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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업에 대한 단상

검사·기자·의원의 비리를 다룬 <내부자들>이 놀랍지 않았던 이유…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상대하는 직업들의 횡포에 익숙한 사회
등록 2016-03-02 17:31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예전 유머 하나. 검사, 기자, 교수, 국회의원이 만나 넷이 술을 마시면 술값은 누가 낼까(경우에 따라 경찰이나 교사, 그냥 공무원을 넣어도 된다). 누구를 거론하더라도 정답은 ‘지나가는 시민이 낸다’이다. 그동안 이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격하게 동의했다. 그들의 유흥비라는 게 뇌물로 받은, 뒤가 구린 돈이거나 도중에 착복한 것일 가능성이 높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먹고 마셔도 계산은 절대 하지 않는 모습을 봤거나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대접받으며 떵떵거리는 역할을 해왔기에 그 직업군에 대한 반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연봉이 많은데도 그렇지 않은 이들이 술을 사줘야 하는 상황. 이것도 승자독식이다. 그러니 이거, 단순한 유머이겠는가.

특이한 것은, 우리는 이렇게 여차하면 그 직업들에 대해 일상적으로, 때론 열을 내서 욕을 하지만 동시에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기를 강렬하게 희망하는, 참으로 이율배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를 해먹은 거야’와 ‘못해먹은 놈이 바보 아냐’의 이중적인 잣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대부분은 장관이나 검사, 판사, 교수, 국회의원 같은 고위직을 목표로 했다가(내 어렸을 때 친구들 상당수가 장래희망 칸에 대통령이라 썼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리고 기자나 교사, 대기업 직원 같은 그럴싸한 직업을 얻기 위해 용을 썼으며 그러다 슬그머니 지나가는 행인 1, 2, 3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겪어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량진 고시원 쪽방에서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하다못해 ‘어떻게 집구석에 검찰, 경찰은 고사하고 방범대원 하나 없는가’ 탄식했던 기억도 한 번쯤은 있으실 것이다.

정말로 ‘극히 일부’일까?

이런 식으로 그 직업들 건드는 발언을 하자면 ‘극히 일부이지만’ 소리를 하는 게 보편적인 어법이다. 그런데 이 말 하는 게 별로 안 내킨다. 극히 일부, 라는 표현이 맞기는 하다. 요즘은 그 직업군에서 공정하고 정직한 사람 한 명 나오면 곧바로 뉴스가 되는 시대이니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결국 하게 된다). 이 발언을 듣고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항거한 사람이 ㅅ일보의 ㅈ기자이다. 당연히 그는 아니었다. 그는 기자 중에서도 문학 담당 전문기자인데다가 소설가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시인, 소설가들이 술을 마시면 서로 내려고 안달을 낸다. 몇 푼 벌지도 못하는 처지에 말이다. 인심은 가난한 자들이 더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대의 가난을 잘 알고 그것을 마음에 걸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술 마시면 이런 말 꼭 나온다. ‘니가 뭔 돈 있다고.’

이를테면 지리산에 사는 박남준 시인은 전 재산이 이백만원이다. 그것을 관값(자기가 죽으면 써야 할 돈)이라고 부르고 그 액수가 넘어가면 겁이 나서 이곳저곳에 기부를 한다. 그런 가난뱅이 주제에 원고료 몇 푼 생기면 얼른 쫓아가 술값을 내곤 한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곳에서 한잔 더 하거나 집에 딸기를 사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내가 보기에 부자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기회만 되면 자신에게 돈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둘째는 그 돈을 절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랑 연애를 해보고 싶어 하는 이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한다. ‘부자랑 연애하지 말고 부자인 척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라.’)

그런데 뭐? 그래서 뭐?

이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일전에 영화를 한 편 봤기 때문이다. . 육지 나갔다가 시간이 좀 남은데다 한 번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었지만 뒷부분에 만화 냄새가 좀 난 것 외에는 그다지 지루한 줄 몰랐다. 그리고 정말 연기들 잘하는구나, 새삼 느꼈다.

백윤식씨는 드라마 에서 백 관장으로 나올 때부터 좋아했던 배우이고(당시 서울 가면 사람들이 극 중 캐릭터인 ‘절봉이’ 사투리 흉내를 내곤 했다. 내가 오리지널로 가르쳐주었다.) 이경영씨도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조승우씨와 이병헌씨가 유명 배우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연기를 실감나게 하는데다 매력이 넘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구나, 감탄했다. 감독이 영화에 공을 들였다는 것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정작 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극장을 나오면서 줄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니 우리나라 기득권층이,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이렇게까지 타락했다는 말인가?’ 이렇게 놀랄 사람이 있을까. 초딩이나 중딩이면 놀랄까? 아주 순진한 고딩 정도면? 그런데 청소년 관람 불가라 그들은 볼 수가 없다.

