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타수 2안타 1타점 3득점 4도루. 올해 처음 열린 한국기자협회 야구대회 첫 경기 성적표다. 숫자들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뭔가 시원하게 맞지 않는 게임이었다. 3번 모두 출루했는데, 첫 타석에선 1루수와 2루수 사이로 땅볼을 때렸다. 경험 있는 1루수라면 당연히 쫓지 말아야 할 타구였다. 2루수가 안정적으로 잡았다. 하지만 타구를 쫓던 1루수가 그만 발이 꼬여 넘어져버렸다. 잡을 수 없는 타구는 포기해야 한다. 그라운드에 편안히 안착한 1루수를 보며 조깅하듯 누를 밟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사회인 야구에서 종종 나오는 광경이다. 어쩌다 끼는 글러브이다보니 세상의 모든 타구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캐치 호르몬이 분비되는 경우다. 오랜 시행착오와 경험치 끝에 가장 합리적인 위치에 수비수를 세워놓지만 그 선험의 합리성을 내 비루한 신체가 능히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는 ‘아재’들은 언제나 있다.
암튼, 그렇게 살아나가 초구에 2루로 뛰고, 2구에 3루까지 뛰었다. 그날 상대팀 투수는 대단한 배짱의 소유자였다. 주자 따위에 분산 투자할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오로지 타자와만 정면 승부했다. 단 하나의 견제구도 던지지 않았다. 이 역시 사회인 야구에 자주 출몰하는 투수 유형이다. (이후 그 투수는 경기 중 딱 1개의 견제구를 던졌는데 보크 판정을 받았다.)
흥미로운 건 두 번째 타석이었다. 역시 땅볼이었다. 2루수를 통과할 수 있는 깊숙한 위치이긴 했다. 이 타격이 흥미로웠던 건 상대팀 투수가 제구가 좋거나 빠른 공을 던지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변화구를 던졌기 때문이다. 사회인 야구 투수의 우열을 가를 때 몇 가지 잣대를 논하지만, 변화구를 던질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꽤 크다. (물론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기준은 원할 때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지다.) 그 투수는 프로선수 수준으로 말하면 오다가 떨어지는 ‘체인지업’ 성격의 볼이 있었다. 다만, 예측이 가능했다. 직구를 던질 때와 변화구를 던질 때 폼이 확연히 달랐다.
사회인 야구를 하다보면, 상대 투수가 변화구를 던진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는 순간 타격이 안 되는 날이 종종 있다. 야구 경기를 중계하다보면 해설자들이 흔히 말하는 ‘변화구를 칠지 직구를 칠지 노려야 한다’는 얘기가 뇌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 없다. 프로선수들은 뇌 작동을 신체로 구현해내는 능력이 있지만 사회인 야구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타자는 손에 꼽는다.
그래서 직구인지 변화구인지는 결정적 변수가 아니다. 문제는 속도의 궁합이다. 사회인 야구 선수는 자신의 스윙 속도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기량을 갖기 힘들다. 타격 리듬 역시 날아오는 공에 반응해 친다고 보는 것이 맞지, 투수 유형에 따라 유기적으로 밀고 당기긴 어렵다. 그건 감각의 문제이다. 감각은 꾸준한 경기를 통해서만 유지된다. 그래서 느린 폼에서 느리게 날아오는 변화구는 그냥 보고 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건 그냥 느린 볼일 뿐, 스윙 궤적에 오히려 잘 맞는 공일 수 있다.
그렇게 떨어지는 공에 동체시력을 발휘해 방망이를 던지듯 내밀었다. 공은 굴렀고, 2루수가 어렵게 잡아 던졌지만 난 이미 1루에 도착했다. 세 번째 타석에서도 떨어지는 공을 그렇게 잡아당겨 3-유간 깊은 타구로 다시 안타를 기록했다.
이날 결정적인 좌월 2루타를 쳐낸 이완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 떨어지기도 하고 벗어나기도 하는 변화구에 대처하는 게 인생 아닐까. 오늘 잡아당긴 공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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