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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만도 못한

돼지우리에서 삶의 순결·숭고 보내는 사진집 <꿀젖잠>
등록 2016-07-01 15:58 수정 2020-05-03 04:28

구약성경에서 젖과 꿀은 약속의 땅에 흐른다. 광야를 지나야 당도할 수 있는 가나안이 거기다. 광야(현세)에서 가나안(내세)으로 가려면 요단강(죽음)을 건너야 한다. 여기, 젖과 ‘꿀’(oink·돼지가 내는 소리)이 흐르는 땅도 있다. 하루살이, 소금물에 뜬 나비 등 동물에게서 생명의 의미를 구하는 작업을 해온 사진가 박찬원이 오직 죽으려고 태어나는, 인간의 식량이 되기 위해 나자마자 죽기 바쁜 돼지의 삶을 담아낸 사진책 (고려원북스 펴냄)가 거기다.

지은이는 100일 동안 돼지우리에서 생활하며 돼지의 출산, 탄생, 짧은 성장기를 기록했다. 꿀, 젖, 잠, 봄 4개 챕터로 이뤄졌다. 먹고 싸고 자는 일상이 돼지의 일생이다. 개와 고양이처럼 반려동물이 되기도 어렵고, 소나 말처럼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암퇘지는 한번에 새끼 12~16마리를 낳을 수 있는데 1년에 2.5회 임신을 한다. 돼지의 자연수명은 약 12년이나 보통 태어난 지 6개월 정도면 도살장에서 죽는다. 이렇게 “현생만 생각하면 돼지처럼 비참한 동물이 없다. 그러나 내생과 연결하면 돼지의 삶의 의미는 달라진다. 돼지의 삶은 희생이다.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해 인간의 삶을 도와준다. 돼지는 죽은 다음에야 가치를 발휘하고 인정받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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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젖 둥지’ ‘젖 동굴’ 이미지로 어미의 수유 장면을 표현했다. ‘젖통’이 아니다. 새끼들은 어미 가슴에서 먹고, 숨고, 잔다. 젖가슴을 위에 두고 카메라를 바닥에 놓아 찍은 구도는 젖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생명수”라는 작가의 인식을 보여준다. 돼지는 어미도 새끼도 그렇게 계속 잔다. 몸무게는 자는 동안 확 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돼지의 수면 장면을 찍으면서 “현생만이 아니라 전생, 내생을 이어 삶을 보게” 됐다고 썼다. 잠은 그리스신화에서 ‘작은 죽음’을 뜻한다. 잠의 신 히프노스의 형이 죽음의 신 타나토스다. 잠은 삶과 죽음이 섞인 영역인데, 삶에 죽음이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생명체, 죽음을 향해 직진하는 존재의 수면을 바라볼 때 전생과 현생, 내생을 넘나드는 잠이란 신비는 더 선명해진다. 서양 문명의 양대 원류인 헤브라이즘(신 중심 기독교문화)과 헬레니즘(인간 중심 그리스문화)의 반성이 문화인류학이었다. 현장으로 들어간 다음 현상을 발견하는 인류학의 방법론을 따르는 박찬원 사진학은 “현생이 전부인 듯 살고 있는” ‘돼지만도 못한’ 인간을 반성시킨다. “돼지는 가장 고귀하게 살고 떠나는 것이다. 돼지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삶은 어떤가.”

사진은 감상자에게 의미를 ‘보내는’ 예술이다. 질문을 할 때도 질문을 ‘던지지’ 않고 말을 걸 때도 말을 ‘뱉지’ 않는다. 사진이 곡진하고 다감하다면 그것이 무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꽉 찬 현재’라는 단 하나의 시제를 가졌다. 좋은 사진일수록 가득 차 있는 지금을 보여준다. 사진 속 사물은 죽지 않고, 배경에 충실히 녹아든 카멜레온처럼 장면 전체에 흡수된 채 산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봄’(보다, see)이다. 생명의 신호음을 꿀꿀 보내고, 젖을 물리고 빨고, 생과 사를 섞을 때 가장 많이 성장하는 돼지가 눈을 뜨고 정면을 보는 모습이 사진에 살고 있다. 돼지가 우리를 본다. 반성이 우리를 본다.

석진희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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