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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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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길

권력과 부를 좇다가 부끄러움이 없어진 사람들아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등록 2016-06-24 17:11 수정 2020-05-03 04:28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아시다시피 (젊은 분들은 모르시려나) 1960년대 최희준 노래 의 가사이다. 이 노랫말이 귀에 박히고 마음을 장악하여 쓸쓸한 기분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참으로 우습게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돌아보면 사춘기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고작 열여섯 살짜리가 이 노래에 빠져 아침이고 저녁이고 혼자 흥얼거리고 다닌 것이다.
만 15살에 느낀 인생의 허무감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여학생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자위의 경험에 대해 침을 튀기고, 동네 논두렁 깡패한테 두들겨맞은 것까지 자랑거리였던, 최병걸이나 최헌 노래를 불러대던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상당한 애늙은이였다고 할 수 있다. 뭐, 인생을 다른 사람보다 앞당겨 사는 게 작가들의 숙명이기도 하거니와 내 바람 또한 늘 미래로 가버려서 그랬을 것이다. 말 그대로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그 시절 벌써 인생의 허무를 느꼈다고 하면 좀 과할까? 아니다. 나는 정말로 인생의 허무를 느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세상천지가 쓸쓸해지고 내 존재가 허공을 떠다니는 깃털 같기만 하고 나는 뭐한다고 이따위 세상에 태어나서 이 지랄일까, 생각이 날마다 들었으니까. 더 정확하게 말해보면 염세적인 몽상에 줄곧 빠져 있다가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가사 내용이 내 마음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게 맞다. 이 정도면 허무 아니고 뭔가. 2절은 더하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나그네만 해도 외롭고 고달프다 못해 볼썽사납기까지 하는데 이번엔 숫제 벌거숭이에 빈손이란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생명체 자체만으로의 존재. 그러나 난 곧바로 이해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어 벌의 옷가지와 가방, 교과서와 참고서 따위쯤이야 종포 바닷가나 여수 유일의 하천인 연등천에 내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것들이기에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알몸 같은 존재였으니까.

‘안녕’이라는 말도 못하고

내가 왜 태어났을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사람으로 생겨나보겠다고 힘차게 손을 들었거나 인간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합격했던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얼결에 이 세상에 온 것이고 잠시 머물다가 휙, 떠나는 것이 바로 인생일 거라는 게 만 15년을 살고 난 뒤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소풍 갔을 때였다. 게임에 걸려서 억지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나는 머뭇거리다가 을 그지없이 처량맞은 목소리로 불렀다. 친구들이나 교사들이나 상당히 기막혀했던 기억이 난다. 질풍노도, 좌충우돌의 나이 때에 인생은 온 곳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는, 나그네 같은 것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심정은 막연하게 나를 감싸는 안개 같은 거였다. 아마도 그럴 거라는 짐작에 중독된 마음. 하지만 막연함만 떠들면 무책임하다. 그 허무감의 구체적인 이유 하나를 찾아내보면 중학교 2학년 때 교과서에서 배운 ‘제망매가’가 걸려나온다.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로 에 나오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죽고 / 사는 길이 / 여기 있으니 / 나는 간다는 말도 / 못다 이르고 가는가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떨어진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서도 /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죽어버린 여동생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월명사가 지어서 직접 노래로 불렀다는 게 이 시이다. 마지막 행 ‘아, 미타찰에서 만날 날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는 좀 별로지만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에 이른바 필이 꽂혀버렸다. 여동생이 죽은 것도 슬픈데, 글쎄 가까운 사람이 죽을 때 간다는 말도 못한다는 것은 더 슬펐으니까. 이별이란 헤어짐을 확인하는 서로의 표현을 분명히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니까. 요즘 노래 가사에도 있잖은가. ‘사랑한다는 말은 못해도 안녕이라는 말은 해야지’ 하는.

그래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내 여동생과 남동생이 죽었다는 가정을 공연히 하게 됐고 그러자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무너지고 사는 게 허탈해졌다. 까까머리 중딩 주제에 그 가상의 이별을 견디어내느라 허덕이던 시절을 보낸 뒤였던 것이다.

이 노래에 빠진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인다면 ‘하숙’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당시 나는 몹시 답답하고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얼른 고등학교에 진학해 집에서 떠나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숙이란 집을 떠나 먼 곳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하숙생이 되고 싶었다.

다시 하숙을 시작하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간절하게 기다리던 끝에 고등학교에 갔고 드디어 하숙생이 되었다. (만세!) 광주시 동명동의 그 하숙집. 지금도 생각난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던, 나와 같은 여수 출신으로 공업전문대학을 다니던 선배와 썼던 골방. 그 집엔 하숙방이 모두 3개 있었다. 하숙생은 다섯 명. 작은 방 하나는 개인이 썼다.

