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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쟁이’ 복서의 금요일

스파링 3라운드, 서킷 복싱 1세트 하고 나니 흥건한 티셔츠, 봉두난발, 만신창이 된 ‘불금’
등록 2016-07-16 17:21 수정 2020-05-03 04:28
금요일의 스파링,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김지숙 기자

금요일의 스파링,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김지숙 기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잊고 있었다. 여름이 땀의 계절이란 사실을. 애초에 수영을 좋아했던 이유도 다시 떠올랐다. 물속에선 연신 땀 닦을 필요가 없어서 편리했음을. 복싱장에는 땀을 많이 흘리기로 유명한 이들이 있다고 했다. 나의 첫 스파링 상대이자 복싱장 에이스 ‘아현동 핵주먹’, 과묵하지만 늘 열정적으로 샌드백을 치는 닉네임 ‘광고쟁이’님. 그리고 다름 아닌 나다. “땀 엄청 흘리는구나, 복싱장 3대 땀쟁이에 들겠는데?” 그렇게 핵주먹 언니의 인정을 받아 ‘땀쟁이’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7월1일. 복싱장의 금요일은 그야말로 ‘불금’이었다. 피와 살이 불타는 금요일이랄까. 매일 운동하는 것도 아니면서 금요일쯤 되면 꾀가 나고 게을러진다. 피곤하다는 핑계도 가능하고, 주중 며칠이나마 출석했으니 느슨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도 비슷했다. ‘운동하기 싫다’는 타령을 세 곡조쯤 뽑고 간신히 줄넘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대충 줄넘기나 하고 샌드백 좀 치다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생각을 귀신같이 읽어낸 이가 있었으니.

“줄넘기 마치고 스파링 한번 하시죠. 얼른 몸 푸세요.” 관장님의 말과 함께 링 위에선 다른 회원들의 스파링이 시작됐다. 각자 운동하던 사람들이 링 주위로 모여들었다. 스파링이 진행되는 중에 다음 순서로 링에 오를 사람이 정해지고 잇따라 서너 라운드가 더 이어졌다. 드디어 내 차례, 2라운드씩 두 명을 상대하기로 했다. 세 번째 라운드에서 공이 울리기 몇 초 전 보디샷을 제대로 맞았다. 그대로 네 번째 라운드는 포기하기로 했다. 간신히 3라운드를 뛰고 나니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땀이 흥건한 헤드기어를 벗자, 머리를 묶은 끈도 어느새 풀려 봉두난발이 되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엔 ‘서킷 복싱’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도 높은 유산소와 근력을 섞어 쉬는 시간 없이 운동하는 서킷트레이닝(Circuit Training)에 복싱 기본 동작을 접목한 것이다. 20초 동안 샌드백을 치다가 휴식 없이 10초간 근력 운동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관장님의 시작 구령에 맞춰 원투 펀치 20초, 점프 스쿼트 10초부터 시작됐다. “다음은 훅 훅! 더 세게, 더 빨리. 쉬지 말고 바로 버피!” 30초간 전력을 다하고 헉헉대고 있을 때 다음 동작 주문이 이어졌다. 한 10초나 될까? 이어질 운동의 시범을 보이는 그 순간은 잠시 쉴 수 있었다. 꿀 같은 시간은 광속으로 지나가고,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쯤 죽음의 순환(서킷)은 다시 시작됐다. 30초 5개 동작이 한 세트였다. 보통 3세트를 한다던데, 1세트를 마치고는 나가떨어졌다.

혹시 금요일은 원래 ‘빡세게’ 시키는 날인가요? 분명, 아니라고 했다. 이상하다. 금요일만 되면 스파링을 하는 것은 그냥 ‘느낌적인 느낌’인 건가. 땀에 젖은 티셔츠가 등판에 쩍쩍 달라붙었다. 땀이 너무 많다고 투덜댔더니, 핵주먹 언니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난 벌써 티셔츠 한 번 갈아입었는데….” 고수다. 웃긴 건, 복싱장 3대 땀쟁이에 든 이날 ‘불금’이 싫지만은 않았다는 거.

김지숙 디지털부문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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