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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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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가득 낚았네

“마이구리 했다네” 한마디면 구경하려고 우르르… 섬사람들 만선의 전설과 추억
등록 2016-06-11 16:16 수정 2020-05-03 04:28

‘마이구리’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의 뜻이 무언지 전혀 감이 안 올 것이다. 혹시 구리 종류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내가 뭐한다고 산다이에서 광물에 대해 이야기하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장난기 있는 분들은 ‘어쭈구리’나 좀 심하게 ‘씹쭈구리’ 같은 비속어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나는 최근에 마이구리를 했다.

이 발언은 더 헷갈리실 것이다. 도대체 뭘 했다는 거야? 까불지 말고 빨리 말해, 이런 말 들리는 듯하다. 이야기하겠다. 먼저 이 요상한 단어가 인터넷 사전 검색에 뜬다. 마이구리는 만선(滿船)을 이르는 거문도 말이라고. 거문도에서만 쓰는 말이라는 것은 나도 처음 알았다(설마). 그럼 만선은 무슨 뜻인가(이건 아는 분 여럿 계실 것이다). 물고기 따위를 많이 잡아 가득히 실음. 또는 그런 배를 뜻한다.

그러니까 나는 최근에 낚시를 가서 만선했다는 소리이다. 낚시 좋아하는 분이라면 귀가 솔깃할 것이다. 말 그대로 물고기를 배에 가득 싣고 왔다니까. 낚시 가서 재미 좀 봤다, 는 소리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렬한 단어이니까.

만선의 전설은 항구마다 있다. 심지어 어떤 배가 만선으로 돌아오다 그만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는 증언도 내려온다.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고 욕심껏 싣고 왔는데 도중에 파도가 높아 배가 뒤집어져버린 것이다. 배가 잔뜩 내려앉았기 때문에 복원에 실패한 것. 이를테면 선망 배에서는 고등어가 너무 많이 잡히면 그물을 자르기도 한다. 그것을 다 올리면 배가 위험해지니까.

암튼 그 짓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배 동성호는 1.4톤짜리라서 커다란 선망이나 외끌이, 쌍끌이 어선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배이지만 만선한 것은 사실이다. 배에는 물칸이란 게 있다. 갑판 아래 일정 부분을 독립시켜 바닷물이 들어오게 만든 곳으로 낚시에 잡힌 물고기를 넣는 장소이다. 계속 살려두기 위해. 우리 배에는 작은 물칸 두 개가 있다. 거기에 물고기가 가득 찬 것이다. 한 마리 잡아 던져넣으면 풍덩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철푸덕 소리가 났다. 물고기가 가득 차버렸기 때문에.

대상 어종은 참돔. 평균 40센티미터 크기에 마릿수는 대략 삼백 마리 정도. 그걸 사흘 동안 계속 했다. 하루 낚고 나니 팔목 통증이 오고(우린 이것을 낚시 엘보라고 한다) 이틀째 하고 나니 허리가 아팠다. 바늘 두 개를 달고 낚시를 했는데 두 마리가 동시에 물면 왜 물고 지랄이야, 투정을 부렸고 한 마리만 올라오면 아이고 다행이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낚시하는 놈이 물고기가 무는 것을 싫어하는 이 이상한 상황. 사흘째 나갈 때 급기야 내 파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잘 물면 어떡하지?”

다시 한번 낚시 좋아하는 분들, 구미가 사정없이 당기실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낚았다는 거지?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 이어진다(하, 독자의 눈을 계속 붙들어놓기 위한 이 뻔한 꼼수!).

어렸을 적 이야기이다. 마을의 모든 어선은 기상이 나쁘지만 않으면 날마다 조업을 나갔다. 그들이 돌아오면 ‘과연 얼마나 잡았을까’가 주민들의 관심사다. “마이구리 했다네” 누군가가 이 한마디 하면 다들 구경하려고 우르르 몰려갔다. 그때 보았던, 끝도 없이 퍼내리던 물고기들. 갈치가 그랬고 삼치가 그랬고 농어와 도미, 볼락이 그랬다. 어창 안에 마치 물고기 만들어내는 기계가 있는 것 같았다.

돛단배 타고 백도 나가 마이구리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마이구리가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해선 이런 일화가 있다. 내 당숙 한 분이 이십 대 초반 처음으로 선장이 돼서 조업을 나갔다. 서해안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주일 내내 똥강구(마이구리의 반대말이다)만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흑산도 인근에서 물고기 떼를 만났다. 딱 하루 조업해서 잡은 물고기를 흑산도 수협에 넘겼다. 액수는 1100만원.

당시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0만원이었다. 소문을 들은 그 마을 색주가 여인네들이 한복 입고 달려들어 함께 고기를 펐다고도 했고 사흘간 술값을 600만원 썼다는 진술도 있었다. 참, 통들도 컸다. 어쨌든 흔히 통통배라고 불렀던 소구기관 엔진을 사용하고 그물 만드는 방법과 조법이 다양해져서 생겨난 일화이다.

그보다 앞선 시절에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내 할아버지 세대는 거룻배에 돛 하나 달고 노 젓고 다녔다. 거문도에서 2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백도(白島)가 있다. 관광지로 알려졌지만 어장 잘되기로 더 유명한 곳이다. 그곳까지 노 저어가서 낚시를 했는데 워낙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라 웬만하면 마이구리를 해왔다.

내 외할머니 회상에 의하면, 자신의 시아버지도 친구와 둘이서 백도를 자주 다니셨단다. 하루 종일 손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시간. 바람에 맞춰 돛을 조절하면서 친구와 함께 한잔 하신다. 잡아놓은 물고기가 많지만 팔거나 식구들 먹을 용인데다 배에서 먹으려면 손이 많이 가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혹돔이다.

