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읽었던 시 하나. 작가가 누구인지(중년 남자로 읽혔다), 제목이 무엇인지도 생각나지 않지만 내용만은 기억한다. 대략 이렇다.
어머니는 생선을 구워줄 때마다 살코기는 자식들에게 주고 자신은 대가리만 드셨다. <i>‘어머니, 그러지 말고 같이 이거 드셔요.’ </i>어린 그가 말하면 어머니는 심상하게 대꾸했다. <i>‘아니다, 난 이게 더 좋으니 걱정 말고 니들 많이 먹어라.’ </i>살코기를 자식에게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성장한 그는 자식들을 낳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제 그가 생선을 구워 자식들에게 먹인다. 그 지극한 모성을 떠올리며 자신도 살코기를 아이들에게 발라주고 대가리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발견, 먹어보니 그쪽이 더 맛있는 것 아닌가. 어머니는 짐짓 자식을 위한 척하고는 정말 맛있는 부분을 먹은 것이다. 대가리 먹는 맛에 빠진 그는 이렇게 탄식한다. <i>‘오 어머니, 이렇게 맛있는 것을 혼자 드셨군요, 정말 너무하셨어요.’</i>
검색을 해도, 동료 시인에게 물어봐도 이 시의 원작자를 찾을 수 없지만 나는 이분에게 한 표 던진다. 맞는 말이니까. 시인의 어머니께서는 (결례를 무릅쓰고 말해보자면) 아닌 보살 하신 것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생선 대가리는 정말 맛있으니까. 이 시에 맞춰서 발언한다면 모성을 뛰어넘는 맛인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 섬은 갈치가 많이 났다. 요즘은 커다란 어선을 몰고 두 시간은 가야 낚을 수 있는데 큰 놈은 극히 드물다(겨울철에는 그나마 시즌이 끝난다). 그때는 달랐다. 거문도 말로 ‘정말 푸졌다’. 우선 섬 근처, 가까운 곳에서(밝은 집어등이 아니라) 송진으로 만든 홰 하나 켜고 낚았다. 빛을 비추면 그것을 좋아하는 멸치가 모인다. 멸치를 잡아먹기 위해 갈치가 오는 것이다. 갈치뿐인가. 삼치도 오고 방어도 오고 만새기도 오고 심지어 청새치 같은 것도 왔다.
크기도 달랐다. 밥 뜸 들일 때 아궁이 잉걸불에 석쇠를 놓고 굽는데 얼마나 컸는지 세 토막이면 꽉 찼다. 왕소금 뿌려 노릇노릇 구워놓은 커다란 갈치 토막. 갈치 살은 등지느러미 쪽과 몸통 쪽이 반듯하게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서 먹기도 편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고깃덩어리가 너무 커서 안 내켰던 것이다. 그것을 좋아했던 동생들과 달리 나는 살이 별로 없는 등지느러미 쪽을 택해 가시만 빨아먹었는데 그때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뼈에 붙은 작은 살점들이 훨씬 더 고소하다는 것을.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이렇게 대가리 예찬론을 펴고 있다.
모든 생선 대가리가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조기 대가리부터 제외다. 고양이가 물고 가다가 내려놓고 서운해서 운다는 소리를 듣는 게 그것이니까. 냄새는 죽이는데 살은 하나도 없어서. 대신 조기 대가리 속에는 하얀 돌이 들어 있다. 뇌석이다. 어디선가 듣기로 이걸 갈아서 비염 치료제로 쓴다고 했다. 나도 비염을 앓았을 때 모아보기는 했지만 써보지는 않았다. 요즘 비염 환자들 많으니까 정보 하나 드리자면 도꼬마리가 효과 좋다. 한의에서는 창이자라고 한다. 주변에서 써본 이들이 다 효과 봤다. 복용법까지 말하면 원고 늘리려는 속셈이라고 할 것 같아 안 한다. 인터넷에 나온다.
그리고 멸치, 전갱이, 숭어, 갈치, 꽁치 같은 물고기도 제외다. 이 애들은 잡아서 손질할 때 아예 떼어내 버리기도 한다.
젓가락 싸움 부르는대가리가 맛있으려면 우선 몸집이 좀 커야 한다. 가장 유명하기로는 참치이다. 하지만 낚기도 쉽지 않은데다 값이 비싸니 일단 밀어둔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으로는 삼치와 고등어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커야 하고 싱싱해야 한다. 흔히 식당에서 만나는, 오래 냉동된 것이나 크기가 작은 애들로는 원하는 맛이 안 나온다. 그럼 무엇을 먹으란 말이냐. 제대로 맛을 보자면 약간의 수고를 해야 한다.
신선한 도미와 우럭 같은 것에서 맛을 볼 수 있다. 낚시하거나 최소한 수산시장은 가야 한다는 소리. 내 경우, 도미나 개우럭 대가리 하나면 소주 한 병 마신다. 개우럭은 길이가 50센티미터 이상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낚아본 우럭 중 가장 큰 것은 71센티미터였다(자랑 한번 했다). 먼저 눈알 두 개에 소주 한 잔. 양쪽 볼에 붙은 살점 두고 한 잔. 주둥아리 쭉쭉 빨아먹으며 한 잔, 귀세미(아가미를 감싸고 있는 부분) 뜯어먹으며 또 한 잔, 좌우 턱 아래 탄력 좋은 살점으로 두 잔, 두개골 깨서 골을 빨아먹으며 마지막 한 잔.
