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2차전.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날, 전남 여수시 뒷골목 호프집 풍경이다. 대형 스크린 아래, 최고의 명당자리를 아가씨 셋이 차지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자리잡고 한잔 마신 탓에 얼굴이 붉었다. 시합이 시작되고 10여 분 지났을 때 박주영이 자살골을 넣었다. 순간 세 아가씨는 자지러질 듯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옆좌석에 앉은 이가 말했다.
“자살골 넣은 거예요.” “맞아요, 박주영이 골 넣었어요.” “자살골이라니까요.” “그건 또 뭔데요, 안 좋은 거예요?”
미쳐야 현재를 잊을 수 있으니까
그는 설명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박주영이 골을 넣었는데 분위기가 왜 이리 싸늘하지? 아가씨들은 아가씨들대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우리나라 이곳저곳에서 이런 풍경 적잖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축구 규칙을 모른 채 열광하는 이가 많았으니까. 이거 탓할 마음 전혀 없다. 되레 가여울 정도이다.
젊은이들 가슴은 불타오르거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그것을 발산할 만한 시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스포츠로 몰린 것이다. 그때만큼은 마음대로 질러대도 되니까. 가장 좋은 기회이니까. 우리나라는 광장의 축제 문화가 없으니까.
대표적인 게 월드컵 4강 때이다. 그때는 남의 자가용을 부셔도 유야무야 넘어갔다. 집단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전 국민이 흥분했고 젊은이들은 유난히 더했다. 그 흥분과 충동이 묵인됐던 것에는 그것을 애국심으로 잘못 읽어낸 사회 분위기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우리도 축제가 얼마나 많은데, 하실 것이다. 물론 많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축제는 광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벌이는, 뛰고 고함지르고 깔깔거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관이 주도하는, 아이돌 가수들 공연이 주축인, 그저 듣고 보는 것은 축제가 아닌 것이다. 그건 한낱 이벤트일 뿐이다. 축제는 공유와 연대를 기본으로 하여 묵은 감정을 발산하고 배설하는 집단 행위이다. 하긴 우리나라 지자체 축제에서도 그걸 하긴 한다. 먹거리 장터에서 술 마시고 옆좌석 손님과 싸우면서.
1969년 이화여대 강당.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이 있었다. 광란의 도가니였다. 흥분한 관객들은 꽃다발과 선물상자를 마구 던져댔는데 그 사이로 날아간 팬티도 여러 장이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 풍경은 되풀이된다. 1980년 남산 숭의음악당에서 진행됐던, (I was made for dancing)의 레이프 개릿 내한 공연. 또다시 소녀 팬들은 악을 질러대다 실신했다. 역시나 역사는 되풀이된다. 1992년 미국 5인조 팝그룹 뉴키즈온더블록의 공연. 엄마와 이모들이 했던 풍경이 딸들에 의해 고스란히 재현됐다. 그때는 압사 사고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심지어 죽기도 했다.
스타에게 쏠리는 소녀 팬들의 열광은 지금도 계속된다. 물론 그들이 유명한 스타이고 노래와 춤이 뛰어나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억압과 압박에 시달리는 여학생들의 가녀린 정서가 읽힌다. 화를 잘 내는 가부장은 오래 산다. 화를 냄으로써 스트레스를 날리기 때문. 하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당하는 가족은 마음이 병든다. 그러니까 광적으로 고함을 질러대는 소녀들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 교육제도, 가정의 억압, 압박에 의한 심리적 부담이 서슬 푸르게 자리하는 것이다. 뭔가에 미쳐야 현재를 잊을 수 있으니까.
바닷물 뒤집어쓸 때마다 퍼지는 웃음소리사람들이 묵은 감정을 휘발시키고 서로 위무하는 게 광장의 축제문화이다. 다들 모여 어기차게 힘을 쓰고 기운을 탕진하는 것. 하지만 예전부터 우리에게는 그게 없었다. 백성은 하늘이라고 말만 했지 실상은 그저 무지하여 덜떨어진 존재로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 백성들이 힘을 합치면 무서운 존재가 되니까. 집권세력이라는 게 늘 뒤가 구리고 찝찝하여 불안했으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두려워했던 것. 그러니 축제 없는 나라가 된 것이고 압박받는 젊은 기운을 발산할 기회가 없다보니 대중가수에게로 가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으로 가는 것으로 나는 본다.
