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시간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개, 고양이들의 줄초상이 이어지는 계절이다. 얼마 전 말복을 넘겼으니 올여름에도 세 번 대살육의 날이 끝났다. 나는 육식 고양이. 어떤 고양이들은 상추도 뜯어먹고 오이도 씹어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오로지 고기만 먹는다. 오리육포, 닭가슴살, ...2016-08-24 22:05
친구야 무사하니?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계절이 바뀌며 창문을 활짝 열고 지내다보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집 안에 고스란히 내려앉는다. 새소리, 물소리, 풀숲에서 ‘우다다’ 하는 아기 고양이 소리…라면 좋으련만 깡깡, 쇠를 두드리는 공사 소음이 올여름 유난하다. 아파트촌인 이 동네...2016-07-16 17:14
내 이름은 제리내 이름은 제리, 개다. 만세가 늘 ‘제리 형님’이라고 부르는 그 제리다. 만세가 “오늘은 글을 쓸 기분이 아니야”라며 의기소침해져 있어 내가 지면을 대신 메워주기로 했다. 만세가 며칠 전 큰일을 치렀다. 목욕을 했다. 만세에게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2016-06-17 17:14
날 좀 내버려둬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고양이들이 앞발 두 개를 가지런히 접어 가슴팍에 묻고 뒷발도 모아 배 아래 깔고 웅크린 자세를 ‘식빵 굽는다’고 말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꼭 통통하게 잘 구워진 식빵처럼 반듯하기 때문이다. 봄볕이 내리쬐는 따뜻한 베란다나 커튼 뒤 아늑한 ...2016-06-03 10:58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가끔 인간들이 쓰는 물건의 용도가 궁금할 때가 있다. 책이나 TV에서 보여주는 인간들의 일상이 표준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집에 사는 인간들이 물건을 쓰는 방식은 표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게 맞는 걸까. 우선 소파. ...2016-05-13 17:28
보모 고양이의 하루 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2년 전 이맘때, 사냥 나갔다 죽은 줄 알았던 집주인이 작고 보드라운 걸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였다.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 주변을 맴돌며 기웃거렸지만, 애앵~ 울기만 하면 정신이 산란해서 방을 뛰쳐나가곤 했다. 그때 안절부절못...2016-05-01 04:11
내가 냥파고다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격돌이 화제였다. 고양이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외출하는 주인이 라디오를 꼭 켜놓고 나간다. 적막한 빈집에서 우리 심심할까봐 그러는지, 까먹고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흑돌같이 새까만 제리 형님이랑 백돌같이 하얀 나는...2016-03-26 23:08
병원에 가기 싫어요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좀 뚱뚱해서 그렇지 건강 하나만큼은 자부하고 지내왔는데, 얼마 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속이 좀 이상했다. 큰 일을 보고 싶은데 나오지 않고 작은 것을 보려 해도 좀체 불편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2016-03-02 17:42
골목에 대자로 누워보고 싶다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얼마 전 고양이들을 술렁이게 한 뉴스가 있었다. 대만의 첫 여성 총통으로 뽑힌 차이잉원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는 소식이었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가 속한 민진당은 선거를 앞두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기념품 가게를 열고 차이잉원 후보의 캐...2016-01-31 01:48
왕여드름의 어퍼컷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생애 가장 싫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목욕과 병원에 가는 일이라고 하겠다. 목욕은 처음부터 싫었다. 털 안으로 축축하게 젖어오는 그 느낌이 불쾌하고 ‘쏴’ 하고 쏟아지는 물소리가 공포스럽다. 병원에 가는 일을 싫어하기 시작한 것은 두 살...2016-01-01 20:36
태풍이 분다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우리 집에는 태풍 1, 2, 3호가 있다. 덩치가 작은 순서대로 파괴력이 크다. 1호 태풍이 지나간다. 목표가 정해지면 서슴없다. 첫 번째 목표물은 장난감통이었나보다. 힘껏 제 몸집만 한 상자를 거꾸로 들어 안에 든 모든 것을 쏟아버린다. ...2015-11-19 20:57
아 가을인가, 털이 빠지니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가을, 베란다 창에 걸린 하늘 색이 예사롭지 않다. 하늘은 높고 고양이는 살찌는 계절이다. 인간들은 아프며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 서늘한 바람에 몸살을 앓거나 마음 깊이 넣어뒀던 옛 연인의 이름을 충동적으로 떠올리며 가슴앓이를 ...2015-10-16 18:39
엄마는 종견장을 떠났을까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늘 그렇듯 오늘 아침도 부산하다. 잠이 너무 깊어 늘 천지를 개벽할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 집주인1이 허둥지둥 나가고 나면 아기와 집주인2의 두 번째 아침이 시작된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않은 채 냉장고에서 음식을 주섬주섬 꺼내 아기 밥...2015-09-05 16:24
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요!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으악! 체중계에 올라선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체중계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숫자가 근심스럽게 깜박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허구한 날 우리에게 한입의 아량도 베풀지 않고 치맥을 뜯어라 마셔라 하더니. 그렇게 혀를 차고 있는데, 주인이 소리친...2015-08-14 15:38
인형이 되련다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지금부터 호흡을 멈추어야 한다. 내 옆에 널려 있는 인형들과 나는 같은 존재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그의 손아귀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커튼 자락이 내 맘을 흔든다. 창가에 누워 일렁이는 커튼 끝을 붙잡으며 놀고 싶...2015-07-24 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