갔다.
아버지가 사우디에서 사진을 한두 장씩 보낼 때는 몰랐는데 그 사진을 다 모아놓으니 아버지는 늘 과장되게 웃고 있었다. 고단함을 감추려는 웃음이었을 것이다. 모래 폭풍 탓에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 겪기도 했다는 걸 안 건 내가 큰 나중이었다. 이 책은 절실하게 살았던, 지금도 실패하고, 포기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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