좀 엽기적인가? 따져보면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엽기가 기본이다. 입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이 남의 살이거나 자식이니까. 소·돼지·닭과 물고기처럼 원래는 살아 있던 생물체의 살과 뼈가 그렇고 이런저런 곡식 씨앗과 채소가 그렇다. 심지어 내장탕, 갈비탕, 소머리곰탕같이 남의 장기(臟器)를 그대로 메뉴로 쓰는 것도 있잖은가.
그다지 드물지 않는 것 중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것은 부시리 대가리이다. 방어 종류로, 방어보다 맛이 뛰어난 생선이다. 히라스라고도 한다. (히라스와 부시리는 각 지역에서 같은 생선으로, 또는 약간 다른 종류로 혼재되어 쓰인다. 나는 같은 것으로 본다. 부시리의 일본 이름이 ‘히라스’(ヒラス)라서) 방어 살은 그저 빨갛기만 한 데 비해 부시리는 은은한 반투명에 가깝다.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기름기가 빠지며 살의 탄력이 더욱 강해져 그 시절 부시리를 최고로 치지만(기름기가 많아지는 겨울철 것을 더 높이 치는 이도 있다) 일 년 내내 수준 높은 맛을 유지한다.
예전에는 종종 낚으러 다녔다. 보통 4∼5킬로그램짜리가 많다. 큰 것은 20킬로그램 넘어가는 것도 있고 자료를 찾아보면 100킬로그램까지 육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죽기 직전까지 계속 크는 물고기이다.
전에도 한번 말했는데 가두리에서 낚기도 한다. 암튼 이거 5킬로그램짜리 하나 잡았다 치자. 물론 회다. 그런데 이곳은 섬. 최고급 회보다 돼지족발과 치킨에 눈이 먼저 가는 곳이다. 회를 뜨기는 하지만 다들 몇 점 먹고 만다.
그러면서 서로 눈치를 본다. 대가리를 노리는 것이다. 반으로 벌려서 소금 뿌려 구워놓으면 그때부터 말도 없어진다. 젓가락 앞세워 달려들기 때문에. 회 접시는 저만큼 밀려나 있다. 뼈 사이의 차진 살이 충분하고 쫀득거림이 최상이기 때문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몰입이다. 혀 외에 다른 감각기관은 둔해진다. 미각이 최고의 감각이 된다. 시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대가리를 먹는다는 것은 그 존재를 정면으로 대하는 것과 같다. 이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종족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지점이니까. 그럴 때마다 이 물고기의 일생이 몸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온다고 생각하며 우주 안에서의 단백질 순환 구조를 나는 떠올린다. 그것들이 모인 게 현재의 내 자신이다. 괴테도 이렇게 말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돼지고기는 괴테가 된다.’
나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스테이크 접시에 아스파라거스를 올려놓는 이유와 비슷하다. 아스파라거스는 죽인 소의 명복을 빌기 위한 조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는 죽였으면 무조건 다 먹자 주의이다. 그래야 다른 것을 덜 먹는다. 때문에 대가리 떼어낸 애들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다. 살코기만 통째로 빼앗아버린 느낌이 드니까.
육지 음식에는 이런 기분이 안 든다. 치킨에는 닭 대가리가 없다. 소나 돼지도 잘게 해체되어 있다. 때문에 다른 목숨을 먹어치운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저 공장에서 만들어낸 단백질 덩어리로 여기고 있다는 게 이른바 ‘먹방’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요즘은 정신적인 허기의 시대이니 이해 못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TV 채널마다 그것을 부추겨서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단순한 패턴이 과하게 반복되고 그 심리를 이용해 시청률을 확보하고 돈을 번다. ‘그래도 먹는 것은 기본 시청률이 나옵니다.’ 예전에 공중파 방송사 PD에게 들은 말이다. 이 말 듣고 슬퍼졌다. 음식을 마구 퍼먹어대는 입. 그것을 클로즈업시키는 카메라. 이건 허기를 빗댄 과식의 모습이다.
진짜 허기는 이런 것이다. 대략 이십오 년쯤 전이다. 인간극장 또는 그 비슷한 방송이었을 것이다. 경기도 어름 어느 도시의 산동네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는 중늙은이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국과 반찬 준비하고, 손님 맞으며 해가 이울고 형광등 끄고 잠이 드는 일과가 나왔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친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 많았고 지금도 종종 나오니까.
그 아주머니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루를 쉬었다. 그 쉬는 날이면 온갖 반찬과 요리를 바리바리 이고 지고 해서 인근의 작은 고아원으로 갔다. 거기 원장이 친구였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인 다음 일일이 씻기고 입히고 빗겼다. 구체적인 사연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이 그곳 출신이거나 자식들을 먼저 보냈거나 둘 중 하나는 맞을 것이다. 원장 친구와 커피 한잔 마시고 밤늦어 다시 돌아온 산동네 길. 사람 하나 없는 오르막길을 가로등에 의지해 허위허위 올라온 그녀가 한 것은 닭을 삶는 거였다. 그리고 카메라가 들이대고 있는데도, 불도 제대로 켜지 않고 닭 한 마리를 다 뜯어 먹었다. 먹는 도중에 단지 이 한마디 했다. ‘거기 다녀온 날은 배가 너무 허기져.’ 그게 물리적인 배고픔이겠는가. 영혼을 뒤흔드는 존재의 허기이지.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허기와 함께 탄생되었다!’
‘밥 묵고 울었네’문득 시인 허수경의 글이 떠오른다. 장터 아줌마의 독백이었는데 자신의 신세가 가여워 밤 내내 울던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i>‘새북(새벽)에는 배가 고파 내사 밥 묵고 울었네.’</i>먹방에 나오는, 유명하다는 것 닥치는 대로 씹어대는 입에서는 고단한 인생의 상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한창훈 소설가※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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