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펀치 스리 솔루션. 복싱체육관 입간판에 그리 적혀 있었다. 스리 솔루션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마른 근육형 체형이다. 지난 5년간 ‘내 인생의 운동’이라 찬양하며 즐겨온 것은 수영이었다. 온몸을 시원하게 감싸는 물, 중력을 잊게 만드는 부력감 그리고 물살을 가르며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속도. 수영은 그동안 훌륭한 친구였다. 단점이 있다면 운동을 게을리하면 금방 군살이 붙는다는 것이었다. 칼로리 소모가 큰 운동인 만큼 안 움직이면 바로 태가 달라졌다. 게다가 몇 년째 실력이 늘지도 줄지도 않아 시들해져 있던 터였다. ‘그래, 더 강한 운동이 필요해!’
처음 ‘복싱 바람’을 넣은 건 같은 팀에서 일하는 선배였다. 다이어트도 하고, 체력도 길러보자며 솔솔 바람을 넣었다. 팔랑거리는 귀에 꽂힌 솔깃한 꼬드김이 있었으니, 점심시간을 이용하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덜할 거라는 말이었다. 또 아무개 선배가 복싱으로 10kg을 감량했다는 말은 마음을 본격적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 복싱장을 찾았다. “운동 목적이 어떻게 되세요?” “다이어트요.” 대뜸 대답하고 나서는 바로 후회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체중감량이오.” 계체량을 맞추는 파이터의 자세로 임하리라. 글러브는 민트색, 맨손에 감는 붕대는 터키옥색을 택했다. 복싱 하면 시뻘건 글러브에 누리끼리한 붕대만 떠올렸는데, 의외로 초보자를 위한 장비들은 예쁘장했다. 새 장비를 받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손에 붕대를 감는 법부터 배웠다. 손목에 서너 번, 손바닥으로 내려와서 다시 서너 번, 손가락 사이사이를 통과하며 꼼꼼히 감아주는 것이다. 관장님이 내 왼손에 붕대를 감아주며 시범을 보였다. 오른손은 직접 감아보기로 했다. 막상 4m 길이의 붕대가 손목에 걸리자 머리가 멍해졌다. 감는 순서가 어찌나 헷갈리던지 머리 나쁜 것 티 날까 두려워 대충 둘둘 감기는 했는데, 다음날 다시 하라고 하면 멘붕이 올 것 같았다.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됐다. 시작은 역시 줄넘기. 타이머가 3분에 맞춰졌다. 줄넘기 3분을 뛰고 30초를 쉬는 것이다. 그것을 세 차례 반복하기로 했다. 3분, 컵라면이 끓는 시간 혹은 인스턴트 카레가 조리되는 시간. 멍하니 기다리기엔 길게 느껴질지 몰라도 일상에서의 3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점프를 하자니 3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줄넘기 3세트를 마치자 어느새 입안이 말라 입술 주변이 허옇게 변했다. 이건 굴욕이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고작 10분 만에 이렇게 구슬땀을 흘릴 줄이야. 종아리가 땅기는 건 물론이거니와 평소 의식해본 적 없는 평발의 아치가 뻐근해져왔다.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에서 나올 땐, 후들거리는 다리 탓에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영화 에서 그랬다. ‘31살이 된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싱선수를 꿈꾸어도 안 된다.’ 내 나이의 앞자리도 3이어서인 걸까, 아니면 복싱의 한 라운드가 3분이기 때문인 걸까. 혹은 줄넘기를 3세트 뛰어서일까. ‘3’이라는 숫자가 무척 중요하면서도 사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줄넘기를 싫어해도 복싱과 친해질 수 있을까. 어쩐지 원 솔루션을 찾으려다 스리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김지숙 디지털부문 기자 suoop@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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