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우물물을 길어올려 갈증을 적시는 두레박. 문학의 두레박. 진실을 길어올려 세상을 적시는 두레박. 문학의 두레박은 네 귀퉁이가 모여야 온전해진다. 예술, 역사, 정치, 그리고 고독. 예술에만 탐닉한 문학은 허무맹랑으로 추락하고, 역사의식 없는 문학은 진공에 갇히고, 정치를 외면한 문학은 골방의 요설로 부패한다. 그리고 고독 없는 문학은 술자리 수다와 분별되지 못한다. 예술·역사·정치가 고독과 만나 빚는 ‘언어의 연금술’. 문학의 두레박은 깊이 침잠해 그것을 건져올린다. 세상을 적시는 문학은 그렇게 깊은 절망과 사유, 고독에서 길어올린 진실의 언어여야 한다. 문학의 꿈이다.
소년이 있다. 1960년대 말. 서울 명동의 한 건물 꼭대기. 오퍼상 직원 아버지는 회사 옥탑방에서 어머니와 신혼살림을 차렸다. 주택이라곤 없고 온통 상가와 회사뿐인 곳. 초등학생 소년은 동네에 친구가 없다. 방과후 소년은 계몽사판 세계문학전집을 책장이 닳을 때까지 보았다. “왜 문학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무언가 유폐된 삶 같았다.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낭만주의적 심성이 명동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길러진 것 아닌가 생각한다.” 소년은 올해 등단 30년차 문학비평가 권성우(53·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다.
6월29일 숙명여대 근처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최근 여섯 번째 비평집을 냈다. (소명출판 펴냄).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가 미리 보낸 질문지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질문은 이런 식이었다. “고독. 문학과 고독. 고독은 어떻게 문학에 승화되는가. ‘뿌리 깊은 고뇌’ ‘바다에 띄워진 유리병 통신’.”
<font color="#006699"><font size="4">고독, 시대를 견디는 단단한 힘</font></font>권 교수는 말했다. “숙명적으로 비평은 고독한 글쓰기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소신껏 비평할 수 있다. 출판사에 소속된 비평가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지난해 신경숙 문학권력 논란도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비평이 많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예지나 에콜(Ecole·학파)에 소속된 것이 아니니까 고독하다. 원고 청탁도 별로 없다. 쓸쓸할 때가 있다. 그걸 견뎌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책에서 그는 임화(1908~1953)를 강조했다. 임화는 일제강점기 비평가이자 문학사가·시인이었다. “훌륭한 철학처럼, 훌륭한 예술처럼, 모든 것에서 떼어놓아도 능히 독행(獨行)할 수 있는 비평.” 임화는 독자적인 비평이 창조적인 비평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권 교수는 임화가 청년 시절부터 고독·적멸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서기장이어서 조직 속에 있었는데도 왜 깊은 고독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천황주의자로 상당히 많이 전향했다. 그런 시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고독을 견디는 마음의 강단이 필요하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의미 깊은 예술가·사상가들의 궤적을 살펴보면 깊은 고독과 마주했던 분이 많다.”
문학 바깥 현실에서도 권 교수는 고독의 가치·의미를 이렇게 찾았다. “한국 사회 현실을 생각하면 워낙 난마 같은 문제가 많다. 최근 화두 중 하나가 진보 진영의 한계에 대한 지적들이다. 내 동기 중에도 학생운동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새누리당 가기도 했다. 386세대의 변절. 깊은 허무를 발견하게 됐다. 쉽게 집단이나 이념에 기대기보다 나름대로 주체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자 생각했다.”
<font color="#006699"><font size="4">스스로 슬픔·상처가 되는 문학</font></font>재작년 가을 어머니를 떠나보낸 권 교수의 실존도 고독을 더 깊이 사유하게 만들었다. ‘밤하늘의 별’이 된 어머니, 그의 어머니 사랑은 곡진하다. 그는 책 서문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적었다. “어머님이 많이 그립다.” 유년 시절 그 명동 옥탑방을 그는 최근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권 교수의 내면, ‘문학의 뿌리’는 거기에 닿아 있다. 어머니뿐 아니라 인간, 세상에 대한 곡진한 마음이 핍진한 문학을 낳는다. 고독은 그의 문학적 체력이다. 비평가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도 그의 이런 문장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깊은 고독 속에서 시대를 견디는 단단한 힘이 싹트리라.”
‘문학판’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스스로 망명한 권 교수가 고독에서 길어올린 참된 문학, 그 정체는 무엇인가. 시인 백석이 말한 ‘굳고 정한 갈매나무’ 같은 것 아닐까. 그 갈매나무는 역사의식을 먹고 자란다.
“스스로 상처가 되는 문학은 마치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이제 빼앗길 것이 없다. 그 자체가 그대로 존재의 근원이자 본질이므로. 그러나 문학이 세상과 맞서 스스로 곡진한 슬픔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문학을 배태한 사회의 그늘과 주름, 역사적 굴곡과 윤리적 지평, 타인의 상처와 절망을 투시해야 한다. 스스로 슬픔이 되어, 상처가 되어 세상과 대면하는 문학은 곧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문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에 문학은 자본·제도·언론·국가 따위에서 자유로움을 본질로 삼는다. 비평가로서 그가 독자에게 이런 작가들을 추천하는 이유다. 만주로 떠났던 시인 백석의 마음, 작가 조세희의 오랜 침묵, 박영근 시인의 가난과 죽음, 소설가 이청준의 문학정신…. 그는 이들을 “스스로 슬픔이 되어 이 세계와 정면 대결한” 작가로 평가했다.
