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급 질문은 늘 그렇게 왔던 것 같다. 아침 회의를 가야 하는데, 녀석(6살 큰아들)이 유난히 협조적이지 않던 날. 급한 맘에 하루쯤 드라이 같은 건 생략해버릴까 고민하던 찰나, 녀석이 고뇌하는 얼굴로 물었다. “아빠, 근데 타이거즈는 왜 그렇게 야구를 못해?” 뭐랄까.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렇다. 반드시 와야 할 것은 끝내 오게 되어 있다. 어리석음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인간의 마음만 그 순간이 결국 올 것임을 알면서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애써 예비하지 않을 뿐.
“글쎄.” 얼버무림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걸 모른다. 그리고 그걸 내가 왜 모르는지도 정말 모른다. 생의 상당 시간을 타이거즈를 탐구하고 분석하고 비난하는 데 할애했으면서도 나는 정작 그걸 모른다. 아니 정면으로 알 생각을 하지 않아왔다.
녀석은 아직 한글을 모르지만, 엠블럼으로 먼저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정체를 파악해버렸다. 그리고 이젠 엠블럼 없는 자막도 모양만으로 읽어내 팀을 알아차린다. 글은 읽히는 게 아니었다. 그림으로 인지되는 거였다. 암튼, ‘다이노’가 좋아 공룡이 편이라던 녀석은 야구에 이기고 지는 분명한 희비가 있단 걸 알게 된 이후 그날그날 이기는 팀을 좋아하게 됐다. 호랑이가 좋다 하고, 비룡(녀석의 표현으론 ‘드래곤’)이 좋다가, 가끔 독수리가 좋아지고 그랬다. 레이스가 워낙 길다보니 그것마저 귀찮으면 피를 나눈 ‘의리’로 그냥 시큰둥하게 호랑이가 좋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하고 올바른 5살은 지나가버렸다. 6살을 맞이하여, 녀석은 비로소 ‘1위 팀’을 확고부동하게 인지하게 됐다. 바야흐로 두산 베어스, 곰의 창궐이다.(녀석의 모친은 두산과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쌍둥이 편이다.) 라이온즈가 주춤하고 예상 밖으로 영웅들이 선전하는 사이, 올 시즌 곰의 1위 질주는 흔들림 없는 편안함 그 자체다. 녀석은 ‘지지 않는’ 곰의 강건함에 가히 매료됐다. 60번대에 자리잡은 어린이 채널보다 70번대에 자리잡은 스포츠 채널에 더 ‘집착’하게 됐고, ‘에슬론또봇’ 하는 시간은 몰라도 평일 야구가 6시30분에 시작한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마침내 다가온 순간의 충격에서 조금은 정신을 차린 그날 저녁, 녀석에게 타이거즈를 말해주었다. 그날은 하필이면 여전히 시린 5월18일이었다. 그러니까 아빠가 너만 했을 때, 그때 타이거즈는 말이지. 말하자면, 음… 왕국, 그래 왕국이었어.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런 나라. 타자들은 용맹하고, 투수들은 탄탄해서 하루도 불안한 적이 없었어. ‘코끼리’라고 불리는 임금은 강력했고, ‘폭격기’라고 불리던 철벽도 있었지. 바람의 신이 내려 보내준 ‘아들’도 있었어. 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처럼 빛났어. 아빠는 검은 바지에 빨간 유니폼만 보면 너무 기뻐서, 청룡이 그려진 잠바를 입고 다니던 애들을 막 무시하곤 했어. 아빠도 그땐 매일 이겼어. 아무리 지고 있더라도 우리 팀이 이길 것만 같았어. 네가 지금 아무리 곰을 좋아한들 아빠의 타이거즈 시절, 아빠가 가졌던 그 마음을 가질 순 없을 거야. 이제 그런 야구는, 호시절은 돌아오지 않아.
그날, 나의 타이거즈는 그 시린 날이 무색하게 곰에게 ‘5:15’로 패배했다. 곰은 1회와 4회를 제외한 매 이닝 점수를 내며, 18안타를 몰아쳤다. 그날 이후 곰은 4연승을 달리고 한 번 지고, 6연승을 하다가 한 번 지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나의 타이거즈는 5할 승률을 하루인가 달성하곤 줄곧 7~8위를 맴돌고 있다. 녀석은 이제 타이거즈를 ‘칠득이’라고 부른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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