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중계를 볼 때, 흔히 듣는 말 가운데 ‘컨택 능력’이란 게 있다. ‘용규 놀이’로 대변되기도 하는 컨택 능력이란 간단히 말해 공에 방망이를 맞추는 능력이다. 사회인 야구를 처음 하는, 그러나 왕년에 운동 좀 했다고 믿는 아저씨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말 가운데 ‘방망이는 좀 친다’가 있다. 한평생 이가 갈리게 스윙 연습을 해온 엘리트 선수가 방망이에 공을 맞추는 능력을 갖춘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반면 운동 좀 했다고 믿는 이들은 왜 자신의 오랜 공백은 생각지도 않고 공은 맞출 수 있다고 ‘맹신’하는 것일까.
야구는 10번 타석에 섰을 때 3번만 공을 때려내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포츠다. 사회인 야구 레벨로 내려오더라도 최소 5번은 못 때려도 무방한 경기다. 타격은, 말하자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잘하긴 어렵고, 아무렇게나 해도 되지만 아무렇지 않게 해내기는 정말 까다로운 행위다. 써놓고 보니 하나 마나 한 얘기 같지만, 정말로 그렇다.
‘타격 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김용달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이 “언제든 3할을 칠 수 있다”고 평가하는 현역 타자가 있다. LG 트윈스의 박용택 선수다. 박용택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3할 이상을 때려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용택 선수의 타격폼은 일정하지 않다. 시즌 중에도 타격폼을 자주 바꾸고, 심지어 경기 중에도 항상 일정해 보이진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완성된 타격폼’이 존재해야 안정적으로 그리고 일정하게 공을 때려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박용택 선수의 경우엔 그렇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박용택 선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격은 늘 변화하는 과정”이라며 “모든 타자가 다른 골반 형태와 체형을 갖고 있다. 관절 하나하나를 열쇠로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어떤 자세가 더 좋다는 정답은 없다는 얘기다. ‘물 흐르듯’ 전개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 결론은 허무한 듯하지만 날아오는 공 앞에선 각자가 각기의 도생을 알아서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평등주의를 일깨우기도 한다.
사회인 야구 선수들은 타격 훈련 때 너나 할 것 없이 ‘앞무릎 세우기-뒷발 회전-팔꿈치 위치-타격시 시선 처리’ 등 거의 모든 타격 메커니즘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 각각의 문제점을 교정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고 좌절하고, 하나의 문제를 개선하면 다른 문제가 도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곤 한다.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는 김희수 코치(넘버원 베이스볼클럽)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연습은 충분히 하되, 시합에 나가선 맘대로 쳐라.” 하나의 타격 자세가 몸에 익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반복적 스윙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수천 번의 스윙을 통해 몸에 그 자세가 배어 있더라도 날아오는 공을 상대할 땐 사실상 원점이 되고 만다. 충분한 훈련 없이 이상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는 건 애벌레 시절은 싫지만 늘 나비이고 싶은 꿈이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7번씩 실패한다. 사회인 야구는 말할 것도 없다. 충분히 연습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치겠다는 불가능의 꿈일랑 버리고, 한나절 시원하게 휘두르고 가겠다는 리얼리스트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냥 맘껏 휘두르면 된다. 어차피 당신 앞에 있는 투수는 몸 바깥쪽을 요리조리 헤집으며 시속 140km의 공을 뿌려대는 선수가 아니다. 무릎이 무너지건 하체가 좀 빠지건 무슨 상관인가. 한 번의 도전 기회도 갖기 어려운 팍팍한 현실에서 우리에겐 맘껏 도전해볼 수 있는 3번의 찬스가 있다. 휘둘러라, 한 번도 헛스윙 해보지 않은 것처럼.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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