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장난이 아니야. 10분 정도면 끝나는데, 온 힘을 다해야 돼. 얼핏 쉽고 단순해 보여도 정말 힘든 운동이라고. 코치의 역할이 엄청 중요해.”
처음으로 집에서 크로스핏을 했다. 운동 경과 시간을 재고 알려줄 코치가 필요했다. 아내를 일일 코치로 임명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야.’ 그에게 한 말은 스스로에게 건 주문이기도 했다. 전날, 집에서의 첫 크로스핏을 지친 몸을 핑계로 포기한 터였다. 이날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마음먹었다. 6월16일 밤 11시, 집 거실에서 새 운동화를 신고 매트 위에 섰다.
‘진짜 코치’ 김완 디지털팀장이 정해준 와드(Workout of the Day·하루치 운동 종목)는 간단했다. ‘버피 100회’. 쉽게 말해, 엎드렸다가 일어나기 100번이다. 방법은 이렇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꼿꼿이 선다. 두 손으로 양발 30cm 정도 앞을 짚고 양발을 뒤로 차듯 엎드려뻗치기를 한다. 가슴, 웬만하면 이마도 바닥에 대고 반대 순서로 다시 일어선다. 이게 버피 1회다. 100회를 해야 한다. 김완 팀장은 제한시간을 9분으로 정했다. 신체능력 좋은 성인 남성은 제한시간을 보통 7분30초로 정한다. “살 빼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어. 한 달간 매일 하면 5kg은 빠질걸?” 김완 팀장이 자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스톱워치를 켠 아내가 외쳤다. “시작!” 버피 10회를 하고 나서 직감했다. 난 이미 지쳤다는 걸. 어느새 자세는 흐트러졌다. 꾸역꾸역 무릎을 대고 엎드렸다가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1분이 지났고, 15회를 돌파했다. 선수가 지칠수록 코치는 신이 났다. 아내는 예상보다 빨리 코치 역할에 적응했다. “더, 더, 더!” 아직 5분이나 남았는데 ‘더더더’를 외쳤다. 지난 연재 기사를 보고 김완 팀장의 말을 배운 것이다. 김 팀장이 외치곤 했던 ‘조금만 더, 하나만 더’를 극단적으로 응용한 어법이었다. 아내는 틈만 나면 ‘더더더’를 외쳤다. 그 말을 들으며 엎드려뻗치기를 하는 내 몸은 점점 지쳤고 느려졌다. 한밤중 아내에게 이유 없이 기합받는 기분이 들어 문득 억울했다.
이건 전신운동이었다. 어깨와 허벅지가 당기기 시작했다. 팔로 몸을 밀어올려야 했고, 다리로 버텨 일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9분. 기록은 75회. 아직 25회가 더 남았다. 100회를 완성할 때까지 총 12분44초가 걸렸다. 목표시간에서 3분44초를 초과했다. 아쉬워하기엔 너무 힘들 뿐이었다. 숨은 가쁘고 땀은 비 오듯 매트 위로 뚝뚝 떨어졌다. 흘러내리는 땀이 자꾸 오른쪽 콧구멍으로 들어가려 해서 왠지 모를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런 운동에 산소 부족 때문인지 머리마저 지끈지끈 아팠다.
크로스핏을 하는 이들은 버피를 ‘악마의 운동’이라 부른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짧고 단순한 반복운동은 그 악마성을 극대화한다. 이 운동은 미국 생리학자 로열 버피가 1940년 응용생리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버피 테스트’란 이름으로 처음 고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이 신병들의 체력평가법으로 이 운동을 활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미 교도소 죄수들의 체력운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간수가 죄수에게 이 운동을 권할 때는 교화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한번 엎어지기 시작하면 관성적으로 계속 엎어진다는 사실을, 한번 엎어지면 일어서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느껴보라.’ 제 몸뚱이 하나 일으켜 세우는 일조차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현실감각, 이마를 바닥에 100번 대본 뒤 얻은 깨달음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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