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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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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 종종 나타나니까 물이나 펑펑 솟았으면

바닷물·빗물이었고 어떤 생물체의 젖이었던 물… 땅과 강 뒤엎은 4대강 사업이 최고 재앙인 이유
등록 2016-05-13 17:18 수정 2020-05-03 04:28

일전에 부산 기장군에서 주민투표가 있었다. 해수 담수화 시설에서 생산한 수돗물 공급에 대한 것으로 개표 결과 89.3%의 주민이 반대했다. 기장군 담수화 시설 취수구는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방사능 삼중수소 검출 우려와 대기업 주도의 물 ‘민영화’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민간 주도의 주민투표가 발의된 것으로 부산시 지자체 역사상 최초의 민간 주도 주민투표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시도였다는 평가가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수돗물 주권</font></font>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지 않아 법적 효력이 없다고 일부 언론은 보도했다. 하지만 법적 효력을 얻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일방적 ‘물 행정’에 반대하며 주민 스스로 수돗물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반대 의견을 무시하는 지자체에 맞서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었다’가 당시 나온 기사 내용이었다.

이거 지극히 당연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물인데. 특히 마시는 물인데. 밥은 안 먹고 한 달까지 견딜 수 있다지만 물은 3일만 못 마시면 죽는다. 지금 바로 안 죽는다 해도 갈증이 나면 괴롭기 그지없던 경험들 있으실 것이다. 당장, 종일 마시고 누는 양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물의 종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물은 중요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굽이치며 쏟아지는 계곡물,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의 호수, 도저하게 흘러가는 강물, 깊고 푸른 바다, 그리고 목마를 때 만난 생수 한 잔. 어느 것 하나 나쁜 게 있는가.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은 삶의 근원이자 최고의 파트너이다. 이런 물질, 세상에 또 없다.

도시 사람들이야 꼭지만 돌리면 펑펑 나오는 것이 물이라 툭하면 샤워하고, 머리 감거나 그릇 닦으면서도 틀어놓지만(요즘 한 사람이 샤워할 때 사용하는 물의 양이면 예전 한 가족이 하루 밥해먹고 마실 정도는 되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 섬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DNA 안에 각인되어 있다. 섬은 물이 부족한 곳이다. 아껴야 살 수 있다. 예전에 무인도가 유인도 되는 첫 번째 조건도 물이었다.

‘임은 종종 나타나니까 물이나 펑펑 솟았으면 좋겠다.’

거문도 인근 청산도에서 내려오는 말이다. 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유머러스하면서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표현한 말이다. 임이라 해도 너무 자주 오면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말이다. 청산도는 거문도에서 비교적 가까운 섬이다. 뒷산에 올라가면 잘 보인다. 거문도의 입도조(최초로 살러 온 사람)가 청산에서 온 것으로 추측할 정도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물동이 이고 지고 섬마을의 하루</font></font>

펑펑 솟지는 않았지만 우리 섬도 마을마다 우물이 있었다. 한 마을에 보통 두 개나 세 개, 집 안에 우물이 있는 경우를 합치면 더 늘어난다. 남자 어른을 제외한 모든 이들, 그러니까 모든 나이대의 여자와 남녀 아이들의 중요한 하루 일과가 물 길어 오는 거였다. 나도 숱하게 길러 다녔다.

똬리를 머리에 받치고 (똬리 끈은 입에 문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소녀, 처녀, 새댁, 아줌마, 할머니들이 늘 거리를 지나다녔다. 끈을 문 이유는 동이를 기울여 물통에 부을 때 안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남자애들은 커다란 주전자로 날랐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 물동이에 부을 때도 행여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조심하곤 했는데 수맥이 박하여 오후에는 바닥을 드러내버리는 우물 근처 사람들은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여러 차례 왔다갔다 했기에 그녀들은 머리카락은 물론 적삼이나 셔츠가 물에 젖어 있기 일쑤였다. 짓궂은 남자애들은 물동이 이고 걸어오는 또래 여자가 있으면 앞을 가로막고 장난을 치곤 했다. 여자애들은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있었기에 쩔쩔맸다. 급기야 입을 맞추기도 했다. 당시 섬마을 젊은 남녀의 첫 키스는 그 상황에서 이뤄질 확률이 아주 높았다. 입술을 살짝 가져다 대는 정도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 친구도 그랬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섬에 들어왔는데 친구 한 놈이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짓을 했다.

“콱, 물 부서부러.”

성깔 있던 여자 동창은 앞에서 얼쩡거리는 그 친구에게 눈을 부라리며 악을 썼으나 끝내 입술을 당하고 말았다. 성질대로만 한다면 얼마나 부어버리고 싶었을까. 보고 있던 나도 그녀에게 그렇게 해버리라고 부추겼다. 그냥 물동이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친구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버릴 터인데 그녀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씨발놈, 쌍놈의 새끼.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이를 갈면서 멀어지던 그녀는, 그 상태라면 씩씩거리며 달려가다시피 해야 정상이지만, 그리고 쇠스랑이나 지게 작대기, 빨래 방망이라도 들고 쫓아와야 앞뒤가 맞는 것이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말았다. 솟구치는 성질과 물에 대한 조심성, 그 둘이 아주 위태롭게 뒤섞여 있던 것이다. 내가 다 애가 탔다. 요즘이라면 당장 신고감인데.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래야 뒷물이 안 시끄러워</font></font>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물을 채워야 하는 곳은 부엌의 물통만이 아니었다. “배에 물 좀 채워놔라.”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시키면 심성 착한 딸은 물동이를 이고 바닷가까지 내려가 배에 올라야 했다. 배에도 커다란 물칸이 있었다. 주로 조타실 뒤편, 키를 잡고 사람이 올라서는 곳에. 언젠가 이야기한 대로 그나마 다행인 건 파도에 흔들리는 물은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소가 계속 공급되기 때문에.

