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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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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월 모일 모시 저 혼자 삽니다!

인생의 십일조로 경조사 착실히 챙겨온 그에게 비혼 선언일 축복하는 부조금을 돌려주자
등록 2016-04-15 16:41 수정 2020-05-03 04:28

지난 주말에도 결혼식 참석한 분들 많으실 것이다. 친구, 일가친척, 직장 동료, 거래하는 회사 직원에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까지 챙겨야 할 사람은 늘 넘쳐나니까. 더군다나 꽃 피는 춘삼월 아닌가.(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봄에는 여자들이 시집을 많이 가고 가을에는 남자들이 장가를 많이 간다나?)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을 낸다. 요즘 얼마들 내실까. 오랫동안 만원을 유지하던 축의금은 이만원, 삼만원 시대를 잠깐 유지하다가 지금은 오만원이 보편적인 액수가 되어 있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의를 보여줘야 할 대상에게는 십만원. 그렇다면 훗날 십만원, 십오만원 이렇게 올라갈 것이다. 축의금 포함한 부조(扶助)는 왜 오진법으로 진행되는지 참 난감하다(십진법 아니라서 다행일 수도 있겠다).
친구의 결혼식, 친구 아들의 결혼식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어쨌든 이 액수, 만만찮다. 한 달 동안 결혼식 두 번에 초상집 두 번 갔다면 기본 이십만원이 사라진다. 그러기에 그다지 먼 사이는 아니지만 딱히 가깝지도 않는 이의 청첩장을 받아놓고 여기 가야 하나, 모른 척해야 하나 오늘도 고민하고 있는 분 여럿일 것이다. 우리나라 GNP(국민총생산)의 약 10%가 선물비인데 그 태반이 경조사 부조라고 한다. 한 나라 경제의 1할이 이 돈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쳐보면 내가 번 돈의 1할이 선물 포함 경조사비로 나간다는 뜻이다. 십일조 떼이듯이. 그러니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경조사비, 이거 안 없어진다. 국민 모두 한날한시에 이제 그만하자, 동의가 되어야 가능하니 그게 되겠는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셋이나 되는 자식이 단 한 명도 결혼을 하지 않자 어느 날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그동안 뿌린 돈이 얼만데.”

부조는 잔칫집이나 상가(喪家)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어 도와줌, 또는 돈이나 물건을 말한다. 축하할 일이나 궂은일에 십시일반 재화를 건네준 것은 그 일을 잘 치르라는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었는데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역하기 어려운 압박이 되어버렸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도 이 돈이 끊임없이 나가고 있다. 결혼만 따져보면 또래들이 결혼하던 시기가 지나자 한동안 드문드문 사촌이나 조카들만 소식이 왔는데 몇 년 전부터는 친구 자식들, 특히 여자 동창의 딸 결혼식 청첩장을 받기 시작했다. 가보면, 이십여 년 전의 어렸던 신부가 이제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미가 되어 있었다. 팔팔하던 처녀가 푸근한 어머니가 되어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기는 했다.

그러다 두 해 전에는 약간 민망한 청첩장을 받기도 했다. 우리 섬에 사는 친구 결혼식이었다. 자식이 아닌 친구 말이다. 친구는 재혼인데 아내가 초혼이라서, 결혼식만큼은 올리고 싶다는 장모의 간절한 바람으로(홀아비가 처녀 데리고 가면서 식도 안 올려?) 이렇게 된 거라는 설명도 들었다. 말했듯이, 한동안 친구 자식들 결혼식에 참석하다가 졸지에 친구 결혼식에 가게 된 것이다.

“신랑 신부 우인들 사진 찍겠습니다. 친구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결혼식에 참석한 나와 친구들은 이 소리에 상당히 멋쩍은 표정으로 걸어 나가 한참 젊어 보이는 여자들과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어야 했다. 뒤풀이 자리로 신랑 신부가 인사를 왔다. 이 나이에 친구 결혼식에 온 것이 참으로 어색하니 두 번 다시 이딴 짓 하지 말라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대답했다.

“와줘서 고맙네. 그리고 다음달에는 우리 아들 결혼하네. 청첩장 또 보낼 테니 그리들 알고 있소.”

우리는 기가 막혀 웃기만 했다.

진짜 결혼식은 이래야지

이번에 서울에서 어떤 결혼식에 갔었다. 잘 아는 출판사 직원이었는데, 나는 하객이라기보다는 다른 직원들 만나 이야기하다가 얼결에 따라간 거였다. 거기서 멋진 풍경을 보았다. 구민회관을 빌려서 식을 치르는데 그 흔한 사회자도, 주례와 주례사도, 뻔한 연주와 케이크 커팅도 없었다. 신랑 신부는 사귀면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잔뜩 붙여놓고 스스로 식을 진행했다. 어떻게 만났는지, 무엇에 반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생과 결혼이 어떠한지, 유머러스한 멘트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는 소리. 심지어 드레스도 없이 평상복으로.

난 결혼식이 이래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사람이라 아낌없이 박수를 치고 축하를 했다. 이미 딸아이에게도 이렇게 말해놓았다.