대학생 한 명에 고등학생도 나 한 명. 남은 셋은 재수, 삼수생이었다. 이거 그림 바로 나온다. 날마다 모여 노는 모습. 더군다나 2학년 초에 5·18이 터졌다. 나는 그 시점에서 공부를 그만두었다. 놀기에는 상황이 아주 좋았다. 그 형들과 화투를 치고 술을 마시고 밤이 되면 솥단지에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은 연탄불을 넣어주는 시기에만 가능했는데 나이가 가장 어린 탓에 끓이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 돌려 어둠의 저편을 바라보면 아직도 건너지 못한 시간의 강물이 죽음의 무도회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인집 딸을 좋아한 것이다. 전남여고 다니던 그녀는 나와 동갑으로 ㅊ과 ㅈ이 들어 있는, 적잖이 촌스러운 이름의 소유자였는데 얼굴은 이름과 달리 갸름하고 반듯하고 또렷하고 조화로웠다. 예뻤다는 소리다.

그 여자애와는 잘되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날마다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고백할 타이밍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누군가와 연애를 하려면 물리적인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때이기도 했다.

그 애와는 두 번의 데이트를 했다. 한 번은 1학년 말 제과점에 함께 간 것이고 또 한 번은 3학년 초(그때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행복했으나 두 번째는 싸우고 말았다. 하나의 수확이라면 그 애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것. 기대는 하지 마시라. 그게 전부였으니. 지금쯤 그녀는 어디에서 어떤 갱년기 장애를 앓으며 지내고 있을까.

두 번째 하숙은 대학에 가서 1학년 1학기 반년 동안 했다. 그 집에도 내 또래 예쁜 딸이 있었는데 한번 실패를 교훈 삼아 좋아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하숙은 끝. 그 뒤로는 온갖 골방을 전전하며 스스로 끓여먹어야 했다. 이곳 섬으로 돌아와서까지도.

중년 남자가 스스로 밥을 해먹는다는 것, 이거 만만찮은 일이다. 워낙 혼자 밥을 잘 먹는 스타일이라 외로움은 안 타는데 세월이 갈수록 끓여먹는 짓은 정말 하기 싫어진다. 설거지도 마찬가지. 섬에서 살고 있으니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보내주겠다는 것. 무언가 받는 것을 워낙 어색해하기에 그동안은 없다고, 절대 보내지 말라고 해왔는데 최근에는 저절로 이런 대답이 나왔다.

“가정부.”

다른 뜻 아니다. 단지 밥하고 치우는 게 귀찮기 때문에 내뱉어본 말일 뿐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오랜만에 하숙생이 되었다. 점심과 저녁밥을 가까운 후배 식당에서 먹기로 한 것이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매식인데 후배 부인은, 그러니까 주인집 아줌마는 나를 포함해 그렇게 밥 먹으러 오는 이들을 하숙생이라 부른다. 가두리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친구들과 우체국, 면사무소 직원들이 포함된다. 하숙생이 되니 행복하다. 빈손으로 왔다 가는 인생에 제때 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권력과 돈의 덧없음

이번에 검사 출신 홍아무개 변호사의 돈벌이가 문제가 됐다. 절대 제대로 수사 못할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원칙대로 수사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올 것이기에, 계속 하다보면 법조계 인사들 씨가 마를 것이기에.

인간들이 가장 크게 저지르는 실수가 자신은 천년 만년 살 거라 여기는 것이다. 아무리 관리 잘해도 이삼십 년 뒤에는 시체 된다. 고작 그 기간을 못 기다리고 돈에 난리다. 아무리 대짜로 뻗어도 싱글 침대 하나 채우지 못하는 몸뚱이 주제에 사놓은 건물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돈에 환장하면 부끄러움이 없어진다. 이런 최악의 인물들, 누구라도 곁에 여럿 있다.

해먹은 거 다 내놓고 인생은 벌거숭이라고 노래 부르면서 존재 자체만의 삶을 한번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절대 안 그럴 거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권력자와 부자가 뒤늦게 인생의 덧없음, 세상은 모두 함께 사는 곳이라 자각하고 태도와 버릇을 바꾸는 모습은 예전 영화나 소설에 간혹 나왔는데 이제는 개그 소재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그러니 덧없음을 알게 해주는 방법은 딱 하나다. 싹 빼앗아서 벌거숭이에 빈손으로 만들어주는 것.

한번은 여객선 타고 가는데 파도가 아주 높았다. 뱃머리가 물속으로 처박힐 때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심심하게 이렇게 말했다.

“갖고 있는 재산이 없으니 파도가 쳐도 무섭지가 않아요.”

이 아주머니, 참 멋졌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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