혹돔은 말 그대로 머리에 혹이 달려 있는 물고기이다. 어렸을 때는 옆으로 줄무늬가 있는데 자라면서 없어진다. 30센티미터 넘으면 혹이 조금씩 자라난다. 60~70센티미터 크기의 성어가 되면 혹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 마치 포유류 얼굴 비슷하게 된다. 정면으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물고기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혹돔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야, 사람보다 잘생겼네.”

그 정도로 다 자란 어른 고기는 보기 드물다. 그래서 난 아직도 이런 혹돔은 낚아보지 못했다. 대신 다이빙할 때 두어 번 봤다. 마치 한 지역 장악하고 호령하는 ‘대갈장군’ 모습이었다. 노인들 표현에 의하면 이 크기의 혹돔은 물렸을 때 의외로 힘을 쓰지 않고 순순히 딸려 올라온다고 한다. 그분들이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얼마나 자기 혹을 아끼는지, 혹시 혹 다칠까봐 그렇다는 것.

아무튼 그 할아버지는 친구분과 안주로 이 혹돔의 혹을 깨뜨려 드시곤 했단다. 내용물은 대부분 기름이다. 당시는 기름기 없는 음식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마른 체형이었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돛단배. 고소한 기름덩어리를 안주로 친구와 막소주 한잔씩 하면서 느긋하게 돌아오는 모습. 난 지금 빠른 보트를 타고 낚시를 다니지만 이 풍경만큼은 단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다.

온 동네 사람들 호흡, 응원, 웃음소리

마을에서 하는 마이구리도 있었다. 조냉이 그물이라는 게 있다. 이거 할 때는 마을 전체의 대동놀이판이 되곤 했다. 이 조법은 이렇다. 배 한 척이 기다란 그물을 마을 앞바다에 놓는다. 그리고 주민들이 양쪽 끝에 묶인 밧줄을 땅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물은 낙하산처럼 긴 타원을 그리며 천천히 당겨져 온다. 많은 사람 손이 필요하다보니 초등학생들까지 모두 달려들어 영차, 소리를 지르며 밧줄을 당겼다. 그물이 가까워져올수록 양 끝의 사람들이 가운데로 천천히 움직인다. 그래야 물고기가 도망을 못 간다.

그물에 들었던 것들은 일일이 말할 수 없다. 앞바다에 있던 모든 것이 들어 있었으니까. 생각난 대로 말해보자면 도미, 노래미, 농어, 감성돔, 전갱이, 보리멸, 양태, 도다리, 망상어, 인상어, 갑오징어, 무늬오징어, 돌게, 꽃게…. 이렇게 한정 없다. 다 하고 나면 밧줄에 손을 댄 꼬마들까지 일일이 다 나눠주었다. 나도 몇 번 내 몫을 타가지고 간 적이 있다. 몇 마리 물고기의 아가미를 꿰어 차고 보람찬 하루해를 끝마친 군인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던, 고무신 신은 까까머리 꼬마. 그게 나였다.

그물을 당길 때 주민들의 통일된 호흡, 기운을 북돋는 응원, 웃음소리는 지금도 아련하다. 마이구리의 어원은 잘 모른다. 그저 ‘많다’가 변형된 단어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이다. 조냉이는 알고 있다. 죙이그물에서 온 것으로 ‘조이다’ ‘죄다’가 원형이다.

조냉이는 지금도 간혹 한다. 개인이 지니고 있기에는 너무 큰 그물이라 면사무소에만 있다. 특별한 행사 때 한 번씩 하는데 어른들만 최소 40명이 필요하고 그물 놓아주는 배와 그 배를 다룰 사람도 필요해 여간해서는 하기 쉽지 않다. 이거 한번 하고 나면 말 그대로 마이구리이다.

다시 나의 마이구리로 돌아간다.

40센티미터급이면 1킬로그램이 넘는다. 우리가 잡았던 애들은 대부분 1.5킬로그램이었다. 2킬로그램짜리도 제법 되었다. 이쯤에서 낚시 경험이 많은 분들은 눈치채셨을 것이다.

이 도미는 자연산이 아니다. 모두 양식이다. 그러니까 가두리 양식장에서 빠져나온 것들. 무슨 이유론가 그물이 찢어져서 3년 이상 키운 도미 몇천 마리가 빠져나온 것이다. 한 마리가 찢어진 틈으로 빠져나가면 뒤이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니까 그 애들에게는 탈출의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며칠간은 멀리 가지 않고 양식장 주변에서 배회한다. 늘 먹이를 제공받고 살았기 때문에 경계심도 약하다. 미끼를 덥석덥석 문다. 많이 낚을 수밖에. 우리는 이런 도미를 ‘탈돔’ 또는 ‘빠삐용’이라고 부른다.

탈돔만 보면 울었던 아주머니

섬에는 이런 경우, 간혹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릿수가 유난히 많았다. 이렇게 되면 도미의 주인 개념이 수시로 바뀐다. 빠져나온 애들은 바다에서 스스로 헤엄치는 존재가 되기에 소유권이 가두리 주인에게서 자신에게 돌아간다. 그다음 낚아낸 사람에게로.

공들여 키운 애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사람들이 그것 낚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두리 주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몇 년 전, 그 입장이던 한 아주머니는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낚아온 탈돔만 보면 울었다. 그런 심정을 짐작하기에 도의상 대놓고 낚지는 않는다.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한다. 그렇게 빠져나온 도미는 다시 가두리 그물 안으로 돌아가지 않기에 조만간 멀리 흩어져 나가게 된다. 그러니 안 낚기에는 너무 아깝다. 수확의 기쁨과 미안함이 뒤엉킨다. 그래도 낚아낸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게 최근에 내가 한 마이구리이다. 참으로 찝찝한 만선이었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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