그때 그 일을 도맡아 했던 내 여자 동창들, 이제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그 애들은 지금도 종종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기는 하지만 돌아와 살고 싶은 마음은 손톱 끝만큼도 없다고 말한다. 그 기억들 때문에.

섬사람 모두 그랬듯이 지난해 이맘때 돌아가신 할머니도 평생 물을 아끼셨다. 할머니는 빨래하고 나서 헹굴 때도 세숫대야에 물을 조금만 받아놓고 공들여 주무른 다음 혼신의 힘으로 짜고 또 짰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래야 뒷물이 안 시끄러워.”

적당히 짜서 헹구면 물을 많이 쓰게 된다는 뜻이자 나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물은 예외 없이 텃밭으로 갔다. 할머니의 그 버릇은 수돗물이 나온 다음에도, 돌아가실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생존에 꼭 필요한 양 외에는 절대 낭비 안 하신 것이다. 그러고도 늘 정갈하셨다.

지금 내 거처에도 수돗물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콸콸. 섬에 물이 많아서도 아니다. 해수 담수화 시설이 이곳에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덕촌리는 지하수를 저장해서 수돗물을 공급한다. 내 집만 담수화 물을 쓴다. 마을과 동떨어진, 등대 가는 중간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담수화 시설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물론 있다.

거문도의 면 소재지는 거문리라는 곳이다. 여객선이 닿는 곳이며 면사무소를 비롯해 우체국, 수협, 농협, 파출소는 물론 많은 수의 여관과 식당이 있다. 섬의 중심지이다. 그러다보니 거문도를 찾아온 관광객 대다수가 그곳에서 머문다. 관광 온 이들, 물 많이 쓴다. 가뜩이나 거문리는 섬이 작아 물이 부족했다. 원래 무인도였는데 1885년 영국군이 점령하고 막사와 진지를 만들면서 유인도가 되었다.

그래서 거문리는 맞은편 덕촌리 물을 끌어와 썼다. 시간이 지나자 분쟁이 일어났다. 덕촌 입장에서는 관광객 상대로 거문리가 돈을 잘 버는데 물까지 가져다 쓰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문리는 거문리대로 물과 관련한 손님들의 불만에 시달려야 했다. 도시에서 펑펑 쓰던 버릇이 있었으니 손님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식당 장사도 물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온 게 해수 담수화.

이는 바닷물을 필터로 걸러 내보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취수구가 내 집 앞이다. 거기서 뽑아올려 만든 담수를 내가 쓰고 그곳으로 다시 흘려보낸다. 아주 작은, 물의 순환 구조를 보는 것만 같다. 물의 순환 구조는 이런 것이다. 내가 지금 마시는 물은 한때 바닷물이었고 그 전에는 빗물이었고 또 전에는 솔잎 끝에 매달린 이슬이었고, 어떤 생물체의 젖이었고 피였고 침이었고 눈물이었고….

<font size="4"><font color="#008ABD">물 있는 곳에 신이 있었다 </font></font>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인형극을 했다. 한 인형이 말했다. “사막에서는 절대 울면 안 돼.” 건성으로 보고 있던 나는 그 문장이 귀에 쑥 들어왔다. 아이들 프로에서 그런 말이 나와서 놀랐던 것이다. 사막에서는 절대 울면 안 된다는 말,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옆에 있던 인형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답은 이랬다. “한 방울의 물도 아깝기 때문이다.”

이건 갑자기 떠오른 것으로, 조금은 웃자고 한 말이다. 진짜 사막의 경우는 이렇다.

생텍쥐페리의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그는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사막에 살고 있는 모어족(정확히는 모르족, Maure) 몇 사람을 사부아 지역의 폭포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그 부족민은 나무를 발견하면 껴안고 울었을 정도로 물이 귀한 사막 복판에서 살고 있었다. 아이들도 사람을 보면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깡통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물 좀 주세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단다. “착하게 굴면 주마.” 우물을 찾기 위해 며칠을 걸어야 할 정도니까.

그런 부족이 폭포를 본 것이다. 무한대의 물이 쏟아지는 그 신비로운 모습에 그들은 넋이 나간다. 잠시 후 안내인이 말했다. “그만 가시죠.” 그들이 대답했다. “기다려봅시다.” “무엇을요?” “끝을.”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그 대목에서 생텍쥐페리는 그들을 대신해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 신이 있었다.”

물이란 그런 것이다. 신과 동격이다. 땅을 뒤엎고 ‘공구리’ 쳐서 강물을 망쳐놓은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최고의 재앙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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