“네가 결혼을 하게 되면 예식장에서 하는 것은 반대다. 얼마 전까지 예식업이라는 직종이 있는 곳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뿐이었다. 다들 성당이나 절, 교회 같은 공공성을 띤 종교 관련 건물, 아니면 집이나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한다. 왜 우리나라만 결혼식을 비싸고 화려한 곳에서 해야 하는지 아빠는 이해할 수 없다. 그날 행복한 사람은 신랑 신부이어야지 예식업주가 아니지 않느냐. 넌 소박한 곳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스스로 연출해서 해라.…아빠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최대한 모아서 그 돈을 예식업주 대신 너희들에게 직접 주겠다….”

일반적인 우리의 결혼식이라는 게 얼마나 식상하면서 피곤한 행사인가. 내 경우도 그랬다. 준비부터 식을 치르기까지 따지고, 주고받고, 머릿수 세는 짓을 해야 했고, 그걸 다 하고 나니 ‘결혼식’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지쳤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렇게 복잡하고 형식적인 결혼식이 좋은 점이 하나는 있다. 질리게 만들어서 두 번 다시 또 할 생각 안 들게 한다는 것.

형식과 관습을 깬, 둘만의 의미 있는 결혼식이 훨씬 낫다는 소리지만 느닷없이 결혼식 이야기를 떠벌리게 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 때문이다.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거나(그 둘의 적당한 결합이겠지만) 아무튼 끝내 포기해버린 사람들.

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이 사람은 마흔 살 정도이며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이십 대 후반부터 다녔으니 그동안 결혼식 축의금으로 얼마나 나갔을까. 단순히 계산해서 한 달에 한 번, 오만원씩 하면 대충 액수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가 태어나 백일이나 돌잔치를 하면 또 챙겨야 한다. 쉬지도 못하고 정장 차려입고 가야 한다.

스스로 만드는 새로운 기념일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최근에 A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유야 다 각자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 A 같은 사람들 여럿이다(요즘은 혼자 가서 드레스 입고 사진 찍는 셀프 웨딩도 한다고 들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나는 결혼 안 하기로 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함께 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혼, 정확히는 결혼식을 안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의 이 선언에 대한 축하를 받고 싶다. 물론 축의금도. 나는 그 돈으로 그동안 못한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

반응은 어떨까.

실제로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여럿 있단다. 두 번의 예를 전해들었다. 두 번 모두 친구들이 흔쾌히 동의를 했단다. 나는 그 친구들의 반응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결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통념상 축의금을 받을 권리도 있다. 그동안 착실히 내왔기 때문에. 단지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고 축의금 받을 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그 권리를 인정하고 찾아주자는 것이다.

A는 가까운 이들에게 메일을 보낸다. 모월 모일 모시를 자신이 그 선언을 하는 날로 정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친구와 지인들이 그날을 결혼식에 버금가는 비중 있는 날로 여기고 참석하는 것이다. 축의금 봉투와 함께. 물론 결혼을 한 번 한 사람은 제외다.

장소는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정한다. 결혼식 피로연처럼 술이 포함된 파티가 될 것이다. 친구들은 축하를 보낸다. 박수를 치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가능하면 축가도 부른다. 초반 삼십 분은 어렸을 때부터 찍었던 사진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만들어 한 장씩 보며 설명한다. 좋아하는 노래 다섯 개를 골라와 하나씩 들으며 그 이유와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이러면 A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

이제 그날은 그의, 또는 그녀의 새로운 기념일이 된다. 다른 이들의 결혼기념일처럼. 또는 또 다른 생일처럼. 그런데 그날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다. 경사스러운 것을 포기하는 날이니 ‘포경데이’라고 하자는 것은 내 농담이었다. 주변에서는 솔로인데이(solo人)데이. 비혼·무혼 선언의 날.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에 동조하면 그 풍조가 생길 것이고 당사자들에 의해 가장 적당한 이름도 저절로 나올 것이라고 본다.

그녀는, 또는 그는 나중에 결혼을 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느닷없는 인연이 나타나 사랑에 빠지고 맺어질 수 있으니까 결혼식도 올릴 수 있다. 당연히 ‘홀로인생선언’ 했을 때 축의금을 낸 사람은 안 낸다. 자기가 좋으면 또 낼 수도 있지만 안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석하는 것도 포함해서.

결혼 포기 선언이 아니다

워낙 살기 힘든 시기이다. ‘포기’라는 단어가 툭하면 나온다. 각 개인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정확히는 지구 행성의 인류가) 한 국가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중으로 보인다. 모든 게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으니까.

그만큼 우리는 많은 잘못을 했고 실수를 했다. 해야 할 것을 안 했고 안 해야 할 것을 했다. 그러니 어려워진 것이다. 말하다보니 분위기가 좀 무거워져버렸지만 아무튼 나는 이 거대한 어려움을 한 개인에게 통째로 짐 지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은 결혼을 포기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혼자서 굳건하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날이니까. 어떤가. 귀하는 주변에서 이런 선언을 하는 지인이 있다면 봉투 들고 참석할 생각 있으신가.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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