다시 유머로 돌아간다.

영화에 네 가지 직업이 다 나왔다. 검사가 나오고 논설위원과 기자가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왔다. 조승우씨가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야당 국회의원이 교수였다는 설정이니까 교수도 나왔다. 깡패가 덧붙여진 것뿐이다(참고로, 이 유머는 20년 전에 들은 것이다).

나는 원작 웹툰을 보지 않았다. 내용을 몰랐다는 소리이다. 물론 영화 소개나 들리는 소문에 의해 지도층(봉건시대 냄새가 풀풀 나는 이놈의 지도층이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고 언제까지 쓰게 될까. 도대체 누가 누구를 ‘지도’한다는 말인가. 정작 그들이 지도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인사들의 비열한 음모와 추악한 뒷모습을 까발린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실제 내용도 그랬다.

근데 뭐, 그래서 뭐. 다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행태와 관련된 뉴스가 쉬지 않고 나오고 있으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맥, 학맥으로 얽힌 이들이 돈과 성접대를 매개로 골방에서 짝짜꿍. 냄새는 분명 나지만 속속들이 다 알기는 어려운, 기자나 검사, 국회의원, 재벌, 또 그 외에 방구깨나 뀐다는 이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이 얼마나 많을까. 그 비밀의 보물창고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또 금방 잊어버리고 말 테니까

를 제대로 영화로 만들면 3일 동안 봐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비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1년 내내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 1년 동안 비리가 또 생기니 다음해도 계속 봐야 할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자막처럼, 그런 사람들이 우연히도 아주 많으니까. 그리고 백윤식씨 멘트처럼 우린 또 금방 잊어버리고 말 테니까.

사실 그런 멘트조차 생명력이 없어 보였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 정도 정의로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공개적으로 내뱉었으니 이젠 잘되겠지, 라는 생각 정말 들지 않는다. 투쟁 구호 외치고 나서 술집 찾아가거나 동네 유지들이 정부 지지 플래카드 내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이 직업군이 청렴하고 양심적이면 곧바로 좋은 나라가 된다. 그것도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안 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 발언도 생명력이 없는 것은 똑같다. 고백하자면 나도 사회 구성원의 소양과 덕목에 대해 칼럼 하나 쓰고 나면 뭔가 해놓은 것 같아 유야무야 넘어가버리곤 한다.

슈퍼마켓이나 주유소, 호프집 사장님들보다 이 직업군이 더 공정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관식 강남세브란스병원 내과장의 수필 ‘진료 끝난 후에 보죠’에 나와 있다. 거기에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병원으로 실습 나온 제자들에게 그가 묻는다.

“의사가 존경받는 직업 같아?”

“아니요.”

“왜일까? 일 자체가 남을 위한 직업인데?”

“일은 그런데요. 이기적이고 건방지고,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그렇지? 또 너무 사무적이고, 권위적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지금까지 나는 환자를 사람이 아니라 병명으로만 봐왔어. 인격체로 보지 않았던 거지. 그들도 한 가족 내에서 서로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잖아.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보려고 노력한 게 얼마 되지 않아. 부끄러운 일이지. 그동안 너무 높아져 있었나봐. 진료를 하다보면 실제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데 말이야.”

뒤이어 결정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의사, 판사, 검사, 교수, 선생, 공무원 등의 공통점은 뭘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아닌가요?”

“그래, 그런데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접하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직업들이야. 그래서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겸손치 못하고 오만해질 수밖에 없는 고약한 속성을 갖고 있지. 의사는 특히 더 그래. 몸과 마음이 다 약한 사람들을 상대하잖아.”

약한 사람을 상대하는 양심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되는 직업. 그렇지 않은가. 의사는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를, 경찰은 죄짓고 잡혀온 범인을, 판사와 검사는 재판받고 있는 사람을, 교수는 학점과 취직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를, 교사는 어린아이들을 날마다 만나고 상대하니까. 국회의원 앞에는 급한 민원을 들고 머리 조아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비록 선거 전에는 국회의원이 그들에게 머리 조아렸지만) 기자는 기사 한 꼭지로 사람 하나쯤 우습게 나쁜 놈 만들어버릴 수 있으니까(‘쓰레기만두’라는 표현 하나로 해당 회사를 ‘아작’ 내버린, 대표가 결국 자살까지 한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인생 자체를 뒤엎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연약한 자식들을 대하는 부모. 학대에 이어 살인까지 가는,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폭력에 대해서는 최근 한창 시끄러우니 따로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약한 자들을 상대하는 이들에게 양심과 도덕성을 분명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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