외국 잡지에서 본 내용인데 사람들이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이런 게 있다. ‘가난뱅이가 부자에게 대놓고 놀리고 욕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것. 근데 축구와 프로야구 시합 보는 것은 돈이 든다. 가수들 공연장 가는 것은 훨씬 더 든다. 어떤 경우는 상상 이상이다. 부모 몰래 가는 아이 많다. 몰래 간다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일본 진진축제를 봤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관장하는 여신(女神)이 있는데 축제는 위패를 여신의 거처인 무인도의 사당으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몇 시간 일찍 무인도로 간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제물로 하여 제관이 제를 지내는 것이다. 마치고 나서 음복하는 것까지 일반적인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그곳 사람들은 그날 바닷물을 뒤집어쓰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행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에 서로 바닷물을 뿌린다. 항구로 돌아오는 배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동끼’라 부르는 펌프로 옆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항구에서 그 행위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남녀노소 모두에게서 웃음소리와 즐거운 비명소리가 쉬지 않고 나온다. 양동이로 물을 끼얹고 도망가면 쫓아가서 복수해주는데 바닷물을 많이 뒤집어쓸수록 좋은 게 되기 때문에 유쾌하기만 하다. 물이라는 게 죽음과 재탄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 따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시원하다. 종일 그러고 난 주민들의 얼굴을 보자. 해묵은 감정의 찌꺼기까지 모두 해소된, 완벽한 빈 것이 된 듯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게 구성원들이 주체가 돼서 힘을 쓰고 고함을 지르는 축제이다. 당연히 진진축제에서는 아이돌 가수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먹거리 장터도 없었다. 취해 싸운 사람도.
온 동네 들썩이던 삐비각시 놀이우리 거문도에도 특이한 축제가 있었다. 이름하여 ‘삐비각시’ 놀이. 구정에 포수 분장의 사내를 대동하고 풍물을 치며 마을을 돈다. 그는 보름간 그 분장을 하는데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든 것을 대신하는 악역이다. 정월대보름에는 각 어선들을 돌면서 또다시 성대하게 액막이 풍물을 치고 나서 포수를 처형한다.
그 보름간 사이사이 등장하는 게 삐비각시이다. 특이하게도 여장 남자이다. 마을마다 사내들이 여러 형태로 여장을 한다. 가발을 쓰고 화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브래지어를 차고 치마를 입고 여러 가지 기이하고 희한한 장식을 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여성용 소품을 이용한 치장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된다. 여염집 규수는 물론 신부, 기생, 노파, 심지어 배에다 바가지를 집어넣은 임신부 복장까지 나왔다.
삐비각시가 등장하면 골목은 술렁이고 들썩인다. 동조자들이 달라붙는다. 꽹과리나 장구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른다. 어떤 노래든 누가 선창하면 다들 따라 부른다. 춤도 춘다.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아무 상관 없이 난장을 벌이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금기를 깨뜨려보니 주변의 동조가 자연스러웠다. 금기와 위계를 스스로 무너뜨렸으니 그때만큼은 다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서로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과 술도 준비된다. 수시로 먹고 마시며 일행은 삐비각시를 내세워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두 삐비각시가 마주치면 기세를 겨루다가 서로 합쳐져 한바탕 휘몰이를 한다. 보름간 그러고 나면 어떤 삐비각시가 가장 멋졌는지 이야기가 돈다. 분장 속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풀린다. 물론 포상은 없다.
산다이 일종이다. 보통의 산다이가 비슷한 또래들이 한 공간에 모여 노는 것이라면 이 놀이는 온 동네 주민들이 움직이면서 노는 것이라는 차이 정도. 아마 가장 성대한 산다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놀다보면 남녀, 부모 자식 간의 거리가 좁혀지고 가부장제에 의해 묵혔던 불만이 발산된다.
여장 남자 놀이는 거문도 인근, 삼산면 소재 다른 섬에서도 있어왔다. 육지에서도 있었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어봤다. 아마도 (거문도는 유학자가 많았음에도) 육지와의 물리적 거리 덕분에 상대적 자유로움과 (거친 바다 환경 때문에 생겼을 거라고 추측되는) 놀이에 대한 관대함에 의해 생겨났을 거라고 나는 본다.
지금은 안 한다. 맥 끊긴 지 오래됐다. 마을이 통째로 들썩였던, 흥겨운 축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여자들이긴 하다. 이를테면 그 놀이를 기억하는 내 또래 남자들은 엇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노는 것은 좋았지만 엄마가 끼어 있을 때는 싫었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가부장제 영향으로 보인다. 엄마는 정숙해야 한다는 생각. 아마 그것 때문에 없어졌을 것이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내 친구의 아내는 그 놀이가 재현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그때처럼이 아니어서.” 그때 그 시절처럼 자유롭고 분방하게 이웃과 뒤섞이려는 마음이 없어서라는 것.
마음이 그때 같지 않아서일 년 넘게 이어온 산다이 연재가 이제 끝난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시험 쳐서 학교에 들어가던 시기, 전라남도 명문이라고 불린 광주의 K고등학교가 있었다. 시내 깡패들이 학교 주변에 얼쩡거리며 아이들을 협박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학생들은 스스로 대책위를 꾸렸고 집단으로 쫓아나가 깡패들과 한바탕 ‘접전’을 벌였다. 그리고 이겼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싸움을 선택한 것이다. 교육 행정이나 교사들이 해결 못하니까 스스로.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리고 있는 게 무언지 생각하게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무기력하다. 당시처럼 ‘덤벼드니까 청춘이다’가 맞는 말이다. 잘못된 것에는 덤벼들고 이긴 다음 놀자.
한창훈 소설가*‘한창훈의 산다이’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한창훈 작가와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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