권 교수는 타인의 상처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현실도 지적했다. 상상력이 부재한 시대라는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융통성도 없다. 지나치게 적대적인 사회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보는 상상력이 부재한 사회다. 타자의 상처에 대한 공감이 부재한 것 아닌가. 문학은 그 어떤 예술보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타자의 상처에 곡진한 공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학이 세상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문학작품은 100% 공감 못해도 상처와 슬픔을 이해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이 대목에서 권 교수는 대하소설 (전 12권·보고사 펴냄·2015)를 말했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91)이 20년 넘는 시간에 걸쳐 원고지 2만2천 장에 담아낸 작품이다. 제주 4·3 사건을 총체적으로 다룬 기념비적 소설이라는 게 권 교수의 평가다. “는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가 해당 소재를 둘러싼 정치적 힘(호소력)과 비례관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4·3 항쟁의 동조자이면서 비판자 역할을 하는 주인공 이방근의 복합적 심리는 이 소설을 이끄는 엔진이다.
<font color="#006699"><font size="4">자본·제도·언론·국가와 거리를 두는 것</font></font>앞선 비평집 (소명출판 펴냄·2008)에서도 알 수 있는바, 권 교수는 ‘망명의 상상력’을 줄곧 강조해왔다. 그가 말하는 망명은 공간 자체를 옮기는 것뿐 아니라 ‘내적 망명’까지 아우른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옮겨간 시선.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 주변에서는 보인다.
그는 말했다. “김사량·김태준 등 몇몇 작가 외에 식민지 시대 망명문학이 없었다는 게 우리 문학의 한계, 결핍이다. 이걸 정확히 응시하는 게 우리 문학의 갱신을 위해서 필요하다. 외국으로 쫓겨난 이들인 디아스포라가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주류적 입장과 거리를 두면서, 중심이 보지 못한 다양한 문제를 첨예하게 인식할 수 있다. 미셸 푸코도 말했다. 권력은 무의식적으로 습속화되는 문제가 있다고. 결국 (중심·주류와) 거리를 가진 사람, 지적인 망명자만이 인식할 수 있는 자세와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는 망명지가 아니고서는 발표될 수 없었던 작품이다. 최인훈의 가 보여준 문제의식이 그것이다.”
주류와 일정한 ‘사이와 거리’를 견지하는 것. 그것이 비평가·지식인의 자세라고 권 교수는 본다. 이런 관점에 서면 사회 현실과 문학권력, 문학의 상품화 등 비판이 필요한 지점에서 독립적·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는 “‘문학과 정치’는 이 시대 평단의 가장 핵심적인 비평적 의제”라고 단언한다.
“지금은 1980년대처럼 뚜렷한 하나의 점만 있는 시대가 아니다. 자본의 침투가 교묘하게 일상을 옥죄고 있다. 비판과 저항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최근 에서 본 임헌영 선생님 발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제1115호 <font color="#C21A1A">‘뒷짐 지고 관조? 문학 아니다’</font>). 내 식으로 말하면, 지금 이 시대 문학이 과연 비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내고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현실을 비판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학의 기능은 없어질 수 없다. 이 시대의 문제·모순은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 지금은 문학 자체가 너무 쇄말화(매우 작거나, 본질에서 벗어나 하찮게 돼버림)된 것 아닌가.”
<font color="#006699"><font size="4">망명의 사유, 최인훈·김석범·서경식</font></font>그는 문학의 상품화, 문단권력에 대해서도 여전히 비판적 견해를 유지한다. 지난해 ‘표절 작가’로 지목된 신경숙을 옹호하는 글을 쓴 남편 남진우를 두고 권 교수는 어설픈 타협과 미봉책으로는 갱신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2008년 촛불시위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획을 문예지에 내보내면서, 한쪽으로는 종편 방송 지분에 참여한 것도 그는 비판했다. 상업주의 은폐 전략 아니냐는 것이다. 책에서 그는 시인 김수영의 말을 인용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권 교수가 말하는 좋은 문학작품이란 지성과 역사의식이 스며 있으면서 깊은 예술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작품이다. 그 예로 그는 최인훈, 김석범, 서경식을 꼽았다. 그리고 비평의 역할로는 균형감각의 회복을 주문했다.
“해석과 해설 위주 비평이 득세하고 있다. 섬세한 공감의 비평도 필요하지만 엄정한 평가와 비판도 필요하다. 최고의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비평가가 엄밀하게 구별해줘야 한다. 칭찬하더라도 평가에 차이를 둬야 한다. 발터 베냐민의 말이 전부 옳은 건 아니지만, 칭찬을 남발하는 건 ‘백지수표’와 같다. 책 뒤 추천사나 해설을 보면 엄청난 작품일 것 같은데 읽어보면 아닌 경우가 많다. 독자들도 계속 속으면 결국 신뢰 안 하게 된다.”
따뜻한 쓸쓸함. 권 교수의 이번 비평집에 흐르는 정서다. 그는 스스로 고독한 길, ‘낭만적 망명’을 선택했다. 그 길에서 그는 “깊은 비관과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희망은 연대다. 권 교수는 이미 연대의 비평전문지 이름을 상상해두었다. .
문학이 고독을 말할 때, 문학은 악수를 꿈꾼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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