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빨리 쫓아가야 하는데 도무지 달려지지 않는 꿈을 자주 꿨다. 어떤 심리적 압박 때문이었을까. 꿈은 현실이 되었다. 달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숨이 가쁜 것쯤은 참을 수 있지만 달릴수록 선명해지는 뱃살과 양 허릿살의 느낌은 참을 수 없었다.
3월22일. 하루치 운동 종목을 뜻하는 ‘와드’(WOD·Workout Of the Day)에 달리기를 넣었다. ‘왕복 1.6km 달리기→윗몸일으키기 50개→바닥에 엎드려서 양손 허리에 놓고 상체 들어올리기 50개→왕복 800m 달리기’. 주택가 골목길을 달린다. ‘이렇게 간편한 운동이라니.’ 앞장서 쫄래쫄래 달려가는 튼튼한 김완 디지털팀장을 따라 달렸다.
그와의 거리가 10m 넘게 벌어질 무렵 20년 전 환상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축구할 때 더 빠른 돌파를 하겠답시고 전력질주를 연습할 때였다. 숨이 차고 폐의 통증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통증이 쾌감으로 변하는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요샌 이런 감각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르는데 그땐 체육 교과서에 나온 ‘세컨드 윈드’를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하다가 가장 괴롭고 힘든 시점이 지나면 오히려 고통이 누그러지고 에너지가 샘솟는 단계. 그런 기분을 만끽하며 폐가 시릴 때까지 달리고 나면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이게 바로 한계를 뛰어넘은 자의 기분인가’ 하면서 말이다.
20년 만에 세컨드 윈드를 다시 느껴보나 조심스레 기대하며 꾸역꾸역 끝까지 달렸다. 김완 팀장과는 이미 100m 정도 차이가 벌어졌고, 술래잡기하는 아이들처럼 전봇대에 손을 찍고 다시 체육관을 향해 달렸다.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윗몸일으키기와 상체들어올리기를 50개씩 했다. 다시 어느 프랜차이즈 빵집 앞까지 왕복 800m를 달렸다. 땀을 뻘뻘 흘렸고, 운동량에 견줘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머리가 아팠다. 목마른 사람처럼 산소를 찾아 밖으로 나갔고, 허리를 숙이고 한참을 헐떡였다. 바람도, 세컨드 윈드도 불지 않았다.
김완 팀장은 크로스핏을 ‘돈 내고 기합 받기’라고 정의한다. 격하게 동의하곤 했는데 조금 근사한 운동도 있다. 3월31일 와드에 포함된 배틀로프(battle rope)다. 자동판매기 종이컵 정도 굵은 밧줄을 쇠기둥 밑동에 걸고 양손으로 밧줄을 하나씩 잡는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허리를 펴고 무릎을 조금 굽힌다. 양손에 쥔 밧줄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면서 물결 모양을 만든다. 그 물결이 밧줄을 타고 밀려가 7m 거리의 기둥에까지 닿아야 한다. 양손의 밧줄을 번갈아가며 물결을 만들기도 하는데 초보자는 하기 쉽지 않다.
양손으로 동시에 밧줄을 내리치며 물결을 만들어봤지만 기둥까지 물결이 닿게 하려면 ‘끙끙’ 소리가 절로 났다. 시간이 갈수록 물결은 잦아들었고, 짧아진 물결은 ‘이게 바로 네 한계야’라고 말했으며, 옆에선 누군가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를 쉼없이 외쳤다. 이날 8분간 배틀로프를 하고 바로 이어 8분간 버핏운동(배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살짝 점프)을 했다. 또다시 머리가 아팠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며칠 뒤 이불 먼지를 털러 집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두꺼운 겨울 이불을 양손에 쥐고 섰다. 문득 배틀로프의 원리를 응용해 아름다운 물결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끙!’ 이불은 잘 물결치지 않았다. 들었다 내렸다만 간신히 다섯 번을 반복했다. 바람이라도 불기를 고대하며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